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임에는 다양한 인생관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만큼 갈등도 적지 않다. ‘다름‘을 죽이지 않기로 한 만큼 ‘다름‘을 어떻게 소화해 낼 것인가로 계속 고민을 해왔다. 우리는 애초부터 ‘따로또 같이‘의 원리로 일을 해오고 있지만 획일주의 문화에 길들여진우리는 종종 마냥 엉긴다. 취지에 동의하여 만난 우리들이지만 남자와 여자 사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 결혼 제도에 들어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 봉건적 감성을 가진 사람과 근대적 감성을 가진 사람 사이, 성욕이 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 이성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과 동성을 더 좋아하는 사람 사이, 창작하는 이들과 비평가 기질의 사람들 사이, 맏딸과 둘째딸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자유 분방한 편인 나는 우리 모임이 ‘모범생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답답해 할 때가 많다. 좀더 과감하게 주위의 시선을 무시하고 ‘못된 짓‘을 벌여야 할 때도, 온순한 맏딸의 선을 넘지 못하고 만다. 그럴 때면 나는편지를 쓰기도 한다. - P208

맏딸로 태어난 그대들에게

불행한 시대에
맏딸로 태어나
집안의 기둥으로 살았던 그대
근엄한 꼬마 엄마, 정숙한 자매여
그대의 엄함과 숙함에
축복 있으라.

그러나
모범생 그대는
자동 반사 인형처럼
질서를 잡아야 하는 인간
휴강 못하는 충실함에
그릇 채우기에 바쁜 그대 뒤를 - P208

가부장의 미소가 따라다닌다.

‘질서‘에 틈새를 낼
기발한 전략은
정적 속에, 공상 속에서 나온다.
빈 곳에서 온다.
하릴없이 떠다니는 방랑길에서
게릴라 전략이,
시가,
아 많은 것들은 빈둥거리는 사이에 온다.

우리 시대의 음모는
우리를 바쁘게 하는 것
의무감에 시달리는 그대여
우리로 하여금 놀게 하라
그대
‘큰자아‘이기를
‘큰타자‘이기를
이제 그만 포기하라. (1991년 4월) - P209

나는 이런 식의 쪽지를 써서라도 내 마음을 전한다. 사실 나는착실한 맏딸을 매우 사랑한다. 그리고 그 착실함 때문에 일이 잘되어 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겁없이 일을 벌이는 것도 그들이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모임이 좀 처지는 기분이 들면 그들을 탓한다. 식민지적 상황에서는 ‘중심‘에서멀어질수록 자기 분열의 정도가 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면서 그들을 나무라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할 말을 하였으면 한다.
사실 이 모임을 통해 우리가 실험해 온 것은 어떤 내용이 아니라방식일지 모른다. 우리는 ‘획일적 통제‘와 ‘권위주의‘ 없이 일을해내고자 한다. 우리 주변에 가득한 ‘형식적 민주주의‘와 집단주의는 너무나 지겹다. 자율성 없이 남에게 복종하는 것과, 자율성을 부 - P209

르짖으며 폐쇄적 회로에 빠져 있는 것과, 자율성을 토대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 이 세 가지는 분명 다르다.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자율‘은 외국에서 들어온 단어에 불과하다.
80년대에는 이 모임 외에도 많은 여성 운동을 하는 모임들이 만들어졌었다. ‘기층 여성‘을 위한 운동이 많았으며 "계급 모순과 성모순 중 어느 것이 더 기본 모순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일도 많았다. 나는 ‘자신이 선 자리‘에 대한 충분한 성찰을 하지 않는 운동가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일상과 동떨어진 ‘외부‘에서 찾으려는 운동가나 운동 이론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80년대에는 모든 여성 단체들이 모여 회합을가지곤 했는데, 그런 모임에 갔다오면 나는 무척 침울해지곤 했다. - P210

