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삶의 전환점이 될 만큼 중요한 일인지몰랐지만, 돌이켜보면 개인의 역사에서 변화를 일으킨 계기가 된 일이 있다. 나에게는 체리빙수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아침에는허기를 느끼며 깨어났고, 깨어 있는 내내 허기가 가시지 않았으며, 밤에는 허기에 허덕이며 잠들었다. 나는 언제나 배고픔에 시달리는 상태인 동시에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도 시달리는 상태였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굶기와 먹기라는 한계선을 오가는 전쟁이었다. 절제와 충동이 대립하는 전쟁이었다. 물론 식욕을 참으려고 애쓰는 일은 일반적으로다이어트라고 표현하지, 전쟁이라고 명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몸을 전장으로 삼는 전쟁이었다. 본능적 욕구를 억누르는, 절제력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허기와 욕망이 충돌하는, 음식과 관련한 모든 것을 적으로 돌리는 전쟁. 그러나 (물리적 허기든 정신적 허기든) 허기를 채워주는 것은 음식이다. 나는 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에도시락을 꺼내놓고 먹었다. 가족들이 잠들면 불 꺼진 주방으로 숨어들어 냉장고를 열고 맨손으로 반찬을 집어 허겁지겁 입안에 욱여넣었다. 피자 한 판 - P69
을 몽땅 먹어치운 뒤 토하거나, 치킨을 상자째 먹고나처 설사약을 집어삼켰다. 록산 게이는 「헝거』에서 "나는 배고프지 않으면서 배고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 허기는 마음과 몸과 심장과 영혼에 모두 깃들어 있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것이무슨 상태인지 안다. 하루종일 공복감이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허기라는 형벌에 고문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배고픔이라고 여긴 것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10대 초반부터 싹트기 시작한 결핍감, 10대 중반에 완전히 사라진 가능성,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는발레리나의 꿈, 열패감에도 불구하고 놓아지지 않는희망, 그 모든 것이 허기라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로 환원되지 않았을까? 달리 말해 허기란 내가 가지지 못한 몸이었고, 내가 가지지 못한 몸에 대한 욕망이었으며, 내가 가지지 못한 몸에 대한 욕망의 좌절이었다. - P70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네 권의 논픽션을 완성했다. 원고 마감을 어기거나 미루지도 않는다. 취재나 강연에 늦은 적도 없고, 준비를 소홀히 한 적도 없다. 나의 일상은 잘 유지되고 있다. 집은 언제나 정돈되어 있고, 가구와 바닥은 반질반질하게 닦여 있으며, 모든 물건은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다. 관리비나 공과금을 연체하지 않고, 나의 능력치를 넘어서 출판계약서에 사인하지 않는다. 외출할 때는 깔끔하게 옷을 입는다. 옅게 화장하고 질 좋은 핸드백과 구두를 착용한다. 귀가하면 구두를 신발장에 넣고, 핸드백 속의 물건을 제자리에 수납하며, 옷을 옷걸이에 건다. 나는알코올중독자의 이미지를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 P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