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메인주 크로스비에서 삶은 이어졌다. 마거릿은 전에 걸핏하면 잠을 자는 신자였던 에이버리 메이슨이 죽은 뒤로 다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설교도 여전히 진지하고 좋다는 것을 밥은 알아차렸다. 그리고 해셀벡부인은 밥에게 격주에 한 번씩 가져오던 진을 다시 물로 희석해달라고 부탁했다. 정말로 크게 넘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고, 그래서 밥은 절반보다 더 많이 희석해서 갖다주었다. 헤로인중독이었던 열쇠 가게 주인은 플로리다로 떠났다. 혹은 그렇다는 말이 돌았다. 그리고 6월이 되었다. 비가많이 오고 쌀쌀했지만, 메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이었다. - P435

마음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그것은 사실이고, 밥의 마음은 여전히 루시를 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고려할것이 있는데, 마음은 유기체의 한 부분일 뿐이고, 유기체의일은 살아남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살아남고자 하는 그 욕망이 이미 밥에게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그 욕망은 자라났다. 마음의 욕망ㅡ그것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계속 자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일이 으레 그렇듯 당연하게도 그것에는 불편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밥은 마거릿과 함께하는삶에서 느낀 새 희망을 붙잡았다. 밥은 건망증 증세 때문에 마거릿을 유심히 지켜보았지만 아직 별다른 일은 없었다. - P495

올리브 키터리지는 슬펐다.
그녀는 이제 아흔한 살이었고, 친구 이저벨 굿로는 점점더 잠이 늘었다. 바로 요전날에는 심지어 올리브가 신문을읽어주는 동안에도 잠들어버렸다. 그래서 올리브는 루시가전화를 걸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올리브"라고 말했을 때 기뻤다.
올리브는 아무때나 오라고 했다.
그래서 ㅡ밥이 사무실을 청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ㅡ루시가 올리브의 아파트로 왔고, 루시는ㅡ올리브가 보기에ㅡ눈부셨다. 녹색 스니커즈와 평범한 노란색 상의에 청바지를입고 있었다. 루시가 카우치에 앉아 말했다. "좋아요, 올리브ㅡ내 이야기는 이거예요. 지금까지 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슬픈 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면 잘못된 문장일 거예요. 하지만 이 안에는 슬픔이 담겨 있고, 아름다움이 있어요. 이이야기가 정말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말해줘요."  - P505

우선 떠오르는 대로 써보면, 밥에게는 이런 모습들이 있다. 성찰하는 유의 사람이 아닌 밥, 죄를 먹는 사람 밥,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 큰 사건에 평생 붙잡혀 살아온 밥, 예순다섯 살에 사랑에 빠진 밥, 사랑하는 형수를 잃고 당장 슬픔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에 의아한 밥, 루시와 만나면서 ‘확장된 의식‘을 경험하는 밥. 하지만 그 모든 모습을 아우르면서, 이것이 밥의 이야기가 되는 이유는 이것일 것이다. "이유가 뭔지 알아요? 당신은 여전히 밥 버지스니까요. 누구도그 사실은 뺏어갈 수 없어요." (매슈 비치의 말), "나는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괜찮아요. 당신의 머리가 잘렸다고 해도당신은 여전히 - 여전히 밥일 거예요."(루시의 말) "그리고그게 가능했던 건 당신이 밥 버지스이기 때문이야." (마거릿의 말) 밥과 루시의 사랑도 그 결말은 ‘밥은 밥이다‘로 정리된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한 이 소설의 핵심 아닐까. 그리고 루시가 던진 이 모든 기록되지 않은 삶의 의미에 대한답이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그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인 한, 그 삶이 우리의 삶인 한, 우리는 우리라는 것. - P521

옮긴이의 말 제목인 ‘걷고 말하고 그저 행복했다‘는 이소설의 본문에서 가져왔다. 이유라면, 그저 그 문장을 만났을 때 ‘이러면 정말로 행복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작 중 하나인 『무엇이든 가능하다』(2019)의 옮긴이의 말 제목으로 썼던, 그리고 역시 그 책의 본문에서 가져왔던 ‘햇볕 속에 (함께) 앉아 있는 것만큼이나 행복해지는문장이었다.
그들이 이제 무르익은 노년기이거나 이제 막 노년기에 접어들었음을 고려하면 ‘걷고 말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아직 아니라면, 언젠가그런 시기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평범한 것이 어렵고 힘들 - P524

게 느껴지는 시기와. 그러니 우리가 평생 걷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행복한 일이 될 테고,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내게 너무도 깊은 연결감을 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 삶이 기록되지 않더라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무소음 객차에서 옆에 앉은 남자를 사랑했다는 루시의 그 엉뚱한 사랑 이야기처럼, 일상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을 일렁이게 한 그런 아주 엉뚱한 이야기라도 모든 것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마지막에 루시가 올리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주었듯이, 그렇게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없는 행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에게 그런 행운은 없다. 지금자신이 너무나 외롭고 영영 그럴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정말로 어떤 것과도 아무런 연결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있더라도, 우리가 우리로서 그저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감각을잃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올리브가 올리브이기에, 루시가 루시이기에, 밥이 밥이기에 그렇듯, 우리가 우리이기에. - P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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