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



밤이 이슥해지자 달이 떠올랐다.
부풀어 터질 듯 팽팽히 알을 빈 섣달 보름의 만월이었다. 달과함께 산속이 밝아왔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들어차 있는 숲속이었지만 그 대부분이 잡목들이어서 잎새를 지운 앙상한 가지 새로 달빛은 땅 위에 드문드문 얼룩을 그리며 키 작은 관목과 말라붙은 덤불들을 드러내주고 있었다.
엊그제 내린 눈 위에 하얗게 반사되어 달빛은 여기저기에 자그맣고 신비스런 발광체를 흩뿌려놓기도 했다. 이따금 마른 갈나무 잎새가 바스락 소리를 낼 뿐, 이날따라 사위는 기이할 만큼짙은 적막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산 아래쪽에선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아들은 총을 눕혀두고바위에 비스듬히 몸을 의지한 채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멀리적벽(赤壁)으로 여겨지는 봉우리가 맞은편에 도톰하게 솟아 있 - P217

고, 가까이로는 들판에 누운 전답들이 달빛 아래 희미하게 눈에잡혔다. 그 들판이 산기슭과 만나는 지점, 산자락의 우묵한 끝머리에 청풍리(淸風里) 마을은 들어앉아 있었다.
지금 저만치 들판을 돌아나간 희끗한 띠가 동복면(同福面)으로 통하는 길일 게다. 그 길을 따라 산을 향해 거슬러오노라면 청풍리 동구 밖에 이르고, 이내 초가지붕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들은 달빛에 희부연하게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을 눈을 감고서라도 훤히 그려낼 수가 있었다. 마을 초입의 사백년 묵은 느티나무와 그 아래 돌을 깎아 세운 송덕비며 효자비, 길을 따라 흐르는 실개천과 대보름날 깡통에 불을 지펴 돌리며 놀던 중머리 밭둑. 그리고 당집 너머 저수지 언덕은 바람이 잔날에도 하늘 높이 연을 띄워올릴 수 있는 유일한 자리였다.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 무렵, 느티나무를 지나 마을로 접어들면 초가집들은 도란도란 얼굴을 맞대고 있었고, 굴뚝마다엔 하얀 연기가 실타래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었다. - P218

아들은 그 낯익은 고향 마을에서 태어났고 열아홉의 나이를 거기에서 먹었다. 쇠똥이 질펀히 깔린 고샅이며 담장의 돌멩이 하나하나에까지 그의 눈길이 가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집을 멀리 떠나본 적이 별로 없어서, 간혹 장날이면 면소재지에 들러 오곤 했을 뿐 산길로 한나절 걸리는 읍내까지 나가본 기억이라곤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만치 아들은 고향마을을 맴돌며 살아온 것이었다.
시상에, 저렇게 집을 코앞에 두고도 내려갈 수가 없다니·......
생각할수록 아들은 기가 막혔다. 당장이라도 산길을 뛰어내려가 눈에 선한 사립문을 들어서며 어무니, 하고 부를 수 있을 것 - P218

만 같았다. 하지만 옆구리에 닿는 쇠붙이의 섬뜩한 촉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버렸다. 아들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흠칫 제풀에 놀라며 곁눈질을 했다. 저만치 나무 아래서 두사람은 뭔가 수군거리고 있었다. 잔뜩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으므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아들은 다시산 아래로 시선을 던졌다.
마을은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달빛 아래 초가지붕들이 무덤처럼 동그마니 모여 있을 뿐 살아 움직이는 것의 기척이라곤아무것도 없었다.
무등산 사방 오십 리 안팎으로 소개령이 내려진 지도 벌써 석달이 지났다. 마을마다 사람들이 비워두고 떠난 집들만 을씨년스레 옹송그리고 있었다. 그나마 불에 타서 온전한 꼴을 하고 있는 집은 드물었다. 그 흔한 개 짖는 소리도 끊겨버렸고, 아침이와도 어디서고 닭은 울지 않았다. 청풍리뿐만 아니었다. 지금, 적벽 아래 면소재지 쪽에서도 불빛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거대한 파충류처럼 무등산에서 흘러내려온 산줄기가 짙게 주름을 드리운 채 누워 있을 뿐이었다. - P219

