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낸 이후 십삼 년이 지났다.
힘겹게 다시 한 권의 시집을 묶으며 무언가 한마디 없을수 없겠는데, 의외로 담담해진다. 문득 밤낚시를 드리우던 기억이 난다. 가슴이 철렁하도록 찌가 한 번 솟구쳐오르기를 기다리다가 날이 샜다. 생각하건대 내가 시를 써온 일이 이와 같았다. 작은 움직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고 그것이 커다란 감동으로 다시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욕심이었다. 80년대의 처음부터 너무 큰 충격을 받아왔던 탓일까.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고, 감각의 촉수는 그만큼 무뎌져 있었다. 살아오면서 모서리가닳고 뻔뻔스러워진 탓도 없지 않으리라. 입술을 깨물면서나는 다시 시의 날을 버린다. 일상을 그냥 일상으로 치부해버리는 한 거기에 시는 없다. 일상 속에서 심상치 않은인생의 기미를 발견해내는 일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맡겨진 몫이 아닐까 싶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외친다. 나의목소리가 귓전을 때리지 않고 당신들의 당신들의 당신들의 가슴을 울리기를 기대하면서.
1991년 3월정희성
4월 북한산에 올라
지나간 사월을 그리워 말자
사월이 가면 오월이 오는 법
황사 휘몰아치는 산정에 서서
보라, 때가 되면 모진 바람 속에서도
진달래 흐드러져 피지 않더냐
사일구는 사월에 오지 않아도
이 땅의 오월에 다시 찾아오고
눈물 어룽진 남녘 땅에
봄이 오는 소리 들리지 않더냐
그러나 이제는 냉정해지자
피 흘려 쓰러진 벗들 앞에서
속절없는 다짐을 하지는 말아야지
흙바람을 맞으며
아아 성난 불의 마음으로
가슴 깊이 응어리진 얼음의 마음으로
사월은 사월에 오지 않아도
한겨울 눈 속에 꽃맹아리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