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람은 꽃을 꺾어도 꽃은 사람을 꺾지 않는다 사람은 꽃을 버려도 꽃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영정 속으로 사람이 기어들어가 울고 있어도 꽃은 손수건을 꺼내 밤새도록 장례식장 영정의 눈물을 닦아준다
물의 꽃
펄펄 끓는 물에 꽃이 핀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하여 그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든다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하여 펄펄 끓는 물에 꽃은 다시 깊게 뿌리를 내린다
부활
진달래 핀 어느 봄날에 돌멩이 하나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돌멩이가 처음에는 참새 한 마리 가쁜 숨을 쉬듯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더니 차차 시간이 지나자 잠이라도 든 듯 고른 숨을 내쉬었다 내가 봄 햇살을 맞으며 엄마 품에 안겨 숨을 쉬듯이
봄비
어느날 썩은 내 가슴을 조금 파보았다 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 흙에 꽃씨를 심었다 어느날 꽃씨를 심은 내 가슴이 너무 궁금해서 조금 파보려고 하다가 봄비가 와서 그만두었다
짐
내 짐 속에는 다른 사람의 짐이 절반이다 다른 사람의 짐을 지고 가지 않으면 결코 내 짐마저 지고 갈 수 없다 길을 떠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짐은 멀리 던져버려도 어느새 다른 사람의 짐이 내가 짊어지고 가는 짐의 절반 이상이다 풀잎이 이슬을 무거워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내 짐이 아침이슬이길 간절히 바랐으나 이슬에도 햇살의 무게가 절반 이상이다 이제 짐을 내려놓고 별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지고 온 짐덩이 속에 내 짐이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비틀거리며 기어이 짊어지고 온 다른 사람의 짐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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