사회 운동이란 역사성을 되찾는 작업이며, 일상성 속에서 개인을역사와 연결시켜 내는 것이다. 목소리를 통일하기보다 우선 목소리를 살려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다름‘을 성급하게 없애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이다. 다중적 모순을 다루는 사회 운동이란 그 여러 모순을 다 짜맞추어 넣은 훌륭한 이론을 가져야 가능한 운동이 아니다. 실은 그런 이론이란 있을 수 없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풀어 가는 식의 사회 운동을 통해서만이 다중적 모순이 풀리게 된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인간적 사회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각자가 가진 자질과 정서와 의사소통 방식의 특성을 살려 내면서 협력해 가는 것, 정말 안될까? 우리는 남북한 통일을 바라보면서 역시 걱정을 한다. 상대방의 ‘다름‘
을 포용해 내기를 이렇게도 싫어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통일이되었다고 할 때 또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까? <또 하나의 문화>에서는 그런 상황이 올 것이 염려스러워서 올해 ‘통일된 땅에서 더불어 사는 연습‘ 모임이 뜬다. - P211

지금까지 나는 여성들이 지닌 주변성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였지만, 이제는 ‘주변적‘이었던 남성은 물론 가장 ‘중심부‘에 있다고 여겨 온 남성들도 자신들의 삶을 둘러보면 그러한 지점을 쉽게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런 박탈감을 약간이나마 느꼈다면, 그것은 적어도 내가 지배 담론을 넘어서서 그것에 틈새를 내는 데 성공을 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인데, 이렇게 ‘중심‘과 ‘주변‘의 자리는 생각보다 쉽게 바뀔 수 있다. 최근 한 프랑스 소설가는 서양에 사는 남성들이 주변부로서 배회하는 모습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 글을 읽어 보자.

"나는 오랫동안 여성이란 존재는 절대적인 미스테리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은..... 남자로서의 내가 그렇다. 나는 여성이 어디에 소용이되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남성은 정확히 어디에 소용이 된단 말인 - P212

가? ‘나는 남자다‘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은 ‘검은 대륙‘이었고 아무도 남성에 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부계 사회가 출현한 이후 남성은 언제나 스스로를 특권을 누려 마땅한 인간으로 정의해 왔다. ‘남성성‘은 너무나 자명한 것으로, 남성은 여성과 대비하여 늘 존귀하고 자연스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 비추어볼 거울을 잃은 남성들은 검은 대륙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남성의 방황은, 백인 문명의 방황과 함께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는 표현이 실감난다. - P213

그는 다른 사람들이 벽이나 산과 마주치는 곳에서 하나의 길을 본다어디에서나 길을 보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교차로에 서 있다.
다음 순간이 무엇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현존하는 것을 파편으로 만드는데, 그것은 파편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파편을 통해 이어지는 길을 위해서다.

지식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론이라는 것도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나는 본질주의적 경험주의자로서의 입장을 말하고 있지 않다. 즉흥적인 경험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임신과 출산의 고통스런 경험은 여자를 성숙시킨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똑같은 출산의 고통을 겪더라도 원초적인 비명을 지르다가 까무라칠 즈음에 아기를 낳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산고 속에서 삶의 근원과 만나고 태어날 아기를 위해 한층 성숙해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는 바로 경험 주체자의 관점과 기억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 P213

여기서 경험이란 경험 주체자가 가진 시선과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성찰적 경험을 뜻한다. 역사란 그러한 자기 성찰적 경험을 쓰는 일이다. 경험 주체자의 적극적 기억 행위, 또는 서사 행위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또 경험되는 글쓰기 과정이 곧 역사 쓰기인 것이다. 역사는 곧 기억이며, 그 기억은 주체자에 의해 선택된다. 우리 머리 속에는 항상 어떤 과거의 기억이 잠재되어 있고, 그것은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 분출되어 나오면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고, 또 역사를 만들어 간다.
나는 내가 왈가닥인 외할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자라서 그 할머니를 닮았다고 주장하는 여자들이 우리 집안에 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자신이 선택한 기억을 이용하여 스스로에게 자유로운 삶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적극적으로 기억하기, 이것은 타자화된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하는 행위이다. - P215

여성 운동을 하면서 나는 나의 ‘다름‘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특히 나의 ‘거침 없음‘이 좀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감대를 이루어 가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여성적‘이지 못한, ‘거침 없는 양성성‘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 보았고 그러던 중에 우리 집안에 있었던 두 여자의 ‘반역적행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안에서 ‘변종‘들이 많이나온 것은 바로 그들의 ‘반역적 행위‘와 관계가 깊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 P215

