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는 내 몸을 돌려 거울을 마주보게 했다. 그는 내 머리 양옆에 손을 대고 마지막으로 머리의 위치를 잡았다. 그는 나와 머리를 나란히 하고서 같이 거울을 쳐다보았는데, 아직도 양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나도 나를 바라보았고,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뭔가 봤다고 해도, 이발사는 아무런 질문도 논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앞뒤로 천천히, 마치 잠시 뭔가 다른 걸 생각하듯 쓸기 시작했다. 연인의 손가락처럼 아주 친근하게, 아주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쓸었다.
그것은 오리건 주 부근, 캘리포니아 주 북쪽에 있는 크레센트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얼마 후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오늘 난 그곳 크레센트 시를, 거기서 아내와 새 인생을 살아가려고 했던 것을, 그랬는데도 어쩌다가 그날 아침 이발소 의자에 앉아서 그곳을 떠나 뒤돌아보지 않기로 결심했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눈을 감고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사이로 움직일 때 느껴지던 평온함을, 손가락에 어려 있던 슬픔을, 벌써 다시 자라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떠올렸다. - P343

내 거야


낮이 되며 해가 나오자 눈이 녹아 구정물이 됐다. 뒤뜰이 내다보이는 어깨 높이의 작은 유리창을 타고 물줄기들이 흘러내렸다. 자동차들이 바깥에서 진창을 만들며 지나갔다. 바깥도, 안도어두워지고 있었다.
남자가 침실에서 여행가방에 옷을 집어넣고 있는데 여자가 문으로 다가왔다.
당신이 떠난다니 다행이야, 당신 떠난다니 다행이라고! 내 말안 들려?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가방에 자기 물건을 계속 집어넣을 뿐 고개를 들어 보지 않았다.
개자식아! 네가 가서 너무 기쁘다고!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 P347

내 얼굴도 똑바로 못 보는구나, 그렇지? 그러더니 여자는 침대에 놓인 아기 사진을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남자가 여자를 보자 여자는 눈가를 훔치고 남자를 노려보다가 뒤돌아 거실로 다시 나갔다.
그거 가져와
당신 물건이나 챙겨서 나가.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방을 잠그고 코트를 걸치고 침실을 둘러보고는 불을 껐다. 그런 다음 거실로 나갔다. 여자는 좁은 부엌의 문가에 서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애 이리 줘. 남자가 말했다. - P348

미쳤어?
아니, 하지만 애는 내가 데려갈 거야. 아기 물건 가져갈 사람은 따로 부를 거야.
헛소리 마! 아기는 건드릴 생각도 하지마.
아기가 울기 시작하자 여자가 아기의 머리에서 담요를 걷었다.
그래, 그래. 여자가 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갔다.
왜 이래! 여자가 말했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애 이리 줘. - P348

꺼져버려!
남자가 다가오자 여자가 뒤로 돌아 아기를 스토브 뒤쪽 구석에서 들어올렸다.
남자가 스토브 위로 손을 뻗어 아기를 꽉 잡았다.
애 놔줘. 남자가 말했다.
저리가 저리 가라고! 여자가 소리쳤다.
아기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둘은 옥신각신하다가 스토브 뒤에 걸려 있던 작은 화분을 떨어뜨렸다.
그때 남자가 여자를 벽에 몰아붙이고, 여자의 손을 풀려고 하면서 아기를 붙잡은 채 체중을 실어 여자의 팔을 밀어냈다.
애 놔주라고. 남자가 말했다. - P349

하지 마. 애 아프잖아!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부엌 유리창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남자는 한 손으로는 여자의 주먹 쥔 손가락을 풀려고 애쓰면서 다른 손으로는 울고 있는 아기의 겨드랑이 밑을 받쳐들었다.
여자는 손가락이 강제로 펴지고 아기가 자기에게서 떨어지는걸 느꼈다. 안 돼, 아기를 놓치는 순간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아기를, 탁자에 놓인 사진 속에서 토실토실한 얼굴로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기를 자기가 데리고 있을 생각이었다. 여자는 아 - P349

기의 다른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기의 손목을 잡고는 뒤로기댔다.
남자는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아기가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는 걸 느끼고 세게 잡아당겼다. 아주 세게 잡아당겼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은 이 문제를 결정지었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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