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Elizabeth Strout

1956년 미국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메인 주와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베이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일 년 동안 바에서 일하면서 글을 쓰고 그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끊임없이 소설을 썼지만 원고는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에그녀는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잠시 법률회사에서 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돌아와 글쓰기에 매진한다.
문학잡지 등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던 스트라우트는 1998년 첫장편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을 발표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동시에 인정받는다. 이 작품은 오렌지상, 펜/포크너 상 등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아트 세덴바울상‘과 ‘시카고 트리뷴 하트랜드 상‘을 수상했다. 2008년 발표한 세번째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로 언론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2009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은 HBO에서미니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 이후 버지스 형제」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리고 「올리브 키터리지 의후속작인 ‘다시, 올리브」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21년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후속작인 「오, 윌리엄!」을 발표했다. ‘루시 바턴‘을 다시금 화자로 삼아 사랑과 상실, 기억과 트라우마, 가족의 비밀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한때 루시의 남편이었고 이제는 오랜 친구인 윌리엄과 루시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관계를 특유의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사려 깊은 언어로 그려낸다.

로버트슨 선생이 타운을 떠난 그 여름은 몹시 무더웠고 강물은 한동안 죽은 듯 보였다. 강은 타운의 중심을 관통하며 죽은 뱀처럼 납작하게 드러누워 있었고, 그 언저리에는 더러운 거품이 싯누렇게 부글거렸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타지 사람들은 메슥거리는 유황 냄새에 차창을 끝까지 올려 닫으며, 강물과 공장에서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셜리폴스 사람들은 이미 그런 것에 익숙했고, 이렇게 지독한 무더위에도 아침에 눈을 떴을때에만 그 냄새를 맡았다. 아니, 사실 그 냄새가 딱히 거슬리지 않았다.
그 여름, 사람들은 오히려 하늘에서 파란 빛깔이 보이지 않 - P11

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타운 전체가 지저분한 거즈로 덮인듯, 하늘은 밝은 햇빛이라면 스며들지 못하게 아예 몰아내버리고, 그게 뭐가 됐든 사물에 색깔을 부여하는 그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해버려, 타운에는 희미하고 느른한 느낌만 감돌았다. 사람들이 마음을 쓴 것은 이런 것이었고,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다른 걱정거리들도 있었다. 강의 상류로 올라가면 경작이 시원찮았다. 줄기에 달린 덩굴제비콩은 잘고 쪼글쪼글했고, 홍당무는 아이의 손가락 크기만큼 자란 뒤 더는 자라지 않았다. 듣기로는 주 북부에 UFO 두 대가 나타났다고 했다. 정부에서 조사단까지 파견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 P12

공장 사무실에서는 여자들이 송장을 분류하거나 서류를 정리하거나 주먹으로 탕탕 쳐가며 봉투에 우표를 붙이면서 하루를보냈는데, 한동안 그들 사이에서도 꺼림칙한 말들이 오갔다. 어떤 여자들은 이러다 종말이 올 것 같다고 했고, 그 정도까지 극단적이지 않은 이들도 인간을 우주에 보내는 것은 바람직한 생각이 아니다. 인간이 감히 달에 올라가 걸어다니다니 그건 안 될말이다. 정도의 말은 주고받았다. 하지만 더위는 무자비했고 창문에서 달달거리는 선풍기들은 영 신통찮아서, 결국 여자들은활기를 잃고 큰 나무책상 앞에 앉아 다리를 살짝 벌린 채 목덜미를 덮은 머리칼을 들어올렸다. 시간이 더 지나자 대화는 "이게 말이 돼?" 정도가 전부였다. - P12

상사인 에이버리 클라크가 그들을 일찍 퇴근시킨 날도 한 번있었지만, 더 무더운 날이 이어지자 일찍 가도 좋다는 말은 더이상 없었다. 그러니 그런 일이 또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가만히앉아서 버틸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들은 버텼다. 사무실은 후끈후끈했다. 천장이 높고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너른 공간이었다. 책상은 두 개씩 나란히 붙이고 각각 앞 책상과 마주보게 하여 사무실 끝까지 쭉 늘어놓았다. 금속 캐비닛들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한 캐비닛 위에는 필로덴드론 화분이 놓여 있었는데, 어린아이가 점토로 만든 화분처럼 줄기가 똘똘 말린 넝쿨 화분이었지만 길게 늘어져 바닥에 닿은 줄기도 있었다. 사무실에초록색이라고는 그것 하나였다. 창가에 놓은 베고니아 화분 몇개와 얼룩자주달개비는 죄다 갈색으로 시들어 있었다. 이따금선풍기가 뜨거운 바람을 토하면 죽은 잎들이 날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 P13