내 기억에는 활달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은 있어도 손상된 자의식을 가진 여성의 모습은 별로 없다. 아마도 ‘선천적으로‘ 지워버렸을 것이다. 나의 정서는 많은 부분 이 두 할머니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으며, 보수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그들의 혁신성을 더욱 잘 기억해 두려고 한다.
내가 이 두 할머니 이야기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선각자적 잘남‘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적 위치를 바꾸어 간 결단의면에서이다.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과부‘라는 범주에 드는 경험속에서, 또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조건 속에서 그들은 무언가 ‘부당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그들은 그냥 그 자리에 머물면서 박탈감을계속 느끼기보다는 자신의 그 자리를 새롭게 규정함으로 바꾸어 갈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 그대로 적응하지 않았으며, ‘주변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자했다. 근대사에는 그들과 같은 결단을 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고, 바로 그런 사람들의 결단에 의해 우리 사회는 그 나름대로 근대성을 담아 내게 되었을 것이다. - P217

나는 내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삶을 통해서 자신이 선 자리에서지혜/지식을 만들어 가는 삶을 알아 왔다. 그들의 힘은 그들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데서부터 나온다. 나라가 주권을잃은 상태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은 기성 체제에 편입되는 것을의도적으로 거부했고, 기성 문화와 거리를 둠으로써 그것이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권위를 거부할 수 있었다. 자신의 ‘주변성‘을 피해의식이나 열등의식으로 여기지 않았으므로 일제 치하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고, 남의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선망과 질투로 괴로와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식민지 시대에도 식민지성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주변성‘에 대한 자의식은 여러 차원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나의 할머니처럼 과부가 되었다거나, 아들을 못 낳는다는 점에서주변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고, 전통적인 신분제 사회에서는 ‘상놈‘
이라든가, 서자의 자손이라든가, ‘바닷가 마을‘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적으로 빈곤하다는 이유만으로 수시로 - P217

주변화된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그런 공식적 범주화가 아니더라도나는 내 ‘섬세하고 고지식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그러한 성격 때문에 자신이 ‘주변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을 것이라는생각을 한다. 어떤 명백한 박탈적 조건이 있어야 주변성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소수의 ‘무딘‘ 사람을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도중에 자신이 주변화되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관점 내지 시각이며, 그들이 선택한 준거 집단일 것이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실천을 해야 하는 짐"이라고배웠지만 그의 삶을 통해 그것이 꼭 짐만이 아니고 기쁨이며 자유로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에 비해서 ‘너무나 많이 배운 ‘아버지는 중심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힘들게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중심성을 중시했다. 외아들로서, 남자로서, ‘양반‘으로서, 고향 마을의 유일한 일본 유학생으로서, 또그 이후의 여러 가지 ‘화려한‘ 유학 생활과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항상 ‘중심‘ 가까이에서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한다. 아버지는 내게 아주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지금도 나는 곧잘 아버지를 거울 삼아 나를 비춰 보곤 하는데, 나는 요즘 부쩍 그를 통해 ‘중심‘의 시선에 집착하는 것의 문제점을 본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해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당신의 완벽주의적 성격과도 관계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한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오는 것임을 안다. - P218

한참 후 세월이 흘렀고, 전혜린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그가 서른을 갓 넘은 나이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단순히 애를 낳고 남자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던 여자로서의 조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죽은 것은 그가 감히 식민지 주민이면서, 삶을 이야기하는 ‘언어‘를 가질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묻고 있었다. "통일 있는 내용을 생활 속에 담고 싶고 그 내용으로 내 전 영혼이 뒤흔들리는 그런 방식 속에 살고 싶다면 과대망상적일까?"
여자지만, 식민지 주민이지만, 감히 언어를 갖고자 했던 전혜린을 여성의 언어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다시 기억해 내기로 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된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일고 있는 중심에 들고자 하는 집착이 가져오는 불행과 악순환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자로 태어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게되었다. 억압당하는 여자로서의 자의식은 여성만이 아닌 다른 많은 주변화된 집단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그들이 받는 억압에 대해 민감해지며, 동시에 나 자신이 보수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혜택 받은 계층에 속함으로써 범하게 될 횡포에 대해서도 감시하게 된다. - P219

