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퇴계는 결코 영남의 퇴계가 아니고 율곡은 결코 기호의 율곡이 아니다. 조선의 퇴계이고 조선의 율곡인 것이다. 대한의 퇴계와율곡이며, 세계의 퇴계와 율곡인 것이다. 일찍이 박세채(朴世采)가 말했듯이
"성리학에 깊이 침잠한 것은 퇴계였고 경세제용經世濟用)의 학을 담당한 것은 율곡이었다." 이론적 지성의 퇴계와 실천적 지성의 율곡이다. 나는 우리 지성사에서 이 두 분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 큰 자랑이자 복이라고 생각한다.
한 시대 지식인으로 살아가면서 때로는 이론에 침잠하여 사리를 가늠해야할 때도 있지만, 실천에 매진하여 힘있게 추진하는 지성이 필요한 때도 있는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 속에서도 수없이 반복되는 현상일 수 있다. 80년대의실천적 지성이 90년대에 와서 이론적 지성으로 자신을 추스르는 것을 보면서나는 퇴계와 율곡 둘을 모두 간직할지언정 어느 한 손을 들지는 않는다. - P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