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地」 2부는 1부의 말미로부터 몇년 후인1910년대 중반을 시대 배경으로 삼고, 경남하동의 평사리에서 광막한 불모의 고토간도(間島)로 무대가 옮겨간다. 최참판댁의 가명(家名)을 떠맡은 딸 서희는 고향에서 갖고 온 재물을 밑천으로 토지와 식량에 투기, 대부호가 되어 자기네 재산을 횡령한조준구로부터 잃어버린 땅을 다시 사들이기 시작한다. 서희는 양반이며 독립투사인 이상현의 구애를 거절하고 하인과 진배없는 길상이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고 마침내 득의귀향(得意歸鄕) 한다. - P-1
누리에 스스로 있는 빛을 모아 글로 빚고, 그로써민생(民生)의 이목耳目)을 깨우쳐준 이가朴景利 선생임은 세상이 다 아는 지 이미 오래인터이다. 사람들이 선생을 사람의 위로서, 기리고 배우기를 도모하며, 여느 무리와 더불어의논하기를 저어함도 실로 까닭이 그에 있었던것이다. 그렇듯 선생의 문학은 당신의 생애와 뜻을달리하지 않았으니, 그 정신의 이바지는 자못 모든 생령(生)의 근본에까지 미치는 바 되고도오 히려 남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너무 어려워서 선생의 그 빛남과 너르고 깊음을 감히 말하지 못한다. 하물며 사해(四海) 의물망(物望)을 함부로 이를 것인가.
李文求 作家 - P-1
1911년의 오월, 용정촌(龍井村) 대화재(大火災)는 시가의 건물 절반 이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사진塵沙)을 거슬러올리며 달려든, 오월에 흔히 부는 서북풍이 시가를 화염의 바다로 몰아넣고 걷잡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아직 공사가 진행중에 있는 절(雲興寺]에 피신한 서희 일행은 용이와 길상, 월선이 임이네 훙이, 그리고 간도(間島)에 오면서부터서희 시중을 들게 된 새침이와 부엌일을 하는 달래오망이, 일꾼 두사람이었다. 절로 오게 된 것은 지난 삼월 포교하러 왔었던 중 본연(本然)이 일본 통감부(統監府) 파출소의 서기였던 최기남(崔)의 협조를 얻어 사찰 건립에 착수하였을 때 서희는 적지 않은 금액을 희사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절로 피신해온 사람은 서희 일행만은 아니었지만, 용정촌의 교포 이재민의 대부분은 천주교 성당으로 혹은 일본 영사관으로 몰려갔다는 것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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