지금의 행복동이 들어선 일대는 본디 무허가 판잣집들이 난립해 있던 지독히도 가난한 동네였었다. 시에서 지역 일대에 대한재개발을 시작하면서 부스럼 딱지같이 더덕더덕 붙어 늘어서 있던 꼴사나운 판자촌을 강제 철거했기 때문에 한동안 철거민들과시청 사이의 충돌로 인한 크고 작은 소란으로 그곳의 이름이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적이 있긴 있었다. 하기야 아직도 행복동북쪽 산기슭엔 그 당시 쫓겨난 철거민들 중의 이백여 가구가그쪽으로 옮겨가서 역시 또 다른 판잣집을 짓고 끈질기게 버티고 있음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오륙 년 전이므로,
제 목구멍 풀칠하기도 바쁜 사람들의 뇌리에서 그새 까맣게 잊혀져가고 있는 터였고, 행복동은 이 도시에서도 손꼽는 부자촌으로 어느덧 부상해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요즘 그 난데없는소문에 휘말려 행복동 주민들은 구설수에 올라 있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마치도 자기들이 예전에 그곳으로부터 쫓겨난 철거민이라도 되는 양 까닭 없는 악의까지 지닌 채 그 해괴하고 망측한소문을 자진해서 열심히 퍼뜨리고 다니는 형편이었다. - P293

대학 교수와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와, 인기 작가와, 가난한회사원은 한동안 입을 다문 채 서로의 얼굴을 겸연쩍게 흘끔거리면서 바로 조금 전까지 자신들을 열광케 했던 그런 갖가지의사건들이 도대체 자신들에게 얼마만큼의 무게로 관련지워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열띤 분위기가 스러져버린 뒤에 남은 지금의 이 알 수 없는 허탈감과 배신감은 또 무엇인가에 대하여 침묵속에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저마다 곰곰이 따져보고 있었다.
"왠지 허전하군요. 그렇잖습니까."
침묵을 깨며 잠시 후에 허교수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묵묵히 앉아 있는 다른 세 사람의 표정 속에서도 역시 자신의 것과 비슷한 느낌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군요. 뭔가 비어 있는 느낌입니다. 오래 지니고 있던 어떤소중한 것을 문득 떠나보낸 느낌 말입니다. 이야기를 너무 많이한 탓일까요."
신문 기자가 약간 감상적인 눈빛으로 허교수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 우울한 감상은 문창부씨에게도 감염되어졌다. - P313

작가 후기


부모를 따라서 처음으로 섬을 떠나 뭍으로 옮겨온 후, 나는 미술 시간이면 언제나 바다와 배를 그려넣곤 했었다. 기차와 비행기와 빌딩만을 그려대는 도회지의 아이들 틈에서 이방인 취급을받아야 했을 때마다, 나는 늘 홀로 낙심하여 담 밖을 맴돌며 그들의 성 안으로 들어가기를 열망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모르는 혼자만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무슨 은밀한 죄의 기억처럼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었다. 결국 그 어린 시절 미술 시간의 그림 속에서처럼 나는 지금껏 늘 혼자서 새로운출항을 꿈꾸며 커온 셈이지만, 그러나 내가 띄운 배는 번번이 가닿을 곳을 미처 찾지 못하여 갈팡질팡 떠돌기만 하다가 종내는오던 길로 되돌아와버리곤 했다.
그 동안 써온 것들을 막상 한데 모아놓고 보니 그렇듯 물만 가득히 차오른 배를 끌고 초라하게 되돌아온 때와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오직 진실된 삶만이 진실한 목소리를 얻을 수 있 - P329

을 것이므로,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떳떳해지도록 애써야 할 터인데도 여전히 그렇지가 못하다. 하지만 이 첫번째 작품집이 내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출항을 꿈꾸게 할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하는 바람이다.
참으로 주위의 여러 귀한 분들로부터 과분한 정을 받아 누리며 살고 있음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의 따뜻한 격려와 애정 어린 눈길은 앞으로도 가슴속에서 나와 오래도록 함께 살아갈 것임을 또한 믿는다. 부족한 작품이지만 펴내게 해주신 문학과지성사의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착한 우리집 식구들에게 이 책이 내가 바치는 작은 선물이 되었으며 한다.

1984년 6월
임철우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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