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내가 한자를 쓴다거나수학 문제를 풀 때, 반복한 횟수만큼 동그라미를 공책에 그리게 하곤 그가운데 빗금을 치도록 시켰다. 헤아려보니 빗금 친 동그라미가 50개에서 60개다. 한 곡을 50회에서 60회씩 매일 불며 연습한 것이다.
하루 반짝 글을 잘 쓴다고 장편작가가 되진 않는다. 꾸준히 수준 이상을 매일 써낼 때 비로소 장편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수 있다. 계획도를그리고 목표량을 정한 뒤 매일 채워나가는 일상을 나는 엄마에게서 배웠다. - P53
"어떤 잡음이었어?" "읽는 인간이 아니라 쓰는 인간이 되자는 잡음. 남의 작품을 평하는 인간이 아니라 내 작품을 쓰는 인간이 되자는 잡음." "그전에는 그런 잡음을 들은 적 없어?" "잡음이야 늘 들렸죠. 하지만 예전엔 대부분 무시했어요. 잡음은 그냥잡스러운 소리에 불과하니까요. 그 가을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오래듣고 또 들은 잡음은 달랐어요. 잡스럽게 끊기고 딴 소리가 섞여들수록더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비 내리는 바다가 바로 제 앞에 아침 7시 30분부터 펼쳐져 있어서 그랬던가봐요. 요즘도 독자들이 어떻게 소설가가되었느냐고 물으면, 바다가 저를 소설가로 만들었다고 답해요. 독자들은 문학적인 비유로 받아들이겠지만, 이건 비유가 아니라 완전한 사실입니다. 바다가 저를 소설가로 만들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처럼비 내리는 가을 아침 바다가 저를 유혹한 거죠." "바다의 유혹에 걸려들어 독자를 유혹하는 작가가 된 셈이네." "네. 저 바다처럼 독자들을 유혹하고 싶어요." - P67
"소설을 쓰며 단련된 거니?" "왜요?" "시를 쓸 때 기억나? 스물여섯 살까지는 내가 아무리 네 두 발을 땅에붙여두려고 해도 훨훨 날아가려고만 들었어. 내 집에서 잠자고 일어나고 먹고 공부했지만, 네 눈동자는 늘 그 너머 어딘가를 향했단다." "시인만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럼?" 그건 차라리 새 풍경을 찾아 떠도는 여행자의 마음이죠,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과연 치숙이 만든 ‘단추의 공간‘을 몇 개나 확인할 수 있을까. 치숙은 그 공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렸을지도모른다. 그렇지만 소설가인 나는, 힘닿는 데까지 확인하고 싶다. 그런데치숙과 나 사이의 매개는 엄마뿐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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