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일 전 이곳에 처음 짐을 풀었다. 반년 전부터 수시로 숙박 사이트를 드나들다 큰맘 먹고 결제한 데였다. 여행 경험이많진 않지만 전부터 비행기표 알아보는 걸 좋아했다. 앞으로절대 가볼 일 없고, 가보지 못할 나라라도 그랬다. 직장 일로영혼이 어둑해지거나 인간에게 자주 실망할 때면 혼자 이국의낯선 도시를 검색해보곤 했다. 태블릿 피시와 다정히 얼굴을맞댄 채 열대지방 햇볕 쬐듯 전자파를 쐬었다. 세상에는 정말많은 도시와 방이 있었다. 인터넷 덕에 이제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는 유럽의 수백 년 된 성을 빌릴 수 있고, 성공한 현대미술가나 살 법한 대도시의 감각적인 스튜디오도 구할 수 있었다. 극지방의 오두막이나 구 공산권 국가의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거주 형태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성수기와비수기, 체류 기간에 따른 할인율도 달랐다. 세계 각국의 임대인과 임차인이 직접 거래하는 그 사이트는 어디선가 떠나오고 또 떠나가는 이들로 늘 북적였다. 세상에 자기 좌표를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나 사진을 보면 가끔 삶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인생이 홀씨처럼 가볍고 클릭처럼 쉬운 것으로 여겨졌다. - P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