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물 위로 꽃을 올리지 못한 봉오리 하나
몸이 얼마나 썩어야 자궁이 열릴까

숨을 틔울 바람 한점 없는 저 물속에
꽃도 뿌리도 없이 내가 꿈꾸는 것

한번은 미쳐버리고 싶은데
미쳐
활짝 깨어나고 싶은데

산마루엔 노을의 빛들이 벌겋게 터져 흐르고
저 봉오리 홀로 숨이 가쁘다 - P74

겨울, 나무


첫겨울의 숲에서 나무들은 지금
온몸 전부를 열어
몸속의 수분을 밖으로 내뿜고 있다
우듬지에서 떨고 있는 한잎의 안간힘도
몸속에서 들끓고 있는 대지의 기억도
남김없이 떨구고 가는 늦은 십일월,
나무들은 물관의 길을 끊고
가지 끝까지 흐르던 심장의 피돌기를 정지시키고
영하의 지상으로 자기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
한겨울 뿌리마저 얼어붙는 폭설의 밤을 견디기 위하여
얼어터지지 않기 위하여
몸의 물길에 열리던
뜨거운 꽃들을 뱉어내고
잎들을 뱉어내고
욕망의 절정을 뱉어내고 있다

그 필사적인 생존이 허공을 움켜쥐고 
흔들린다 - P80

어느 때쯤엔 나무들이 뿜어낸 물줄기가
잠시 겨울의 메마른 골짜기를 적시며 흘러갈 것이다




시작 메모 
요즘 나의 삶이 그렇고, 詩 또한 그러하다. 때로 시라는 비유의 세계가 현실의 삶과 한 치의 틈도 없이 일치되어 나타나는때가 찾아온다.
요즘 몸이 아프다. 욕망은 생의 에너지인가, 다만 추문인가.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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