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기 전


우리 아버지 운다, 땅에 엎드려
우리 아버지 운다, 저 바람의 힘줄을 쥐고
우리 아버지 운다, 늙은 잎사귀들을 훑어 뿌리며
우리 아버지 운다, 모래알같이 흩어지며
우리 아버지 운다, 개미들이 기어가는 걸 보며
우리 아버지 운다,
우리 아버지 운다.

누군가 이 세상을
등기 이전도 안하고 옮겨가나 봐.
죽은 자를 문상하고 돌아가나 봐.

발소리 섞여 멀어 가는 빗소리에 귀가 환하게 열린다.

관절이 쑤시는 걸 보니
비가 많이 오려나 봐.
세상의 호수들이 다 넘치도록
비가 오려나봐 - P80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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