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없는 세상, 기적 같은 생존의 서사 틈에 예원은 지나가듯 털어놓았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도 있었다고요. 자신이 겪은 일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가족과 다른 생존자들에게 글로 알리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물질적 토대나 재능이 부족했다고 썼어요. 아, 그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재능 없지 않은데... 많은데... 자신의상처와 취약함을 직시하는 글은 아무나 쓰지 못하거든요. 그 힘과 용기가 예원은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원의 글은가부장제의 권력구조를 고발하는 생존자의 탄원서이자 청년노동 잔혹사가 담긴 르포로 읽혔습니다. - P154

나약하고 구멍 많은 인간이라서 잠시라도 성찰을 멈추고 휩쓸려 살다보면 짓는지도 모르고 죄를 짓습니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기에 영화에서도 시를 쓴 사람이 미자밖에 없는 것이겠죠.『시 각본집』을 동준이의 죽음과 이선호씨의 죽음을 포개가며 읽고 났더니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시처럼 다가옵니다.
"우리는 남의 비극이나 고통이 아주 멀리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토록 가까이 있다!"고 이창동 감독은 말합니다. 이 통렬한 진실을 이미 삶으로 받아내고 살 저미는 고통을 겪어낸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옆의 동료나 친구에게 같이 마음 나누어줄 수 있는사람으로 늙어가길 기원해요."
덕분에 시심 부푸는 봄밤이 깊어갑니다. - P163

세월호가 일어난 그해 2014년 1월 20일에 현장실습생 동준이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곧 기일이 돌아옵니다. 유가족의 달력은 눈물이 마를 새가 없네요. 생일이 지나면 생일만큼 힘든 기일이 오고 기일이 지나면 기일만큼 괴로운 명절이오고... 내 이웃이 슬픔의 둑이 터지고 무너져내리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상을 나누는 일상을 고민합니다. - P168

"애들은 좋은 곳에 갔으니까 이제 마음에 묻어라." "교통사고다 생각해라." "시간도 흘렀는데, 옛날처럼 같이 산에도 다니고 만나서 술도 한잔 하자." "아이를 잃은 건 슬프지만 너는 그만큼 보상을 받지 않았느냐?" 세월호 유가족이들었던 말들입니다. 위로하고 싶은 상대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으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유가족을 배려하는 행동도 배려가 되진 않았죠. "유가족입니다" 하는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시킨답니다. 커피 한잔, 물 한잔 마시려고 해도 다들 "앉아 계세요, 제 - P169

가 타드릴게요" 하고 어딜 가도 유가족 자리는 따로 마련되고요. 지나친 배려는 때론 배제가 되죠. 유가족이 술을 시켜도 되나, 화장은 해도 되나, 여행 간다고 손가락질하면 어쩌나 지레 주눅이 듭니다.
세월호 5주기에 맞춰 발간된 유가족 육성 기록집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에 나온 몇가지 에피소드입니다. 유가족은 자식 잃은 비통함에다가 거친 말들과 고정된 시선까지 감내해야 했죠. 슬픔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슬픔의 일부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유가족들은 그래서 모임을 꺼립니다. 광화문 농성장에 모여 있어도 말은 돌죠. 자신들이 울기만 한다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길래 웃었더니 다시 웃었다고 뭐라고들 하니까, 유가족들은 서로 이렇게 충고합니다. "간간이 울어"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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