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상
경남 함양 마천에서 태어났다. 
1987년 단편 「십오방이야기」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실상사」 「모란시장 여자」 「찔레꽃」, 장편소설 「그대여 다시 만날 때까지」 「길 없는 산」 「푸른 방」 「누망」등이 있다. 
2003년 「누망」으로 단재상(문학부문)을,
2008년 「찔레꽃」으로 요산문학상과 아름다운작가상을 수상했다.

고비사막의 바람 속에서 풍화되고 있는 낙타를 만났다. 늑대가 뜯어먹고 간 뒤 작은 들쥐들이 들락거리며 내장을 파먹고, 독수리가 날아와 마지막 살점까지 청소해버린 낙타의 뼈가 내 정신을 수직으로 세웠다.
제목을 ‘낙타‘로 정한 것은 짐승 중에서 낙타만이 유일하게 영혼의 속도로 걷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몽골초원과 고비사막을 건너는 여행이지만, 결국은 자기 내면과 만나는 여행이 될 것이다. 낙타가 찍고 간 부정과 몰락의 발자국에 니체의 문장도 가끔 섞여 있다. 바라건대, 낙타를 타고 무사히 생의 고비를 건널 수 있기를.....

연재를 시작하며‘에서

몽골에 다녀온 일주일 뒤, 옆구리에 절벽 하나가 만들어졌다.
한발만 더 나가면 늪인 줄 알면서, 살짝만 밟아도 덫인 줄 알면서, 그 끝이 낭떠러지인 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가야만 하는 때가 있다. 누구도 내 등을 떠밀지 않았다. 나는 갔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절벽은 까마득하게 높았다. 짧은 유서를 남겨놓고 아들 규가 자살했다. 생의 파도가 내 옆구리에 지울 수없는 흔적을 남겼다.
저 절벽을 올라갈 수 있을까? 손톱이 빠지고 발목이 부러져 피투성이의 몸으로 귀환할 수 있을까? 간절히 절벽을 넘어서고싶었다. 마음으로 절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절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은 몸이었다. 오직 내 몸으로 옆구리의 절벽을 무너뜨리고, 그 폐허 위에 규의 손을 잡고, 돌아온 탕자처럼 서 있을 수 - P14

있다면......
절벽 아래에서 헤매고 있을 때, 삼천 년 전 그 낙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삼 년 동안 밤마다 그 소리가 들렸고, 옆구리의 절벽은 그만큼 더 높아졌다. 나는 환청처럼 들리는 낙타 울음소리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해보았다. 텔레비전을 끄고 어둠 속에 한참 앉아 있기도 했고, 벽에 귀를 붙이고 서 있기도 했다. 소리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근원을 알 수 없어 괴로웠다. - P15

몽골말로 고비는 황무지란 뜻이다. 사진이나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근사한 모래언덕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아니었다. 황무지에 사막이 포함된 말이 ‘고비‘였다. 주먹만한 크기의 날카로운 돌덩이들이 뒹구는 여기가 이미 고비사막이었다. 나는 고비사막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다.
고비......
생의 한 고비를 간신히 넘으면 또 만나게 되는 고비, 어쩌면 나는 그 고비를 건너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고비의 한복판에서 나는 물었다. 내가 낙타를 타고가고 있는지, 아니면 낙타가 나를 타고 가고 있는지 모를 시간이 생의 바깥에서 강물처럼 흘렀다. 고비를 넘지 못하고 상처를 받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말한다. 타인 혹은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다고.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상처를 준 것은 언제나 ‘나‘였다. 내가 준 상처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아팠다. - P49

사람은 결국 자기자신을 체험할 뿐이다.
하지만 그 체험이 인간을 극적으로 변화시키지도 않는다. 몇번의 연애가 황무지였다는 걸 체험했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여자를 만나면 까맣게 잊고 또 어리석은 보행(步行)을 시작하곤했다. 그리고 어느덧 황무지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떠도는 나를발견했다. 황무지에 갇혀 있다가 문을 열고 마음 밖으로 나오면 공(空)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규와 내 앞에 펼쳐진 황무지는 폐허의 신전이었다. 낙타는 폐허의 신전을 느리게 걸었다. 낙타의 느린 발걸음마다 유적처럼 묻혀 있던 인간의 기도가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규가 낙타위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저러다 떨어질까 싶어 잠시 쉬기로 했다. 낙타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서 규는 커플링을 빼서 불량낙타의 발목에 끈으로 묶었다. 왜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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