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노래
작은 사과나무를 돌보는 아버지 옆에 서면 사과나무꽃입술이 흙 가장 보드라운 살에 떨어져 분홍 웃음소리. 아버지는 꺼멓게 말라가는 속잎을 따내면서 "얘야 일찍들어온나 처녀애들 밤길은 위험하니라" 전지가위에 잘려 나간 곁가지를 주워 담을 때 본 근육통으로 부어오던 아버지의 손등. "밤길 어둡다고 바래다주는 사람이 있는걸요" 물뿌리개에서 햇살이 번져 올랐습니다. - P41
임지은
아빠는 가꾸고 돌보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쉬는날이면 심은 나무의 가지를 치고, 잡초를 솎고, 집 앞마당에서 시작해 동네 골목을 전부 쓸곤 했다. 한 친구는그런 아빠를 보고 내게 저 사람은 청소부냐고 물어보았다. 아빠가 그 친구의 자전거까지 고쳐주는 것을 보고 나는 알았다. 아빠는 가족을 가꾸는 일을 제일 어려워했다는 것을. 아빠가 내게 당부한 것은 대체로 알아서 잘해라, 라는 종류의 것이었다. 시 속에서 아버지가 최대한 다정하게 할 수 있는 당부가 위험하니 일찍 들어오라는 말인 것처럼, 딸이 귀가할 때까지 잠들지 않고기다렸다 문을 따줄 거면서 왜 마중을 나온 적은 없었을까. 그래서 나는 바래다주는 사람이 없어도 바래다주는 사람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 P42
새
젖은 발가락으로 꿈을 꾼다 무거운 흙 속에서도 꼼지락거리며 꿈은 사랑과 같이 스며들어 자유로 다시 선다 잠 속에서도 자유하지 못하는 한낱 남루보다 못한 깃발 꿈은 하늘이 되고 땅이 되고 숟가락처럼 가지런히 버티고 선다 이렇게 아래에서 꿈꾸는 것들이 자식을 기른다천년을 버티고 역사를 세운다 - P43
정재율이 시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다 나의 어깨 위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몸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새와는 다르게 꿈에서조차 가벼울 수 없는, 무거운 흙 속에 두 발이 묶인 이는 그 누구보다 자유를 원할 것이다. 무거운 마음을 묻어둔 채 그 위에 깃발을 꽂고, 숟가락을 꽂는 사람만이, 그렇게 안간힘을 써가며 자유를 외치는 사람만이또 다른 역사를 세울 수 있다. 지나온 과거의 날들에 대해, 그 행적에 놓여 있는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해 생각한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이 역사의 땅에서 시인 허수경의 시를 다시 읽을 수 있다. 창밖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자유를 원하는 새 한 마리가. 그것도 무척이나 가볍게.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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