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노래여, 노래여, 울음이여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노래여, 노래여,,,,,,, 아! 징~징~징~ 울리는 울음이 되고 마는 노래여.
 "칼의 무늬가 내 몸의 무늬를 건너갈 때"
 두 쪽으로 나누어지는 순간, 칼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더 이상 칼로는 베어지지 않는 것들의 세상, 노래는 저 홀로 흐느끼고, 간절한 노래 없이는 도저히 해독되지 않는 저 문장들 속을 나는 오래 오래 서성인다.
 동사와 주어로만 이루어진 단문.
 어떤 수사보다 화려한 내 모국어의 단순 명료함은 황홀하다. 정신을 잃고 노래를 듣는다. 밑줄 그어진 그 노래는 칼의 노래였다가 언어의 노래가 되었다가 역사의 노래가 된다. 마침내 한 사람의 노래가 된다. 이순신의 것도 아니고, 김훈의 것도 아닌 나의 노래일 뿐이다. 내 노래는 징~징~ 울면서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 줄기 일자진으로 적을 맞으리." 나를 부른다.
 벌써 황사가 시작된 봄바람이 지천으로 흔드는 그런 날, 나는 노량으로 달려간다. 나의 사랑도 나의 적도 결국은 내 안에서 내가 맞서 싸울 대상이었다.

 노량에서 내가 만난 사내는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일휘소탕 혈염산하)" 는 무늬를 내 몸에 남길 칼을 차고서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노래를 부른다. 그의 노래는 처연하고, 그의 노래는 허무하다.
 아, 그의 이름은 이순신.
 광화문 네거리에서 공해를 몸으로 견디며 서 있는 장군도 아니고, 많은 곳에서 많은 상징으로 추앙받는 성웅은 더더구나 아닌 그저 인간 이. 순. 신.
 단순 명료한 점을 찍듯 그의 앞에서 수없이 울던 칼은 이제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김훈을 지나 내 머리에서 발끝을 적신다. 그의 핏자국을 따라 나는 명량으로, 옥포로, 고하도를 지나, 영산강 하구로, 해남으로, 진도로, 노량까지 저 홀로 꽃이 피는 무수한 버려진 섬들 사이 바다를 지나간다. 산맥으로 출렁이는 바람을 맞으며 적들이 수런거리는 기척을 느낀다. 다가오지 않는 적의 기척에, 희망은 멀어서 보이지 않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날들을 겨우겨우 흘려보내는 그가 흘리는 땀 냄새를 맡는다.

 “명량에서, 나는 이긴 것인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들이 명량으로 몰려왔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적들이 명량에서 죽었다. 남동 썰물에 밀려갔던 적의 시체들이 다시 북서밀물에 밀려 명량을 뒤덮었다. 죽을 때, 적들은 각자 죽었을 것이다. 적선이 깨어지고 불타서 기울 때 물로 뛰어든 적병들이 모두 적의 깃발에서 익명의 죽음을 죽었다 하더라도, 죽어서 물 위에 뜬 그들의 죽음은 저마다의 죽음처럼 보였다. 적어도, 널빤지에 매달려서 덤벼들다가 내 부하들의 창검과 화살을 받는 순간부터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들의 살아있는 고통과 무서움은 각자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임진년, 그가 크게 이긴 명량에서, 싸움이 끝난 바다를 보는 그의 시선에 전율한다.
 왜 전쟁을 하는지도 모르는채, 전쟁이라는 거대한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당장 눈앞에 닥치는 살욕에 의해 베어지는 백성들, 일본백성들은 그 앞에 적이었다. 그들은 그가 쳐 죽여야 할 적이었지만, 또한 우리 백성과 마찬가지로 무고한, 순박한 개인일 뿐이었다.
 지금, 우리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국가와 국회를 대신해 전쟁을 해야 한다. 소통될 수없는 저마다의 몫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사는 우리는, 각자의 전쟁만으로도 부족해서 전쟁을 위한 명분 없는 전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고뇌는 그의 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허무 또한 그의 것만이 아니었다. 400년 후에도 여전히 그는 고뇌에 찬 잠자리로 등판에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 한기로 새벽을 맞는다.
 "...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칼을 버리고 저 병신년 이후의 곽재우처럼 안개 내린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개울물을 퍼먹는 신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전쟁, 어느 군대에서나 장수는 용감하게 싸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부하만 챙겨서 되는 일이 아니라, 백성까지 돌봐야하고, 정치적 처세도 할 줄 알아야하며, 선전용 제스쳐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왕이 아니면서, 왕이어야 하고, 왕의 권력은 갖지 못하면서, 왕의 의무를 져야한다. ‘의주’ 피난지에서도 궁녀를 탐하는 왕을 위해, 아니 왕의 울음을 위해서 싸워야 하고, 살기를 애원하는 백성들의 울음을 위해서도 그는 싸워야 한다. 울음에 둘러싸인 그는 고독하다. 왜군만이 적이 아니라 울음을 우는 그 모두가 그가 맞서야 할 그의 적이다. 하지만 적은 그에게 자신의 존재이유이며 곧 목숨이다.
 그는 죽기로서 살고자 한다. 적의 적으로서 죽기를 원한 그의 죽음은 내면에 희망을 갖지 않고 절망으로서 절망을 돌파할 수밖에 없는 칼의 단순명료함이다. 칼에서 비린 피 냄새가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현실. 그를 따라 다니며 나는 눈물겹다.
 새벽 순찰, 봄 바다 비린 안개 속을 나아가면서 그가 맡는 살아있는 목숨의 냄새만큼이나 죽은 여진이 썩는 냄새나, 아들 면의 젖 냄새와 비벼지는 화약 냄새는 너무 멀어서 서럽다.

 그가 수행하는 역사 속 전쟁에서 된장을 만드는 개별의 손을 만나고, 푸근한 아낙이 내어오는 장터의 국밥을 먹고, 옥수수 밭이랑이 바람에 눕는 썰물소리를 듣는다. 가만히 흔들리는 갑판에 누운 몸 위로 달빛이 내린다. 그의 노래는 아득하게 멀어져 간다.
 “세상의 끝이...이처럼...가볍고...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이 세상에 남겨놓고...관음포의 노을이...적들 쪽으로...”
 긴 소절, 여운 진한 그의 노래는 여기서 끝이지만 끝이 아니다.
 일자진으로도 학익진으로도 맞설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세상, 남은 세상의 복잡한 권력은 여전하다. 그 힘의 권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면사첩 위에 걸려있는 칼은 그저 고철로 녹슬어 가는 것으로 보여도 결코 노래를 멈추지는 않는다. 이순신의 것이고 김훈의 것이고 내 것이고,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한 이 노래. 각자의 절망 앞에 놓인 개별의 노래는 마침내 합창으로 울려 퍼진다. 칼의 노래를 듣는다.
 징~징~징~ 칼은 울면서 노래한다.
 모든 전쟁의 아픔을 담고 칼은 노래한다. 죽어 간 모든 이의 소망을 노래한다. 절망을 노래한다.


                                                         2004. 2. 15.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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