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시인은 평생 환자입니다.
내게 있어서는 결백증과 결벽증이 한 가지로 되어 있어 참으로그 치유를 기대하기란 어렵겠습니다.
일류 살청殺靑 기술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몽상가로도 고급 스타일은 아닙니다.
세상의 일들은 즐거운 숨바꼭질입니다.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영원한 술래로 만들어보려구요.
왜 무의미일수록 내 심장은 붉고 크고 게걸스러워지는 것일까요.
무위無爲와 실컷 놀다 갔으면 합니다.
2008년 여름 장마 신현정
바보사막
오늘 사막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니
출발하기에 앞서
사막은 가도가도 사막이라는 것
해 별 낙타 이런 순서로 줄지어 가되
이 행렬이 조금의 흐트러짐이 있어도
또 자리가 뒤바뀌어도 안 된다는 것
아 그리고 그러고는 난생처음 낙타를 타본다는 것
허리엔 가죽 수통을 찬다는 것
달무리 같은 크고 둥근 터번을 쓰고 간다는 것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러서
단검을 높이 쳐들어 - P12
낙타를 죽이고는
굳기름을 꺼내 먹는다는 것이다
오, 모래 위의 향연이여. - P13
와불臥佛
나 운주사에 가서 외불臥佛에게로 가서
벌떡 일어나시라고 할 거야
한세상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와불이 누우면서 발을 길게 뻗으면서
저만큼 밀쳐낸 한세상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산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아마도 잠버릇 사납게 무심코 내찼을지도 모를
산 두어 개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그만큼 누워 있으면 이무기라도 되었을 텐데
이무기 내놓으시라
이무기 내놓으시라 - P20
이무기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정말 안 일어나실 거냐고
천년 내놓으시라
천년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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