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정희씨는 1948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다. 교사·잡지사 기자 등을 거쳐 『또 하나의문화」 창간 동인,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역임한 그는 1991년 6월 지리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다. 1975년 「현대시학』의 추천을 받은그는 목요시」 동인으로 오월 시인으로활동하면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이 시대의 아벨』 (1983),
「눈물꽃』(1986),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광주의 눈물비」(1990), 『여성 해방 출사표』(1990), 아름다운 사람하나』(1991) 등의 시집을 냈다.
비극적인 오월의 봄에서 절망과 더불어 그 절망을 타넘을 열망을 뿜어올리는그는 銀이로되 그리움의 분노에 젖었지만 희망으로 진전할, 힘차고 당당한 서정으로 자신의 시적 언어를 고양시키고있다. 그것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첨예한 대결로 그 자신을 밀고 나아가 우리의 공동체적 삶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가려는 그의 실천적 의지와 전망을 그가보여주고 있음을 뜻한다. 오염되고 타락하는 우리에게 있어 언어를 통한 이 의지와 전망의 형상화는 그가 우리 시단에기여하는 귀중한 문학적 자산이다. - P-1

아무리 우리가 사는 세상이통스럽고 절망적이라 할지라고고여전히우리가 하루를 마감하는 밤하늘에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별빛처럼 아름답게 떠 있고, 날이 밝으면 우리가 다시걸어가야 할 길들이 가지런한 뻗어 있습니다. 우리는 저 길에 등등을 돌려서도 안 되며 우는 이름들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생각을 하게 되면 내가 꼭 울게 됩니다. 내게는 눈물이 절망이거나 패배가 아니라 이 세계와 손잡는 순결한 표징이며 용기의 샘입니다. 뜨겁고 굵은 눈물속으로 무심하게 걸어 들어오는 안산의저 황량한 들판과 나지막한 야산들이 내게는 소우주이고 세계 정신의 일부분이듯이, 그리운 이여, 내게는 당신이 인류를 만나는 통로이고 내일을 예비하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함께 떠받치는 하늘에서 지금은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스산한 바람이 무섭게 창틀 밑을 흔드는 계절일지라도 빗방울에 어리는 경건한 나날들이 詩의 강물 되어 나를 끌고 갑니다. - P-1

自序

흘릴 눈물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두 눈을 타고 내려와 내
완악한 마음을 다숩게 저미는 눈물, 세상에
남아 있는 것들과 세상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하는 눈물, 언제부턴가 눈물은 내시편들의 밥이 되어버렸고, 나는 그 눈물과
마주하여 지금 아득한 시간 앞에 서 있다.
불혹의 나이라는 마흔의 고개를 바라보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띤 소중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여의었다. 돌연한 어머님의 타계가 그렇고 스승의 죽음이 그렇고
문단 선배의 죽음이 그렇다. 또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젊은이들이 가혹하게 민주주의 제단에 바쳐졌다. 나른한 어둠이 나를 덮치려 하고 있다. 멈추지 않고 가는 것이 살아 남은자들의 미래인데도......

1987년 가을 高靜熙 - P-1

땅의 사람들 1
ㅡ서시


겨울 숲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도시에서 지금 돌아온 사람들은
폭설주의보가 매달린 겨울 숲에서
모닥불을 지펴놓고
대륙에서 불어오는 차가움을 녹이며
조금씩 뼛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견디며
자기 몫의 봄소식에 못질을 하고 있다
물푸레나무 숲을 흔드는
이 지상의 추위에 못질을 하고 있다
가까이 오라, 죽음이여
동구 밖에 당도하는 새벽 기차를 위하여
힘이 끝난 폐차처럼 누워 있는 아득한 철길 위에
새로운 각목으로 누워야 하리
거친 바람 속에서 밤이 깊었고
겨울 숲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모닥불이 어둠을 둥글게 자른 뒤
원으로 깍지낀 사람들의 등뒤에서
무수한 설화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서걱거린다 - P11

지리산의 봄 1
-뱀사골에서 쓴 편지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 P37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 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 P-1

강물
ㅡ편지 1


푸른 악기처럼 내 마음 울어도
너는 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암울한 침묵이 반짝이는 강변에서
바리새인들은 하루종일
정결법 논쟁으로 술잔을 비우고

너에게로 가는 막배를 놓쳐버린 나는
푸른 풀밭,
마지막 낙조에 눈부시게 빛나는
너의 이름과 비구상의 시간 위에
쓰라린 마음 각을 떠 널다가
두 눈 가득 고이는 눈물
떠나가는 강물에 섞어 보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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