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언에 대한 사랑으로 부드러워지고 롬니의 소식으로 누그러진 오로라는 마침내빅토리아 시대의 청중에게 ‘예술은 소중하다. 그러나 특히 여자에게는 사랑이 더 소중하다‘고 인정한다.


예술은 천국을 상징한다. 그러나 사랑은 신이며
천국을 만든다. 나, 오로라, 갱도에서 추락한 나는 다른 여자들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믿는 단순한 여자,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의 권리를 소유한
그리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신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만족하는. 나는 분석하고
맞서고 질문해야 한다. 마치 파리 한 마리가
어떤 햇빛 아래서도 몸을 덥히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해가 절정에 이를 때까지 - P978

옛 체계는 갱신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때를 향해 개개인의 새로운 가슴은 빠르게 뛰어야 하며, 그런 가슴들이 늘어나
다수가 되어 인류의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로부터 발전하여 동시에 새로운 교회, 새로운 경제,
자유를 인정하는 새로운 법이, 잘못을 배제하는
새로운 사회가 나올 것이다.
그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리라.


신성한 가부장이 인간 가부장과 그의 협력자의 도움을 받아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 위 인용은 배럿브라우닝의 구도 안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며 만들어질 것이라는, 더 놀라운 사실을 끝까지 숨기지 않고 있다.
에밀리 디킨슨은 ‘그 외국 여자‘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을 처음 읽었을 때 ‘정신의 개조‘를 경험했다고 썼다. 디킨슨은 『오로라 리』의 결론을 읽고 자기를 포기하는 굴종의 베일 뒤에 감 - P981

추어진 사회 변화에 대한 낭만주의적 열망을 감지했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또한 이 시의 끝에서 해가 떠오를 때 오로라 리가 본 천상의 도시는 결국 오로라의 것이지 눈먼 롬니가 볼 수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틀림없이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도시는 빛나는 도시 새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오로라 리의 가슴속 ‘열기와 과격성‘이 아무리 길들여진다 해도 그 서광 같은 불길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배럿 브라우닝이 사방으로 ‘여성 선배들‘을 찾아다녔고, 그녀 자신이 영국과 미국을통틀어 모든 현대 여성 시인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여지가 없다. 분명 브라우닝은 에밀리 디킨슨의 정신적 어머니였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에밀리 디킨슨은 브라우닝의 타협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브라우닝의 ‘통찰적 시선‘에 매번 영감을 받았고, 바로 그 시선을 통해 시를 쓸 때 여성 시인을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했다. - P982

북아메리카 토착민들 사이에서 [...] 여자의 독신 생활은 [...] 다음의 경우에 허용되었다. [...] 젊었을 때 자신이 태양과 약혼했다고 생각한 여자 그녀는 외딴곳에 자신의 오두막을 짓고, 그곳을 자기 결혼의 표상과 독립 생활을 위한 도구로 채웠다. 그곳에서 그녀는 혼자 힘으로,
자신이 서약한 약혼에 충실히 임했다.
모든 민족이 태양과 약혼한 것처럼 살았던 여자는 묵인했다. 그녀가 성인이 되면 그녀의 청춘을 아름답게 꽃피운 빛이 그녀를 후광으로감싸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마거릿 풀러

팔린 로맨스는 어떤 것이든
그 개인을 정독하는 것만큼 사람을 매혹시킬 수 없으리 ㅡ
그것은 허구의 몫 ㅡ그럴듯함으로 희석시키는 것은
우리의 소설ㅡ믿을 수 있을 만큼
작을 때 ㅡ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디킨슨은 장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고 산문이나 소설, 로맨스도 쓰지 않았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동시대 성공한 여성들과 비교할 때 디킨슨이 더없이 두드러진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과 크리스티나 로세티만 해도 우리가 여성 서정시의 ‘문제‘로 규정한 것을 해결하려 하면서 예술에 대한 여성의 불안을 극화하고 거리를 둔 채 서사 안에 서정시적 폭발을 안전하게 (말하자면 주제넘지 않게 끼워넣었기 때문이다. 로세티의 가장 성공적인 두 작품은 「도깨비 시장」과 「집에서 가정으로」이고, 이 둘 다 본질적으로 여자들이 오랫동안 산문으로 써왔던 고딕 로맨스다(「도깨비 시장」의 운문은 「성 아그네스의이브」보다 마더 구스 동요집과 훨씬 더 비슷하다), 배럿 브라우닝은 오로라 리』 같은 대규모 서사시를 구상하던 시기, 처음에는 로세티보다 자기주장이 더 강했다. 하지만 브라우닝 자신 - P984