자기가 자기를 보기 어렵듯이 ‘중심‘에서는 ‘중심‘을 보기 힘들다. 더구나 자신이 가진 ‘중심‘에 매달려서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시선에는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없다. ‘주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만보인다. 그러나 일단 그 자리를 인정하면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가난한‘ 자리가 시선의 변화에 따라 매우 풍성한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않고는 실은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없다.
자신의 ‘자리‘를 전체 속에서 확인하고 그 자리를 더 이상 ‘주변‘으로만 규정하지 않기로 한 주변인들은 자신의 경험과 시각을 아주 새롭게 재구성하는 일에 단호하게 착수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변신은 아래와 같은 상황을 통해 그려볼 수 있다. 항상 ‘중심부‘인 남편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 주는지 잊어버렸는지에 따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늠하던 여성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생일상을 차리게 된다. 이 행위는 자신이 이제 더 이상 남편의 사랑과 관심의 정도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바로 자신으로부터 삶을 시작하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 P220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지방에 있는 친구 교수가 한 말을 떠올린다. 지방 대학에 있는 많은 교수들이 언젠가 ‘서울‘로 갈 수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 속에서 지낸다고 그는 말했다. 객관적으로 자신이 실력이 있고, 열심히 연구하려는 ‘야심 있는‘ 학자일수록 그런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중심부‘로 갈 희망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날이 오는데, 이때 비로소 그의 눈에 지방에 있는 것들이 - 아마도 학생과 캠퍼스와 지역 정치의 장과 일상적 만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동안 그는 자신이 사는 곳을 보지 않고 살았던 것이며, 그의 시선은온통 중앙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혹시 중앙에서 일어나고 있는흥미로운 사건에서 배제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학문적 토론을 할 만한 대상이 없다는 것을 비판하면서 술을 마실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방과 ‘중앙‘의 차이가 그만큼 현격했으며, 이런 중앙 중심주의는 분명히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 P220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주변성‘을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거점‘으로 삼아 가는 것을 극도로 힘들게 해왔다.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모순을 외면하고 자신이 가진 미약한 ‘중심성‘에 매달리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몰아 왔다. 그래서 ‘주변화‘ 된다는 것에 대해 자동 반사적으로 거부 반응을 가진 사람들을 길러 내었다. ‘급진성‘을 싹이 채 트기 전에 죽여 버렸다. 탈식민화를해내려고 하는 마당에서 이제 우리는 ‘급진성‘을 배태해 낼 ‘주변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다져 가야 한다.
이제 각자가 기억하기, 자신의 역사성을 되찾아 보는 일이 남았다. 변혁을 지향하는 역사학에서 ‘구술사 방법론‘에 깊은 관심을기울여 온 것은 바로 ‘민중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역사는 기억 속에서나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탄 워첼 Nathan Wachtel은 구술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 곧 피지배자들의 세계를 구두 증언을 통해 망각으로부터 구해 내는 작업이다. 불평등은 죽음 후에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구술사의 목적 중에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대항 역사를 쓰는 것이며, 소수 민족, 여자, 노동자들인 ‘피정복자들‘이 기억하고 해석해 온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 P222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될 때 그는 자신을 밀실로 몰아넣는, 거대하고 다차원적인 억압 체제를 보기 시작하고, 자신이 선 자리에서 ‘주변성‘을 읽어 내면서 전체 역사를 새로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은 그에게 또 다른 고문으로 다가가겠지만, ‘간주관성‘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은 나는 이 말을 해야겠다. 자신의 소외감,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주변인이 당하는 억압‘에 대한 기억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 바로 탈식민화를 해가는 길이며 우리를 찾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으로 인해 슬픔을 가져야 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이들에게 우리는 기대를 건다. 자신의 경험을 배반하지 않은 그들/우리로부터 ‘앎‘은 시작된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타자화된 모습을 찾아낸 이들은
이제 ‘기억‘을 해내려 한다.

소외된 노동을 하는 자로서,
어머니의 소외를 바라보고 자란 아들로서,
섬세한 감성을 가진 남자로서,
사회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천재성과 감수성을 지닌 이로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소외된 지역의 주민으로서, - P230

대학을 다니지 못한 사람으로서,
오랜 시간 강사 생활을 견뎌온 예비 교수들로서,
자기 표현을 억압당하고 있는 젊은이로서,
두어 개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당해온,
그러나 어느 하나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그 외 다른 많은 이유로
"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언뜻언뜻 묻지 않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기억을 더듬어 ‘주변인‘으로서의 경험을 찾아낸다.
그래서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주변인으로서의 시선‘으로 사회를 보는 훈련을 해간다.
‘부정을 통한 정체성‘이 아니라
‘긍정을 통한 정체성‘을 통해
삶을 만들어 간다.  - P231

