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이 달려온 또 살기 위해 달려갈 //길 위에서 길을 잃으며" 어쩐지 위태한 밤의. 그런데 "간밤 내내 나를 흔들던 빗소리를 찾아//내가 홀로 나에게 묻는다"는 그가 여기 있다. 그는 오랫동안 ‘노동자 시인‘으로 불려왔다. 그것은 그에게 영광스러운 이름이면서, 결코 그만두지 못할 참다운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를 ‘시인‘이라고만 부르려 한다. 노동을 포기했다는 말이 아니다. 시인이 아닌, 시인으로서 그의 삶 전부가 언젠가부터 나에게 너무도 뚜렷이 각인된 까닭이다. 홀로 깊이 물으며, 잃었다가도 길을 찾고, 끝내 가고야 말리라 다짐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그의 이번 시집은, 호주머니에 담았다가 언제라도 꺼내들고 싶은 선물이다. 고운기 시인
시인의 말
이 시집을 다시 펼치는 것이 두렵고 부끄럽다. 지난 몇년 동안 나는 내 안의 세계가 격심한 혼란 속에서 해체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돌아보건대, 나에게 시 쓰는 일이란 그런 해체의 또다른 과정이었거나, 어떤 치유가 아니었던지.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한 사람의 모습이선명하게 떠오른다. 잊을 것도, 사라진 것도 없다. 삶에 대하여 지키지 못한 약속도 때로는 남은 시간을 지키는 불빛이 되지 않던가.
창작과비평사와 고형렬 선배의 과분한 애정에 대해서 언제 한번쯤은 제대로 된 시적 예의를 차릴 수 있을 때가올 것임을 나는 믿는다. 지향도 분명치 않은데, 이제 오래 머물렀던 곳을 떠나야겠다.
기우는 가을빛 속으로 웬 새가 날아간다.
2002년 시월 인천에서 박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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