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궁금해. 그런데 왜 계속 견뎠어? 차라리 죽음으로 복수하고 싶지 않았어? 신이여, 당신 뜻대로 끝없이 고통받으며 살지 않겠다고. 어느 날 당신의 우연한 변덕으로 일상을되찾고, 그리하여 당신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하는 그런 짓거리는 하지 않겠다고. 그런 마음을 품은 적 없어? 해리아. 왜 계속 노력했니? 몸이 매일 울부짖으며, 이제 그만, 이 끔찍한 생의 순환을 멈춰달라고 외치는데 왜 끝내지 않았어? 버튼! 그래, 왜 버튼을 누르지 않은 거야? 비통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니? 제발 나를 꺼줘! 부디 제발 나를 멈춰줘! 나를 그만 끝내줘! 쉬게 해줘! 무엇 때문에? 미련이 남아서? 그래, 미련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지. 하지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가장 강렬한 감각은 통증이야. 그렇지 않니? 통증은 모든걸 정지시켜,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하지, 오로지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 그래.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는 거야. 하지만 그건 삶이 아니야. 통증을 인정하는삶?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통증 이후의 삶? 정말 - P285
응. 살고 싶어. 그런데 잘 살고 싶어. 돈 많이 벌고 편안한 집에서 여유 부리며 사는 거 말고. 그럴싸한 옷을 입고 걸어 다니며 웃는 거 말고, 진짜 웃고 싶어. 아프지 않은 몸으로, 건강한 몸으로 살고 싶어. 그렇게 잘 살고 싶어. 내 몸이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싶어. 내 몸에 대한 생각을 그만하고 싶어. 그 시간을 다른 곳에 쓰고 싶어. 외국어를 공부하고, 책을읽고,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누군가 - P286
를 사랑하고, 애틋해하고, 차라리 미워하고 더 원하면서 살고싶어. 비열하게 욕도 하고, 비겁하게 회피도 하고, 추잡하게 매달려도 보고 그렇게 살고 싶어. 그럴 만한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 매일 아침 몸무게를 재며 전날 무엇을 처먹었는지 생각하고, 그래서 오늘 무엇을 먹고 어떤 걸 먹으면 안 되는지 생각하는 짓거리를 그만두고 싶어. 먹고 싶어서 먹었으면서 만족하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나를 두들겨 패는 걸그만두고 싶어. 그러다 통증이 찾아오면 바닥을 뒹굴며 짐승처럼 끙끙대고, 병원에 기어가서 혈관에 진통제를 놓아달라고비는 짓을 그만하고 싶어. 약에 의존하면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몸을 가진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그만 미워하고 싶어. - P287
완벽한 건강이라는 것. 완벽한 몸이라는 것. 내가 살려면 완벽해야 한다는, 그래야 살 자격이 있다는 그런 생각을 멈추고 싶어. 해리아. 내 몸이 새것이었으면 좋겠어. 그럼 이번에는 정말잘 살 거야. 그럴 거야. 왜 나는 새것을 갖지 못하는 거야? 열심히 살았는데, 노력했는데 왜 그런 거야? 내가 주제에 맞지 않게 너무 욕심을 부린 거야? 영직동에 처박혀 살지 않고 그곳을벗어나고 싶어 해서 그런 거야? 곰으로 태어났으면서 곰처럼살기 싫어해서 그런 거야? 그래서 벌을 받은 거야? 이 생각. 생각들. 그래. 나는 이 생각들에 중독됐어. 생각하는 걸 멈출 수없어.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밥을 먹고 아파서 뒹굴고 소리 지르고 깨어나고, 또 약을 먹고 헛것을 보고 몸무게를 재고, 거울 - P287
앞에 선 나를 보는 순간. 그 모든 순간. 매일 매 순간! 나는 언제나 내 몸에 대해서만 생각해. 생각이 멈추지를 않아. 뇌 어딘가 고장 난 것 같아. 매일 내가 한 움큼씩 집어 먹는 약들은사실 생각들이야. 그 약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나비와 같은 날개를 가진, 펄럭거리며 날아다니는 생각들. 나비들은 이미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위장과 자궁, 혈관과 항문까지 번져가고 있어.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몰아낼 수 있지? 어떻게 해야 해? 또 약을 먹어야 할까. 이 나비들을 죽이는 약 말이야. 그래, 해리아. 나는 그래서 왔어. 나를 새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이 생각들을 멈추고 싶어서. 네가 그랬잖아. 최초의 기억을 찾아내면, 그래서 그 기억의 의미를 알게 되면 사는 것처럼 살 수있다고. 나를 구할 수 있다고. 새것이 될 수 있다고.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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