이렇게 나른한 장면 속에 한 여자가 다른 여자들과 좀 떨어져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자리가 나머지 여자들의 자리와 떨어져 있었다. 이름은 이저벨 굿로, 에이버리 클라크의 비서여서 그녀의 책상은 누구의 책상과도 마주하지 않았다. 그 대신유리로 가로막힌 에이버리 클라크의 사무실을 향해 놓여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판자와 커다란 유리를 특이하게 잇대어 전체공간에서 분리한 것으로(표면적으로는 여자들이 제대로 일하는 - P13

지 감시하기 위해 이렇게 만들었지만 그는 좀처럼 책상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보통 ‘어항‘이라고 불렸다. 비서라는 사실 때문에 이저벨 굿로가 다른 여자들과 다른 지위를 얻긴 했지만 어했거나 그녀는 달랐다. 예컨대 옷차림도 흠잡을 데 없어서 이렇게 더운데도 팬티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언뜻 예뻐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예쁘다고 하기는 그렇고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다. 숱이 적은 진갈색 머리도 둥글게 말아올리거나 틀어올려서누가 보더라도 평범했다. 이런 머리 모양 때문에 고리타분한 선생 같은 인상을 줄 뿐 아니라 실제보다 더 나이들어 보였고, 짙은 색의 작은 눈동자는 늘 놀란 눈빛이었다. - P14

어디를 뜯어봐도 에이미는 엄마를 닮지 않았다. 엄마의 머리가 칙칙하고 숱이 적다면 에이미는 풍성하고 다채로운 금발이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귀밑 길이로 들쑥날쑥 잘랐을 때도 눈에 띄게 건강하고 튼튼해 보였다. 게다가 에이미는 키가 컸다. 손은 큼직하고 발은 길쭉했다. 눈은 엄마보다 컸지만 이따금 엄마처럼 겁먹은 빛이 어렸고, 이런 놀란 눈으로 뚫어져라 바라보면 상대는 불편하게 느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에이미는 수줍음을 많이 타서 누구를 빤히 쳐다보는 일은 드물었다. 오히려 흘끔 보고 재빨리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아무튼 예전에는 거울만 보이면 그 앞에 가서 자기 모습을 한참 뜯어보았지만, 사실에이미는 자신의 인상이 어떤지 잘 몰랐다.
하지만 그 여름에 에이미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다녔다. 그럴 수만 있다면 엄마도 피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사무실에서 같이 일을 해야 했으니까. 이번 여름에 거기서일하게 된 것은 순전히 몇 달 전 엄마와 에이버리 클라크가 멋대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에이미는 감사해야 한다는 말을 듣긴했지만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일은 단조롭기 짝이 없었다.
에이미가 맡은 일은 책상에 수북이 쌓인 오렌지색 송장의 맨 끝세로줄에 있는 숫자들을 계산기로 더하는 것이었다. 딱 한 가지좋은 점은 이따금 생각이 없어진다는 점이었다. - P15

물론 진짜 문제는 엄마와 온종일 붙어 지내는 것이었다. 에이미는 자신이 엄마와 검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선은 고작 연필로 그은 정도의 굵기였지만 늘 거기 존재했다. 이를테면 둘 중 하나가 사무실을 나서서 화장실이나 현관 식수대에 가더라도 검은 선은 끄떡없었다. 그 선은 벽을 뚫고 그들을연결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나마 책상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어 얼굴을 마주보지 않아도 되었다.
에이미의 자리는 한쪽 구석, 뚱뚱이 베브와 마주보는 책상이었다. 원래 도티 브라운의 자리였지만 그 여름에 도티 브라운은 자궁절제수술을 받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아침마다 에이미는뚱뚱이 베브가 1파인트짜리 오렌지주스 통에 질경이씨 섬유소 적정량을 넣고 세게 흔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넌 좋겠다." 뚱뚱이 베브가 말했다. "젊고 건강한데 뭐가 부러울까. 똥눌 걱정이 뭔지도 모를 거야." 에이미는 어쩔 줄 몰라 시선을 피했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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