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서산에 한껏 해가 기우니
흐르는 물은 흐르게 두고
그대만 남아서 무슨 물그늘처럼
상기 내 눈을 지나니
울 때는 맨살로 울며
넋놓아 흐르니
여울에 잠긴 달 가득히
그대 여흰 얼굴을 이루고
저마다 빛 슬픈 여울이 희고 흰
이 산천을 하나로 적시듯

사월에


보이지 않는 것은 죽음만이 아니다
굳이 돌에 새긴  그 시절의 무덤을 홀로지키고 있는 것은 석탑(石塔)뿐
이 땅의 정처없는 넋이
다만 풀 가운데 누워풀로서 자라게 한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룬 것은 없고
죽은 자가 또다시 무엇을 이루겠느냐
봄이 오면 속절없이 찾는 자 하나를 젖은 눈물에 다시 젖게 하려느냐
사월이여

숲속에 서서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나는 숲을 찾는다
숲에 가서
나무와 풀잎의 말을 듣는다
무언가 수런대는 그들의 목소리를 알 수 없어도
나는 그들의 은유(隱喩)를 이해할 것 같다.
이슬 속에 지는 달과
그들의 신화를,
이슬 속에 뜨는 해와
그들의 역사를,
그들의 신선한 의인법을 나는 알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울면서 두려워하면서 한없이
한없이 여기 서 있다
우리들의 운명을 이끄는
뜨겁고 눈물겨운 은유를 찾아
여기 숲속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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