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화‘ 내지 ‘제국주의적 지배‘의 문제는 단순히 정치/경제적 차원의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직접적 권력 대립의 문제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은 식민지 지배가 장기화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식민 지배가장기화되자 민족주의자들은 의식의 차원, 또는 언어의 차원이 중요함을 알게 되고 민족주의자들은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식민화된 역사를 가진 많은 사회가 독립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서양의 지배체제‘ 속에 머물고 있음을 보면서 그 동안의 제국주의적 지배가 가져다 준
‘선물‘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타자화‘ / 의식의 식민화/식민적 주체에 대한 논의를 가장 선동적이고 설득력 있게 펴나간 파농의 기념비적 책을 통해 이 문제가 어떤 언어로 구사되어 왔는지 살펴보자.
파농은 식민지 땅에서 태어난 지식인으로 타자화된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대표적 민족 해방 운동가 중 한 사람이다. 1925년에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에서 태어난, 알제리인 정신과 의사이며 알제리 민족 해방전선의 주도자 격인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에 유학한 지식인으로 싸르트르에 심취해 청년기를 보낸 전형적 식민지 엘리트이기도 하다. 의사로서 정신질환을 분석하다가, 그는 환자들 속에서 자기 땅에서 소외되어 버린, 자아상실의 상태에서 살아가는 일반적인 식민지 주민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과정을 통해 그는 알제리 해방 투쟁에 적극 참여하게 되고 그 투쟁에 앞장섰다가 1961년 서른 일곱의 나이에 ‘혁명 전사‘로 사망한다. 파농의 대표적인 책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은 알제리의 식민 종주국이었던 프랑스에서1961년에 출간되어 지성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지금도 탈식민 담론을 논하는 서구 지성계와 제3세계 지성계 전반에 대표적인 교재로 읽히고 있다. - P77

파농은 극도의 비인간화를 초래하는 이러한 제국주의 역사를 끝내야 된다고 믿었으며, 동시에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려움은 바로 이미 너무나 타자화되어 버린 민족주의적 엘리트들의 당혹함 속에 집약되어 있다.


"식민지의 민족주의 정당들이 민족 독립의 명분으로 민중을 동원하는 순간, 식민지 지식인들은 갑자기 그들을 조국으로부터 소외시킨 이 모든 교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버린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버리는 것은 그것을 버린다고 선언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문화 매체를 통해 서구 문명에 흡수되어 들어갔고 유럽 문화가 그의 신체의 일부가 될 만큼 동화되었던, 다시 말하면 자신의 문화를 다른 문화로 대체했던 지식인은 그가 본연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현재 취하고자 하는 문화적 모델이 너무나 허약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 그는 빨리 백인 문화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느낀다. 그는 다른 곳에서 혹은 어느 곳에서라도 그의 문화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낀다." - P81

파농은 ‘식민화된 주체‘를 어떻게 벗어 던질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을 한 사람이었고, 그의 고민과 방황과 좌절은 지금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그 숙제는 실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로 지금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구체적인 ‘적‘을 앞에 놓고 저항하고 괴로와하면서 자신의 상태가 비정상적임을 알 수 있었던 구식민지적 상황에 비해, 그래서 늘 긴장과 경계심을 품고 해방된 조국에 대한 꿈이라도 꿀 수 있어서 파농처럼 자신있게 글을 쓸 수 있었던 당시에 비해, 겉으로의 독립이 보장된 지금의 상황은 혼란스럽다. 대다수 사람들은 정치적 독립을 이룬 것에 만족하며 스스로 ‘탈식민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세계화의 시대에 그런 과제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비정상 상태‘에 있음을 잊어버리게 하는 상태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식민 모국의 얼굴들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계심을 잃게 되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혹에 보다 쉽게 무너진다. - P82

밀즈가 이 글을 쓸 당시 그는 물론 소련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를 보다 잘 이해해야 한다는 동기로 작용을 했을것이다. 어쨌든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또 제3세계의 물적, 정신적 기반이 나아지면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격이 일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변화는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3세계 안에서 지속적인 싸움이 치뤄진 노력들이 들어간, ‘정확히‘ 그 노력만큼의 성과이다. 실상 콜럼부스의후예들은 아직 그렇게 힘이 빠져 있지 않다. 그들은 여전히 세계의 금융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들의 선조가 세계 곳곳에 철도를 깔았듯이, 지금 컴퓨터 통신망을 까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를 준비하며 새로운지도를 그리고 있는 이들의 핵심부는 아직도 백인들이다. 좌표를 상실했다면서 가볍게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탈근대론자들은 서구 학문의 한 지류에지나지 않으며, 서구의 학문적 중심은 아직도 무겁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 가고 있다. - P90

서양은 에피스테메*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혼란을 말한다.
이 혼란은 이해되지 않는 수준의 질서인가
혼란 그 자체인가?