우리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남의 언어로 남의 이야기만 해왔기 때문에 우리 이야기를 하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이야기는 그만큼 보잘것없는 꼴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단편적이고 횡설 수설하는 헛소리처럼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움을 심는 세대‘는 그 보잘것없는 우리 이야기의 터에 씨를 심어가야 하지 않을까? 헛구역질이 아닌 입덧의 언어를!
일상적 상호 작용 속에서 자기의 욕망과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이 쓰잘데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 자기에게 맞는 진술의방식을 찾아내는 것,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 속에 있는 역사성을 감지하게 되는 것, 나는 이것이 바로 탈식민화의 과정이라고 말해 왔다. 조그만 말 한마디, 친구를 가지려는 노력이 모두 역사적과정이며 우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역사란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의 복합체이며,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체험들에 대한 짙고 옅은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 관계가 피상적‘ 이라든가 ‘문화가 상투적‘이라든가 ‘역사가 단절되었다‘는 말은 곧 그 기억들에 문제가 생긴 것을 의미한다.  - P242

그 기억들이 끊기거나 엉겨 버릴때, 우리의 삶도 엉겨 버리고 삶의 지혜를 놓치고 만다. 역사는 우리의 기억을 조작하고 왜곡하는 어떤 힘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우리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왜곡‘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의 핵심은 직접적 권력을 가지지 않은 다수인 우리가 역사를 적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역사로 엮어 내는 데 있다.
이제는 자기 자신이 느끼는 ‘사소한‘ 것을 미처 ‘조리‘가 서지않더라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갈 때다. 지금은 무슨내용의 말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하는 것보다 그 동안 눌러 둔 말이 튀어오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표현을 ‘말대꾸‘라면서 ‘호통‘을 치던 봉건적 문화라든가, 자신의 개성을 끊임없이 ‘결핍‘으로 인식하게 해온 서열화된 획일주의 문화는 겁많고 상실감에 시달리는 무기력한 사람들을 낳았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 인색한 분 - P242

위기를 만들었다. 이제 자주권을 찾고자 한다면, 과거의 상실을 애도하거나 한탄하는 의식을 멈추고 ‘파편화된 주체가 현존하는 삶의현장‘을 읽어 내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크고 작은 체험과기억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집단적인 삶을 다시 써가는 것, 자신을치장해 온 허황된 의식들을 알아내고, 자신 속에서 나오는 일상을보지 않으려는 권력 의지를 따라가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이 사회에서 일상과 비일상성, 상식적 지식과 제도적 지식,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서의 균열과 괴리 속에서 자아 분열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 균열과 괴리를 조리 있게말해낼 이가 몇이나 있을까? 이야기는 이 균열과 괴리의 체험에서풀어진다.
우리가 쓰는 글은 각자가 가졌던 소외의 경험, 추방당한 느낌, 웬지 모를 불편함에서 시작한다. 그 지점에서 ‘중심‘이 무엇인지를묻고, 또 주변을 바라볼 거점을 마련한다. 자신이 선 자리가 어떤경계선, 또는 변경인지, 자신의 삶 속에서 긴장을 일으키는 부분이어디서 오는지를 성찰해 내면서, 역사 속의 자신과 만난다.  - P243

자기 땅의 이방인으로서, 일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변인으로서 자신이 선 자리를 주목하고 바꾸어 간다. 이때의 글쓰기는 삶을 읽어 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연속적인 작업 중 하나이다. 그것은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행위이며,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기억하기의 행위이다. 또한 그것은 익숙해진 억압을 낮설게 느끼는 동시에 새로운 ‘멍청함‘에 맞서 깨어 있기 위한 전략이다.
그 동안 가져온 문화적 전제를 최소화하고 현장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일상을 뒤집어 보고 낯설게 하면서, 또 낯을 익혀 간다. 바로 그 과정에서 ‘말‘이 생겨난다. 자신 속에 있는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동원하여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낸다. 감성을 희생하고 훌륭하게 살아 남을 지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종종 우리 사회에 학자가 적은 것은 젊었을 때 감성을 죽인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주변의 소리를 살려 내는 것, 전적으로 다르게 보는 법, 자신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이들이 해내야 할 어려운 - P243

