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


언제 나을지 알 수가 없는데
어느 날엔가 나을 것 같다

추위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할 때처럼
한여름에 느닷없이

네가 말했던 절반의 문장에 대하여
얼음처럼 부서지는 일들에 대하여

십이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멍이 잘 든대
한 연구자가 말했다

이젠 모든 걸
십이월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될까

매번 깨지 말아야 할 장면에서 깨어났다
좀더 깊은 악몽에까지 가보고 싶게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왜 안 되냐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 P72

아주 근처까지 왔어

너는 지금 너를 돌보고 있구나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구나

풀빛 여린 나물에
흰 쌀밥을 먹으면서 - P73

모로코식 레몬 절임


너의 안부를 전해들었다

펼치면
전부 펼쳐질 것 같았다

입구를 꽉 묶어두었던
가느다란 실이 풀릴 것만 같았다

주머니 안에 넣을 수 없었다
주머니는 자주 비워야 하고
빨래를 할 때마다 속을 뒤집어야 했으니까

멀리 있다가 가끔씩 찾아오는
한겨울의 눈처럼

녹지 않고 쌓일까봐
겨울이 계속될까봐

얇게 저민
레몬 슬라이스, 소금과 함께
병에 담아 밀봉하였다

레몬 절임에도 - P84

상온에서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달이 지나면

다 녹아 알맞게 절여진 레몬과
뒤섞인 안부를
컵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휘휘 저어볼 수 있겠지

그러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마셔볼 것이다

적어도 따뜻하게 사라질 수 있게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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