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도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청양에서 자랐다. 서라벌고, 공주사대를 졸업한 후 대천고, 공주농고, 안면중학교에서 근무하였다. 『민중교육지 사건(1985), 전교조 결성(1989)으로 해직되었다가 1994년 복직되어 지금은 온양신정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시집 『백제시편」 「그 나라」 「사십 세」 「교사일기』 등이 있고, 산문집 「내 안의 작은 길』, 장편소설 「지난날의 미래』, 동화『넌 혼자가 아니야』, 교육에세이 『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 「삶· 사회 · 인간 · 교육』, 시 해설집 『선생님과 함께읽는 윤동주』 등을 펴냈다.

□ 시인의 말


일곱 번째 시집입니다.
전과는 다르게 시를 써 보려고 했습니다.
미완성으로 남겨두기, 생략하기, 직접 인용, 빈칸으로 두기, 공동창작, 그림 사진 만화 등으로 시어를 대신하기.... 시가 좀 재미있고, 풍부해지고, 따뜻한 피가 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그런 흔적들이 여기 조금 남았습니다.

그리고...

삶이 고단한 사람들은
‘좋은 날‘에도 많이 울더군요.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2007년 9월
조재도

흑백의 낡은 사진첩을 꺼내보듯 나이가 들면 자꾸 뒤돌아본다고한다. 지독히도 퍼부어대던 우기의 여름을 몸서리치며 보내고 맞이한 풀벌레 소리의 가을밤, 조재도의 시를 읽는 방안에 가만가만 가을비가 내린다.
쓸쓸한 것들을 떠나보내고 다시 또 쓸쓸함 속에 남는다. 가을이란 그런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 나는 푸른 햇살이 찰랑이는 섬진강가 은빛 모래밭 나무의자에 앉는다. 거기 이를 악물던 젊은 날을 보내고 느릿느릿 충청도처럼 조재도의 시가 걸어올 것이다.
박남준(시인)

매미 소리


처서 무렵 우는 매미 소리는
강철 빛깔이다
골무만 한 몸통에서
가슴팍 열어 젖혀 쟁명히 울어대는
매움 매움, 저 매미 소리는
하늘과 땅 사이나 아니면 울 게 없다는
아니 아니 하늘과 땅 사이 울 것 투성이인데
아무도 울지 않아 내가 대신 운다는
매미가 쓰는 호곡론好哭論이다
그래 그건 그렇고
넌 언제 울어봤니
두 줄기 눈물 비줄배줄 흘리는 그런 울음 말고
막힌 칠정 한꺼번에 터져 나와 목젖이 다 갈라지는
크나큰 울음, 통곡을
넌 어느 때 울어 봤어
아파트 숲 단풍나무 가지에 앉아
꽁댕이 들었다 놨다 울어 퍼지르는
아흐, 저 빛살의 매미 소리
어떤 톱날로도 자를 수 없는 - P10

좋은 날에 우는 사람


슬픔의 안쪽을 걸어온 사람은
좋은 날에도 운다
환갑이나 진갑
아들 딸 장가들고 시집가는 날
동네 사람 불러
차일치고 니나노 잔치상을 벌일 때
뒤꼍 감나무 밑에서
장광 옆에서
씀벅씀벅 젖은 눈 깜작거리며 운다
오줌방울처럼 찔끔찔끔 운다
이 좋은 날 울긴 왜 울어
어여 눈물 닦고 나가 노래 한 마디 혀, 해도
못난 얼굴 싸구려 화장 지우며
운다, 울음도 변변찮은 울음
채송화처럼 납작한 울음
반은 웃고 반은 우는 듯한 울음
한평생 모질음에 부대끼며 살아온 - P12

삭히고 또 삭혀도 가슴 응어리로 남은 세월
누님이 그랬고
외숙모가 그랬고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러했을,
그러면서 오늘
훌쩍거리며소주에 국밥 한상 잘 차려내고
즐겁고 기꺼운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 P13

가만있자 그러니까 그게 거, 할 때의 그 가만있자에 대하여


어떤 말이 저렇게 깨달음의 등불을 오롯이 드러낼까
어떤 말이 저렇게 강물처럼 흘리 순간마다 빛날까
어떤 말이 늘 서서 걸으며 달려가는 우릴 멈추게 하겠는가
그 자리에 멈추어, 앉아, 되돌아보게 하겠는가
가만있자의 그 순간이 어디
사람에게만 있겠는가
소주 집에 앉아 싹둑거리는 사람에게만 있겠는가
날아오를 자리 가늠하며 대가리 까댁이는
미루나무 꼭대기의 저 까치에게도
주춤대며 개천 다리 건너오는
오늘 아침 샛강의 자욱한 안개에도
그러니까 그 자세 가만있자의
낮은 걸음 자세는 깃들어 있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한순간 불티처럼 튀어나온 그 깨달음에
극極으로 치닫던 마음이 돌아앉는다
제 몸 진저리치며 세우는 그 자리에 - P18

고양이
쥐의 일에
슬퍼도 하고
밭에서 돌아온 소가
부어오른 제 발등을 핥기도 한다

어느 말이 저렇게 어두운 골방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담뱃불이겠는가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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