이 이 작품을 소설-시로 묘사함으로써 작품의 길이에 비해 그작품이 품을 수 있는 야심은 약화되어버린다. 약강격의 오보격형식으로 쓴 『제인 에어』는 전통 서사시였다면 보였을 장엄함이 훨씬 덜하다. 서사시란 본래 워즈워스의 『서곡이나 밀턴의『실낙원처럼 ‘인간‘을 ‘신‘에 관련시킨다는 우주적 목표를 내포하지만, 『오로라 리는 여느 풍속소설처럼 여자를 남자에 관련시킬 뿐이다. 사실 매우 신비해 보이는 오로라와 롬니의 약혼도(어쨌든 표면상으로는 ‘그는 오로지 신을 위해, 그녀는 롬니안의 신을 위해‘라는 [『실낙원] 4편 299행] 밀턴의 위계질서를해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
시서치 - P985

다시 말해 디킨슨의 삶 자체가 일종의 소설이고 이야기였다. 이 창의적인 시인은 정확하게 손에 잡히는 복장의 도움을 받아 비상하게 복잡한 일련의 책략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예술에 대한 불안과 여성의 종속에 대한 분노 둘 다를 재연하고 결국 해결했다. 디킨슨의 간결하고 폭발적인 시들은 어떤 의미에서 허구적 인물의 대사다. 그녀가 히긴슨에게 말했듯 ‘내가 시에서 대리인을 통해 나 자신을 말할 때 그것은 (나를 의미하지 않고) 가상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실상 정교한 극적 독백으로 이해되는 디킨슨의 시는 확장된 소설 속 ‘대화‘이며, 소설의 주제는 가상 인물의 삶이다. - P986

실제로 디킨슨에게 예술이란 포에시스-만들기보다 미메시스-행동하기였는데, 이는 그녀가 의식조차 사색적이기보다 연극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존슨이 1863년경 디킨슨이 썼다고 추정한 아래의 시는 히긴슨에게 보낸 편지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이 점을 밝혀준다.


극의 가장 생생한 표현은 일상이다
우리 주변에서 떠오르고 지는ㅡ
다른 비극은

암송으로 사라진다ㅡ
이것이ㅡ최상의 공연
청중이 흩어지고
관람석이 닫혔을 때ㅡ

‘햄릿‘은 자신에게 햄릿이었을 것이다ㅡ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면ㅡ - P990

‘로미오‘는 자신의 줄리엣에 대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것은 무한하게 공연되었다
인간의 가슴에서ㅡ 오로지 극장만이 기록했다
소유주가 문 닫을 수 없는ㅡ [J741편]


인생은 연기이며, 예술은 내면의 무대에서 공연된 장면이 외부로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작가와 그녀의 인물들은 하나다.
그들은 한 명의 ‘가상의 사람‘이거나 더 정확히는 일련의 그런 사람들로서, 낭만주의적 드라마나 (이장 첫머리에 인용한 디킨슨의 시가 암시하듯)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소설‘에서 ‘믿을수 있을 만큼 작을 때 /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상호작용한다. - P991

그녀는 그의 요구에 일어섰다ㅡ그녀 삶의
장난감들을 떨어뜨리고
여자의, 그리고 아내의ㅡ
명예로운 일을 잡기 위해서
새로운 날에 그녀가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다면
품위나 경외ㅡ
또는 최초의 전망ㅡ또는 금
사용하여 닳아버린

그것은 말해지지 않은 채 놓여 있다ㅡ바다가
진주와 해초를 만들어내지만,
단지 바다만ㅡ알고 있듯이
그들이 살고 있는 깊은 곳은ㅡ[] 732편] - P994

나는 ‘아내‘다ㅡ나는 끝냈다 그ㅡ
다른 상태를ㅡ
나는 황제다ㅡ나는 이제 ‘여자‘다ㅡ 그래서 더 안전하다ㅡ

이 부드러운 일식 뒤에서ㅡ 소녀의 삶은 얼마나 이상해 보이는가
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ㅡ이제ㅡ
지상이 그렇게 느껴지리라
이것이 편안하니ㅡ그러니까

그 다른 것은ㅡ고통이었다ㅡ 그러나 왜 비교하지?
나는 ‘아내‘다! 거기서 그만!
[] 199편] - P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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