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역시 시로 적은 것 말고는 하잘것없다 추려봐도 부스러기뿐이다 구태여 적지 않는다
이 시집을 내기까지 걱정하고 손 잡아준 분들이 있다 따로 챙겨준 분이 있다 사람의 정이 이리 가슴 저리다
2007년 1월 위선환 - P-1
새의 길
새가 어떻게 날아오르는지 어떻게 눈 덮인 들녘을 건너가는지 놀빛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지 짐작했겠지만 공중에서 거침이 없는 새는 오직 날 뿐 따로 길을 내지 않는다 엉뚱하게도 인적 끊긴 들길을 오래 걸은 눈자위가 마른 사람이 손가락을 세워서 저만치 빈 공중의 너머에 걸려 있는 날갯깃도 몇 개 떨어져 있는 새의 길을 가리켜 보이지만 - P9
협착
문 닫은 지 여러 해 되어서 폐철더미가 다 된 삼화철공소 묵은 담장 그늘이 담장 아래로 길게 난 골목길을 거의 덮어버려서 남은 길의 폭이 반 뼘도 안 된다. 몸을 잔뜩 비틀어서 어깨부터 들이민다 해도 당장 몸을 끼워 넣는 것부터가 어렵겠다. 저 골목길을 어떻게 빠져나가나…… 참으로 옹색한 협착이 있다. - P19
화석
지층이 뚝, 잘려나간 해남반도 끝에다 귀를 가져다대면 느리게 길게 날개 젓는 소리가 들린다. 공룡 여러 마리가 해안에 깔린 너른 바위 바닥에 발목이 빠지면서 물 고인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때는 새가 돌 속을 날았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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