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을 타고 나는 사람이 있다면, 朴景利 선생님의 업은 土地다. 선생님이 업에 가위눌려 신음하고, 좌절하고, 거부하고, 끌어안는 20년 세월을멀리서 가까이서 느끼면서 나는 그 업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土地가 잘 안 써지는 괴로운 긴날 선생님은 손이부르트도록 텃밭을 매며 뜨거운 흙과 땀에 치유되어 그 업에 새롭게 도전하곤 했다. 선생님은 처절하게 업과 싸워서 마침내 이긴 『土地의 한 영원한 주인공이다.
張明秀 한국일보 편집위원 - P-1
사건이 난 뒤 열흘이 지났으나 경찰은 범인의 흔적조차 찾아내질 못하였다. 온통 팽팽한 긴장 속에서 하마 어디서 쾅! 하고 터질지 모르는 소리를 초조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이도시의 사람들, 그러나 열흘을 넘기면서 긴장은 풀리기 시작했고사람들은 즐거움에 가슴이 뿌듯해져갔다. 어디서나 그 사건은 화제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끼리 눈과 눈이 마주치면 눈으로 이야기하였고 귓속말로 몸짓으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들리지 않는 함성은 차츰차츰 도시를 휩쓸어가고 있었다. 추상적이던 가정부(政府), 상해에 있다는 우리 임시정부, 사람들은 그존재를 실감하면서 무기력해진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희망의 빛을보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조국. 그 조국이 내게로 올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남녀노소 빈부와 계급의 차이 없이 누구나 가슴 떨리는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보다 더 가증스러운 배신자, 반역자, 한겨레의 뿌리에서 나온 친일파 앞잡이들에 대한 응징도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만일에 어느 누가 거리에 군자금모금함을 내놓았다면 이 순간만은 사람들 마음이 가락지 비녀 다뽑아넣었을 것이며, 지게꾼 노점상 죽 팔던 노파까지 하루벌이를 - P11
다 털어넣었을 것이다. 윤국이도 걸핏하면 남강 모래밭으로 달려나가 데굴데굴 굴렀다. 몸이 가려운 강아지처럼 굴렀다. 구르면서 ‘아버지다! 아버지가 다 꾸미신 일이다!‘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나 모든 것 다 알 것 같았다. 알 것같아서 피가 끓었다. 그 자신도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으며 진주의 집을 수색한 것은 물론 평사리까지 형사대가 파견되어 집안을 뒤졌고 마을 사람들까지 불러들여 조사를 했다. 형사가 넌지시 관련되지 않았는가 말했을 때 길상은 물끄러미 형사를 바라보며 "그만한 돈 만들려면 우리도 어려운 처지는 아닌데 뭐가 답답하여 남의 집에 가서 강도질을 했겠소."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어쨌다는 거요. 나는 석 달 가까이 이곳에 와서정양하고 있었는데 내 혼백이 가서 그 짓을 했단 말씀이오?" "댁은 피해가 없질 않소. 그들보다 댁의 재력이 월등한데 이상하지 않느냐 그 말이오." - P12
"글쎄올시다. 왜 우리집은 털지 않았는가, 이상하긴 이상하군요. 감옥살일 했다고 봐준 겐가?" "이보시요! 혁명지사 왜 이러시오!" "왜 이러시오? 그건 내가 할 말이오. 정말 왜 이러시오? 현금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가졌을 터이고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온들 뭐가 나오겠소" "......" "누가 압니까? 요 다음엔 우리집에 화살이 꽂힐지. 하룻밤에 두집 털기도 벅찬 일, 세 집이나 털 수는 없었을게요." "당신은 재미있어 하는군. 뭐가 그리 신이 나오!" "그러면 악을 쓰리까? 그것 다 해본 것이오. 무고하다고 악을 써본들 생떼 쓰고 나오면 별수없더군. 사람의 기만 넘고 명대로 살지도 못하겠더군." 그러고도 듣기 거북한 얘기가 한동안 서로간에 오고갔으나 형사는 꼬리를 잡지 못한 채 떠났다. 혐의가 있고 없고 간에 범인을 잡 - P12
지 못하여 노심초사,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경찰이 길상의 전력(前歷)을 감안하면 그를 진주까지 구인(拘引)하여 조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분히 친일적으로 보여지는 서희의 존재, 평소 음으로 양으로 돈을 뿌려놨던 것이 이럴 경우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애꿎은 두 서기, 그러니까 이도영 집의 서기와 김두만 집의 서기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거의 병신이 되다시피 고문을 당하였고 다급한 나머지 덮어놓고 이름들을 입에 올려 무관한 사람들이곤욕을 치러야 했었다. 아무튼 두 명의 서기는 파멸이었다. 전쟁에 부상한 병사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그것은 비참한 희생이었다. 그동안 김두만은 만나는 사람마다 내 돈 강탈해간 놈들 잽히기만 해봐라! 칼로 배애지를 푹 찔러 직이지 그냥 두나 하고 욕을 했다. 어느놈이든 턱아리를 놀렸기 때문에 돈 있는 줄 알고 들어오지 않았겠는가. 입에 거품을 물고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떠들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맞장구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운수 불길하여 손해가 크다는 정도의 위로를 하던 사람들도 차츰 그를 피하게 되었고, 흥분하는 김두만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 한마디 없이 발길을 돌리곤 했다. 별수없이 그도 욕을 안 하게 되었지만 경찰이 내통했다는 의심을 그에게 전혀 갖지 않는 것을 알고는 빼앗긴 돈이 아까워혼자 꿍꿍 않았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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