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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ㅣ 창비시선 236
최창균 지음 / 창비 / 2004년 7월
평점 :
비 듣는 밤
최창균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빗소리
참으로 많은 생을 불러 세우는구나
제 생을 밀어내다 축 늘어져서는
그만 소리하지 않는
저 마른 목의 풀이며 꽃들이 나를
숲이고 들이고 추적추적 세워놓고 있구나
어둠마저 퉁퉁 불어터지도록 세울 것처럼
빗소리 걸어가고 걸어오는 밤
밤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내 문 앞까지 머물러서는
빗소리를 세워두는구나
비야, 나도 네 빗소리에 들어
내 마른 삶을 고백하는 소리라고 하면 어떨까 몰라
푸른 멍이 드는 낙숫물 소리로나
내 생을 연주한다고 하면 어떨까 몰라
빗소리에 가만 귀를 세워두고
잠에 들지 못하는 생들이 안부 묻는 밤
비야, 혼자인 비야
너와 나 이렇게 마주하여
생을 단련 받는 소리라고 노래하면 되지 않겠나
그칠 줄 모르는 빗소리 마냥 들어주면 되지 않겠나
시집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중에서
비야, 혼자인 비야
가슴을 때리는 너를 듣는다
창 밖 호박잎위를 맴돌다 구르는 빗소리 너를 듣는 밤.
술 힘으로도 울어버리지 못하는 목소리
꾹꾹 힘주어 참는 너의 울음을 듣는다.
삶에 지친 고단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든
가는 숨소리 보인다.
비야, 혼자인 비야
저 지친 영혼의 친구인 비야
아늑한 꿈길로
빗소리 걸어가고 걸어가는 밤
그 걸음으로만 함께 해다오.
비야, 혼자여서 넉넉한 비야
그칠 줄 모르는 빗소리 마냥 듣는다.
고단한 잠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