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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ㅣ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평점 :
그런 점에서 이제 열심히 치열하게 허심탄회하게 글쓰기 공부에 전념할 일만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아직 망설이거나 늦은 게 아닐까 회의하는 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고병권 선생님의 문장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다음은 2007년에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진행한 '새만금 대장정'의 선언문에 들어 있는 문구 일부이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금, 우리의 행진은 너무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대추리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군대의 투입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의 행진은 한발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한미FTA 협정문 초안이 작성되었다고 하는 지금, 우리의 행진은 이미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걷겠습니다.
(고병권. 『추방과 탈주』. 그린비. 2009. 194쪽)
모든 행동은, 모든 시작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행동은 결코 늦는 법을 모른다'는 놀라운 진리와 마주쳤다. 사십여 년을 엉거주춤 살면서, 내 행동은 늘 뒤늦게 후회하는 반응의 일종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 구절을 통해, 사십여 년 동안을 내가 행동에 대해서 적절치 않은, 검증되지 않은, 통념적 상식에 갇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미안한 사람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잘못한 것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
이 모든 소중함을 우리는 뒤늦은 후회로 깨닫고 알게 된다. 그래서 행동을 하고 싶을 때는 이미 때늦어 버린 듯이 느낀다. 그러나 실상은 '그 순간이야말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가장 유일하고 빠른 변화의 시작' 이라는 놀라운 아이러니를 위 구절은 가르쳐 준다.
정말이지, 미안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이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 만큼 더 빠른 다른 변화 방법이 세상에 있을까?
그런 점에서 놀랍게도 행동은 언제나 가장 빠르다. 행동은 결코 늦는 법을 모른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가장 빠른 길은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르는 행동이,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는 반드시 가장 빠른 길이다.
더구나 이제라도 공부를 시작하는 행동은, 잠시 후에 또 다시 저지를 후회를 막아 준다. 공부를 시작하는 순간, 자신의 모든 느낌과 생각이 이미 다른 계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렇듯 이제라도 시작하는 모든 행동은 언제나 가장 빠른 행동이기에, 행동은 또한 언제나 즐거울 수밖에 없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 모든 행동은, 언제나 가장 빠른 미래이기에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혼자 외로이 여행을 떠나고, 어제와는 달리 진지하게 사람을 만나고, 미칠 듯이 자신을 볶아 대고, 술에 만취해서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신을 끄집어내 보는, 일체의 행동들이 즐거울 수밖에 없고 짜릿할 수밖에 없다. 마치 최선의 지름길을 알고 시작하는 탐험가처럼, 자기 행동이 가장 빠른 길임을 확신하고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혹은 무엇인가를 아쉬워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 지금·여기 현실에 대해서 결핍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보다 더 나은 현실을 욕망하는 것이다. 지금·여기보다 더 나은 현실을 욕망하기때문에 지금·여기의 현실의 무언가가 결핍된 듯이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그런점에서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아쉬워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힘이 잉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어서, 후회와 아쉬움은, 욕망과 희망의 첫 느낌일 뿐 절망할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망상까지 해보았다.
이 막막한 우주에서,이 엄청난 인구수 중에서, 나라는 미약한 존재는 없어도 되는 개체이지만 그러나 없어도 되는 허무한 존재가 아니라, 없어도 되는데 생겨난 '잉여'에서 오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어떤 책임이 부여되기보다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마치 자식 많은 집의 없어도 되는 막내자식처럼 어쩌면 자기 마음껏 자기를 찾아가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가 아닐까.
국가나 기업이나 제도, 관습이나 이념이, 그리고 무엇보다 천민자본의 논리가 우리를 뭔가 '결핍' 된 존재로 여기고 우리를 관리하고 규율하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 우주의 남아도는 '잉여'로서 존재하기에 자기 멋대로 살아도 되는, 자기 멋대로 살아야만 즐거운, 이 우주의, 저 안드로메다의, 막내공주와 막내왕자들이 아닐까.
우리의 글쓰기 역시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늦은 것일 수 없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 읽고 쓰고 성찰하는 우리 각자의 행동이 가장 빠른 길이다. 나는 나를 이런저런 망상에 빠트리는 이 문구가 너무 좋다.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첫번째 행동은 아마 꿈을 꾸는 것이리라. 가장 빠른 첫번째 변화는 마음의 실질적 상태를 바꾸는 것이리라. 그리고 가장 빠른 첫걸음은 이제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리라.
(이만교.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그린비. 2009. 381~384쪽)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책을 덮으며 …… 뜨거워진다.
하~!!!
구월이구나.
2010, 9, 1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