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 창비시선 256
박남준 지음 / 창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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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박남준

 

 

눈 덮인 숲에 있었다

어쩔 수 없구나 겨울을 건너는 몸이 자꾸 주저앉는다

대체로 눈에 쌓인 겨울 속에서는

땅을 치고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

어쩌자고 나는 쪽문의 창을 다시 내달았을까

오늘도 안으로 밖으로 잠긴 마음이 작은 창에 머문다

딱새 한 마리가 긴 무료를 뚫고 기웃거렸으며

한쪽 발목이 잘린 고양이가 눈을 마주치며 뒤돌아갔다

한쪽으로만 발자국을 찍으며 나 또한 어느 눈길 속을 떠돈다

흰빛에 갇힌 것들

언제나 길은 세상의 모든 곳으로 이어져왔으나

들끓는 길 밖에 몸을 부린 지 오래

쪽문의 창에 비틀거리듯 해가 지고 있다 

                                                                             

                                                                       -시집 [적막 (창비)] 중에서-

 

 

박남준; 전남 법성포출생. 1984년 [시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등이 있음.


         

 

이만 두고 가기로 한다.
조금 더, 조금 더
미뤄둔
창을 두고 가는 일
더는
욕심부리지 않기로 한다.
기름이 떨어진지 오래인 노숙의 잠깐 잠깐 머뭄도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언제나 길은 세상의 모든 곳으로 이어져 왔으나
들끓는 길에 몸을 부린 지 오래
쪽문의 창에 비틀거리듯 해가 지고 있다'
 
2007, 2, 2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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