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YAYANAGIHARA 한야 야나기하라 아시아계 미국 소설가. 현재 뉴욕 시에서 살고 있다.
에즈라는 예술가였고, 그리뛰어나진 않았지만, 뛰어날 필요도 없었다. 제이비가 자주 상기시켜주듯이. 그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에즈라뿐만이 아니라, 에즈라의 자식들의 자식들의 자식들까지도 일할 필요가 없었다. 팔리지도 않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형편없는 예술품을 대대손손 만들고도, 마음 내키는 대로 최고급 기름을 넣고 맨해튼 도심에 위치한 비실용적으로 넓은 로프트들을사서 형편없는 미감으로 엉망진창 꼬락서니를 만들어놓을 수있었다. 그리고 예술가 생활에 진력이 나는 날이 오면 -제이비는 에즈라가 언젠가 그럴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냥 신탁 관리인에게 전화 한 통만 하면 네 사람(음, 어쩌면 맬컴은 빼고)은 평생 꿈도 꾸지 못할 어마어마한 현금 더미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에즈라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사람이었다. 제이비와 몇몇 학창 시절 친구들을 자기 아파트들에서 살게해줘서만이 아니라 로프트의 이곳저곳에는 언제나 네다섯 명정도가 기어 들어와 살고 있었다-착하고 기본적으로 관대한사람인 데다가 음식과 마약과 술을 마음껏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사치스러운 파티를 여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 P15
한번은 제이비가 맬컴에게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맬컴은 윌럼이 눈치를 못 채기 때문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이에 제이비는 그냥 툴툴댔지만, 그의 생각은 이랬다. 맬컴이야말로 자기가 아는 사람들 중 제일 둔해빠진 인간인데, 그런 맬컴마저 윌럼 주위의 여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차렸다면 윌럼 본인이 모르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중에 주드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윌럼은 주위 남자들이 자기 때문에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여자들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가설이 더 말이 됐다. 윌럼은모두의 사랑을 받았고 사람들을 일부러 불편하게 만드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일종의 무지를 가장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구경은 여전히 흥미로웠고, 구경도, 그 일로 나중에 윌럼을 놀리는 것도 세 친구에게는 절대 질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봤자 보통 윌럼은 그저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 P23
주드와는 그 일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그는 주드가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조그만 상처에 움찔하는 모습을, 때로 너무 막대한 고통이 덮치면 구토를 하거나 바닥에 고꾸라지거나 그냥 의식을 잃고 기절해버리는 모습들을 봐왔다. 지금 거실에 있는 주드의 모습처럼. 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왜 주드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지 않았는지, 왜 주드에게 그럴때 어떤 기분인지 말해보라고 하지 않았는지, 왜 본능이 시키는대로 감히 행동하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그냥 옆에 앉아 다리를 문질러주고, 멋대로 어긋나는 신경말단을 주물러 가라앉히려 해보지 않았을까. 대신 그는 여기 욕실에 숨어 바쁜 체하고 있다. 가장 소중한 친구 하나가 바로 저기지저분한 소파에 철저히 홀로 앉아 산 자들의 땅으로 돌아오기위한, 의식을 되찾기 위한 느리고 슬프고 고독한 여행을 하고있는데 말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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