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는 방식에서도 그래왔고, 생각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도 수사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에 경도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 대해 쓸 때에는, 그 사람들을 제가 그려낼 수 있는 한 제일 구체적인 환경 속에 배치하고 싶어 합니다. 이 환경에는 TV라든가 탁자,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인펜 같은 사물들이 포함될 수 있는데, 일단 이런 것들을 장면 안에 집어넣기로 했다면, 이것들에는 반드시 어떤 힘이 주어져야 합니다. 이 사물들이 각자의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물론 전혀 아니고, 다만 그것들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어떤 식으로든 느껴져야 한다는 겁니다. 숟가락이나 의자나 TV•를 묘사할 생각이라면, 그것들을 단순히 장면 안에 배치한 뒤•그대로 흘러가게 두지는 말아야 합니다. 조금 더 무게를 부여하고, 주변의 존재들과 연결되도록 해줘야 합니다. 저는 이런사물들이 소설 안에서 인물들처럼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생각하지는 않지만, 이것들이 그 자리에 존재하고, 그리고 독 - P204

자들이 그것들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해야한다는 거죠. 재떨이가 여기에 있고, TV는 저기에 있고(켜져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꺼져 있을 수도 있고), 벽난로 안에는 오래된 탄산수 캔들이 들어 있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우선 한 가지를 꼽자면, 저는 문예지를 집어 들 때마다 제일먼저 읽는 게 시고 그다음이 단편소설이에요. 에세이나 비평같은 것들도 있을 텐데, 그것들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걸 보면 저는 형식 자체에 이끌리는 듯합니다. 시와 단편소설 모두의 특질인 간결성에 처음부터 끌렸던 거죠. 그리고, 시와 단편소설은 웬만한 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탓도 있고요. 처음 작가가 되었을 때 저는 이사도 자주 다녔고 제게는 이상한 직업, 감당해야 하는 집안일 같은 일상적인 방해 요소들이 있었어요. 제 인생이라는 게 아주 취약한 것 같았기 때문에 무언가 끝까지 가볼 수 있을 만한 걸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서둘러서, 오래 걸리지 않고 끝낼 수 있는 일이 필요했던 거죠. 방금 말한 것처럼, 시와 단편소설은 형식과 의도 면에서 서로에게 매우 가깝고, 제가 하고자 하는 것에도 무척 가깝고 해서 글을 쓰던 초기부터 두 형식 사이를 오가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 P205

버만약 제게 반지성주의적인 경향이 있는 거냐고 물으시는 거라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냥 제가 반응을 하거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차원의 작품들이있는 거죠. 예를 들어 소위 ‘웰메이드 시‘라고 불리는 것들에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가질 않아요. 그런 시들을 보면 "오, 저건 그냥 시네"라고 반응하고 말게 되는 겁니다. 저는 그런 것말고 다른 어떤 것, 그냥 좋은 시에 그치고 마는 게 아닌 무언가를 찾는 겁니다. 사실 창작 프로그램에 다니는 성실한 대학원생 누구라도 좋은 시는 쓸 수 있어요. 저는 그 지점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찾는 겁니다. 아마도 그보다 거친 어떤 걸 원하는 것 같아요. - P207

저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던 때부터 초고를 쓰는 것만큼이나 수정 과정을 좋아했습니다. 문장들을 골라내서 가지고 놀고, 다시 쓰고, 단단해 보일 때까지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늘 좋아했어요. 이런 건 아마 제가 존 가드너에게서 배웠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가드너는 어떤 걸 쓸 때스무 단어나 서른 단어로 쓰는 대신 열다섯 단어로 말할 수있다면 열다섯 단어로 말하라고 했는데, 저는 그걸 즉각 받아들였어요. 그 말은 계시처럼 저를 덮쳤습니다. 저는 당시 저만의 길을 찾으려고 더듬거리고 있던 차였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누군가가, 제가 이미 하고 싶어 하던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저한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종이 위에 이미 써놓은 글로 돌아가 그걸 다듬고, 불필요한 걸 지우고,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건 저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P208

수리비 60달러 때문에 수리공을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보험이 없어서 의사한테 가지 못하고, 치과에 가야 할 때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서 이가 완전히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요. 이런 게 저한테는 비현실적이거나 인위적으로만들어낸 상황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런 그룹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둔다는 점을 두고 보자면, 제가 다른 작가들과 그리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요. 체호프는 100년 전에 바닥으로 가라앉은 사람들에 대해 썼어요. 단편소설 작가들은 늘 그런 작업을 해왔어요. 체호프가 그렇게바닥에 가라앉고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작품만 써온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단편을 제가 언급한 이런 사람들에 대해 썼어요. 의사며 사업가며 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썼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목소리를주었단 말이죠. 체호프는 그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방편을 찾아낸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에 대해 말할 줄 모르고, 혼란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에 대해 쓴다는 면에서 보자면 제가 그리 대단하게 색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거죠.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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