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꼍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뒤꼍에 밤낮 없이 열어 두는문이 하나씩 있다 언제나 예감은 불륜의 발자국처럼 그리로 드나들었다 기일게 개미 떼들이 서둘러 피신한 뒤내리는 소낙비에 그러나 나는 왜 번번이 노박이로 흠씬젖었을까 그해 겨울도 그랬다 순천 선암사 뒤꼍 줄로서 있는 홍매화들이 노구를 이끌고 이 엄동에도 꽃눈부풀어 만삭이라는, 통통하게 벌서고 있다는, 숨이 차다는 전갈을 그날 아침 받기도 하였지만 그런 뒤꼍일때는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날 우리집 뒤꼍 간장독이새벽부터 캄캄하게 뒤집혔고 이윽고 한 채 꽃상여가 산모롱이를 돌아갔다 눈발 날렸다 어머니가 이승을 하직하셨다
마지막 가을
여름을 여름답게 들끓게 하지도 못하고 서둘러 가을이 왔다 모든 귀뚜라미들의 기인 더듬이가 밤새도록 짚은 울음으로도 울음으로도 다 가닿지 못한 어디가 따로이 있다는 게냐 사랑이 멍든 자죽도 없이 맞이하는 가을의 맨살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이른 새벽길 아직도떠나지 못하고 있는 바닷가 민박집 여자의 아침상도 오늘로 접어야 하리 늘 비가 내렸다 햇살들의 손톱 사이에낀 푸른곰팡이들이 아직도 축축하다 부끄럽다 이 손으로 따뜻한 네 손을 잡겠다 할 수는 없구나 딸이 늦은시집을 간다는 편지를 객지에서 받는다 노동의 지전을센다 마지막 그물을 거두었다 이러는 게 아니지 너무오래 혼자 있는 가을에 익숙해졌다 서둘러 돌아가야 하리 왜 이토록 서성거리는 게냐 슬픔이 떠난 자리는 늘불안했다 낡은 입성으로 오는 마지막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