부분이다.
훌륭한 저자는 그 자신이 뛰어나서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인, 소설가, 사회 이론 지망생들이 만들어 낸다. 각처에서 자기의삶을 이론화해 내고 표현하면서 건강하게 자신의 터를 일구는 많은사람들의 목소리가 실은 위대한 시인을, 소설가를, 사회 이론가를낳는다는 말이다. 자기를 알아 가는 글쓰기에서 텍스트의 생산자와소비자는 따로 있지 않다. 저자가 주체가 되고 독자들은 ‘바가지를긁는 마누라‘ 같은 주변적 위치에서 저자에게 ‘혐의‘를 부여하고불만을 터뜨리거나, 전면 거부할 여지만 주어진 일방 통행의 상황과는 매우 다른 상황에서 새로운 글쓰기가 이루어진다. 독자는 저자에게 ‘완벽한 텍스트‘를 요구하지 않으며 스스로 저자와 만나는지점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간다. 그는 매끄러운 논리와 통합된 자아관이 지배하는 담론에 틈새를 내고, 그 틈새로 ‘자기‘ 이야기를들이민다.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 P244

이때 우리에게 문체를 새롭게 개발해 내는 일이 중요해진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글투‘의 말을 좋아해왔다. 이제 탈식민화를 지향하면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말투‘의글을 되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강한 주장의 ‘말하기‘보다 서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보여주기‘ 방식의 글쓰기가 어느 때보다 효과적인 글쓰기 방법이 아닐까? 강하고 직선적인 논리에서 벗어나서부드러운 곡선을 그려 낼 수 있어야 하고, 같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하나의 길이 아니라 많은 길이 열려 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한다.
이제 예술적 표현과 글쓰기 기법을 혁명적으로 ‘해방‘시키는 일이 남아 있다. ‘언어‘의 중요성을 알되, 기존의 문체에 얽매이지 않는 것, 실험적 글쓰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다. 아방가르드적이건, 포스트 모던적이건, 불교적 생략법이건, 지금은 실험적 글쓰기 작업이 곳곳에서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관습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때는 서사 형식의 혁신과 눌러 둔 감수성으로 새로운의사 소통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때 저자는 "무엇을, 어떤 권위적 저자의 글에 이어서 글을 쓸 - P244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아직 말해지지 않고 있는가?"에 대해쓰게 된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지 집단이 필요하다.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소서사‘를 만들어 가는 언어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중간적 공동체가 없이 사적 자아를 노출하는것은 무모한 짓이다. 사소하다고 치부되어 온 이야기들이 중요한이야기임을 알게 되고, 그러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신이 나고 의미있게 되는 것은 그 새로운 ‘우리‘가 생겼을 때 가능하다.
근대의 모든 지식인들은 세계 어디에서건 데카르트와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그 책이 지배하던 시대는명실공히 소수의 천재들의 독점 무대였다. 그러나 라디오가 나오면서 대중들도 ‘유식 ‘해지기 시작했고,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대중 사회가 출현한다. 이제 수백 개의 채널을 가진 위성 방송전파가 지구촌을 누비고, 유선 방송국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속에 너나없이 빠져 버리고 말 시대가 올 것이다. 대면적 의사소통이 다시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은 탈식민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포스트 모던적인 징후를 드러내는 이러한 시대적 맥락과도 관련을 가진다.  - P245

다행히 그런 거대한 위력을 가진 통신 기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화적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이 시대의글쓰기는 시대가 그런 만큼 더욱 대면적 관계에서 멀리 떨어지지않은 대화적인 것이어야 한다. 경험을 나누는 이야기여야 한다. 이때의 이야기는 가슴을 차갑게 놓아 둔 채 읽는 글이 아니다. 삶에대한 감을 잡아 가는 이야기이며, 일상적 용어가 살려지는 글이며,
혼자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껴 가면서 삶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요약하기가 힘들다. 살아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인문 사회 과학에서 독창성이란 어떤 새로운 객관적인 사실을 알아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이가 자신의 삶 속에서절실하게 꺼낸 이야기가 듣는 이들의 삶 속에서 공명을 일으키는데서 오는 것이다. 그것은 그 개인의 이야기를 의미 있는 이야기로받아들이는 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하다.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상의 혁명이란 사람들이 관심을 나누고생각을 모아 언어화하는 작업이다. 결과와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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