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 시인선 291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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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의 햇빛 속에는


어린 사슴을 닮았다는 섬의 햇빛은 따가웠다.
녹동항에서 배로 오 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섬이지만
수심을 알 수 없는 마음의 물결을 건너야만
이를 수 있는 곳, 그 가깝고도 먼 섬에
상처 입은 사슴들이 살고 있었다.
그 섬의 햇빛 속에는
다른 데서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녹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햇빛을 다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체를 해부했던 검시실을 막 나왔을 때
쏟아지는 햇빛이 무어라 외치는 것처럼 들렸을 뿐이다.
몽당손으로 그물을 잡고 둘러선 소년들이
파닥이는 물고기 몇 마리를 소출로 내놓은 모습도,
뗏목하나에 의지해 바다로 뛰어들었던 남자도,
세 개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꽃수를 놓던 노파도,
길 양쪽으로 갈라선 채 손 한번 잡지 못하고
눈으로만 피붙이를 만나야했던 어미의 흐느낌도,
여든네 명의 목숨을 불태웠던 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들도,
없는 것처럼 없는 것처럼 살아오지 않았던가.
바다 저편에서 단지 제 고통에 겨워 읊조리지 않았던가.
굉음처럼 따가운 햇빛 아래
다리 붉은 게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길 잃은 게가 숨어든 숲그늘,
썩어가는 손으로 전지해놓은 나무들은 아름다웠다.
두 다리가 없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걸어가는 처녀의 웃음소리,
나는 햇빛 속으로도 그늘 속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다.

                                    -나희덕의 ‘그 섬의 햇빛 속에는’ 전문. 시집 ‘사라진 손바닥’-

  지하철 안에서 몇 번째 앞을 지나가는 흰 지팡이를 모른 척 고개를 박고 있었다. 창에 걸린 햇살 하나, 시어로 박힌다. 3년 전 소록도 중앙공원의 나무의자에 앉아 있을 때 까무룩 지나가던 빛 화살이었다. 잊고 있던 그 여행길, 어린 사슴의 섬. 그곳에서 머문 네 시간이 살아난다.

 24년 전의 시간들이 거기 놓여있었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만났던 중 2때 소록도는 너무나도 강렬하게 남아서 정말로 보았을까, 의심스럽게 했다. 어쩌면 책이나 영상으로 각인된 이미지는 아닐까 싶은 기억의 환청에 오래 시달렸다. 붉은 벽돌의 건물들과 대비되던 푸른 이미지들....... 처음 만난 바다는 낮에도 밤에도 푸르게 으르렁거렸다. 티 없이 잘 가꾸어진 잔디는 만지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았다. 더펄거리는 내 머리보다 더 잘 손질된 나무들의 푸름은 박제되어 있었다. 소독약이 놓여있던 우물물도 까닭 없이 푸르렀고 그 모든 것을 비추는 8월의 하늘은 더 할 수 없는 푸름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길. 이제는 가도 가도 황톳길을 만날 수 없고 문둥이라는 말도 찾을 수 없지만 여전히 멀고 먼 섬. 몸보다 마음이 멀어서 다가 갈 수 없는 먼 나라. 아직도 당신들만의 천국이었다.

 터무니없이 밝은 햇살은 푸름은 더 푸르게 했고 붉은 벽돌을 더 붉게 했다. ‘국립소록도병원’의 흰 건물 앞마당,  활기 가득한 자원봉사자들과 무심한 듯 잡담을 나누고 있는 휠체어들 사이에도 빛은 고르게 쏟아져서 눈이 부셨다.

 그리고 거기, 몽당손들이 강제로 가꾼 아름다운 중앙공원을 오래 걸어 다녔다. 6000평 푸름 속을 핏빛의 심정으로 같은 길을 걷고 걷다가 만나던 보리피리 시비에 내리던 빛에 잠시 눈감아야했다. 사랑과 박애정신을 배우던 어린 시절도, 욕망의 벽과 벽으로 고립된 그 때에도, 내 머리위에 내리던 8월의 뜨거운 햇빛은 기억을 오롯이 되살려주었다. 격리되고 유폐된 삶의 흔적들이 붉은 벽돌로 서럽게 상징되던 어린 날의 가르침을 실체로 인정했다. 나무 한 그루만도 못한 목숨과 삶이 문둥병이라는 천형으로 거기 버려져 있었다.

 그것들을 생각하던 시간들이, 그 빛 화살 하나하나가 시어들 속에서 빛의 속도로 가슴에 꽂힌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어린 사슴들의 소리 없는 처절한 절규를 듣는다. 내 안에서부터 아직도 진행형인 유배를 만난다.

 나는 햇빛 속으로도 그늘 속으로도 들어 갈 수가 없었다.

 2004. 11. 28.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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