* 에피스테메는 미셸 푸코가 부각시킨 말로서주어진 시대의 앎의 기본 단위를 말한다.
그것은 인식을 위한 기본 전제와 삶을 구성해 가는 기본 개념과 전략들을 포함한다. - P93

지금의 ‘국제화‘도 그렇다. 우리는 지금 ‘국제화‘만 하는 것이아니고 ‘세계화‘도 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단순히 개별 국가간의 상호 작용을 활성화하는 ‘국제화‘가 아니라 지구촌의 위기를극복해 가기 위해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구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16세기부터 진행된 자본주의화는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제 그것이 현실로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우리는 냉철한 계산으로 국제 협상 테이블에 앉아 국가의 이익을지키기 위한 ‘국제 경쟁력‘을 과시해야 하지만, 또한 그 협상 테이블에서 ‘세계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의
‘서구화‘가 아닌 ‘세계화‘ 시대의 철학으로 대화를 할 수 있어야한다.
게다가 이제 협상 테이블에서만 역사가 이루어지는 시대는 지났다. 미디어 시대에 이미지 광고가 중요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간의 교류이다. 이제 사람들은 비행기를, 버스 타듯이 타고 다닌다. 그리고 전화를 통해, 팩스를 통해, 전자 우편(E-mail)을 통해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 제대로 만나가는 것 역시 ‘세계화‘를 향한 준비 작업에 포함된다.  - P103

식민지적 발전을 한 사회가 갖는 공통점, 뒤죽박죽의 상태, 일관성 있는 스타일과는 무관한 절충주의와 혼돈의 상태. 식민주의적근대화를 거친 사회들은 대개가 이런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근대화의 특징이라고 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간격이 좁혀질 줄 모르는 상태, 임시 땜질로 모든 일을 처리하며, ‘폰즈통에 김치‘를 담아 도시락 반찬을 싸가고, 화장실의휴지가 식탁 위에 올라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상태가 바로 식민주의적 근대화를 한 사회의 그림이다.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이 되어도 좋고 아무곳에 있어도 되는 절충주의는 대단한 적응력과 흡수력을 가지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문화를 만들어가지 못한다.
뒤죽박죽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감당하지 못할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뒤죽박죽이 된 자신의 삶을 추스려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자생적 근대화를 해나간 서구에 비해 더욱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 살아왔으면서 통제 가능한 상황에 곧 들어가리라는 꿈을 끝없이 꾸어 왔다. 이당치도 않은 낙관주의는 또 어디서 온 것일까? 이 낙관주의와 지속되는 혼란 사이에는 분명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을 것이다. - P105

우리가 곧 질서정연한 상태로 들어가리라는 터무니없는 낙관론/어쩌면 우리는 이 혼란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 다시말해서 서구인들이 쓴 같은 언어와 스타일로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만성화된 혼란/ 위기 상태를 이론화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생존이 어려웠고 공동체적 언어를 잃어버린 혼란기, 또는 전쟁터였던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활용한 생존 전략이 있었을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 과학에서 즐겨 사용하는 개념들과는거리가 먼 단어로 풀어지리라는 것이다. 자생적 산업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사회일수록 합법적 공간보다 비합법적인 공간이 넓고 힘이 있으리라는 점에 우선 착안해 보자. 그러한 사회일수록 ‘법‘이라든가 ‘공공‘이라는 것은 ‘공동체적 선‘을 위해 존재하기보다 지배층의 이익이 위협당할 때 그 위험물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전락한다. 따라서 이런 사회의 시민은 법을 준수하는 것이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법은 지키라고있는 것이 아니라 빠져 나가기 위해 있는 그물망일 뿐이다. - P112

곧 국가 공동체나 그 외 가족 단위를 넘어서는 공공적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진 사람들이 가족주의적 이익에 눈이 멀어 버릴 때이다. 혈연 중심적 가족주의는 산업 사회의 하나의 구성원리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총괄하는 원리가 될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많은 모순과 부조리와 부패는 이 점에서 혼돈을 일으키고있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근대화 과정에서도 개인주의화하지않고 집단적 원리를 지녀 왔음을 다행스럽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신보수주의적 경향이 강해지면서 그 수가 더 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을 보자. 우리 사회가 집단주의 사회인가? ‘피난민‘과 ‘거간꾼‘들이 주도해 간 근대사와 70년대 이후 더욱 박차를 가한 ‘생산력 위주‘의 경제 발전이 도달한 곳은 실은 극도로 파편화된 개인들이 득실거리는 사회가 아닌가? 우리가 말하는 개인주의가 서양에서말하는 개인주의와는 다른, 개인의 파편화 내지 ‘흐트러진 개인‘들을 지칭하듯, 우리가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집단주의 역시 사회학 개론서에서 읽은 그런 공동체와는 다른 것 아닐까? - P116

극도로 파편화된 개인들이 가족 단위로 ‘똘똘‘ 뭉쳐서 제각각 살길을 찾아 살아가는 것을 집단주의라 부르겠다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다. 또 논리가 부족할 때 언론인과 정치가들이 걸핏하면 입에 담는 ‘국민적 정서‘라는 단어에서, 80년대 ‘운동권‘ 집단에서중요하게 여겼던 ‘의리‘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뒤르껭이 말하는
‘기계적 결속‘의 사회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의 집단은배타성과 획일성, 그리고 감정적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봉건적 공동체‘도, ‘근대적 공동체‘도 아닌 집단이다.
이때의 집단은 ‘한통속‘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라는 테두리를두껍고 단단하게 치고 마치 우리 단독 주택의 담처럼 높게그 안에 사는 사람들끼리만 서로를 귀엽게 봐주는 원리이다. 그 집단을 지배하는 감수성은 ‘내 품‘에 들어왔으니까 어쩔 수 없이 보아주고, 미워도 받아들이고 참아 주는 감수성이다. 그 집단의 언어는 배타적이고 감정적이다. 떼거리를 쓰면 통하고, 억지를 부리면이긴다.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그래서 스스 - P116

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의 언어를 조율해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사 소통 회로는 늘 일방적이다. 이러한 일방통행적 의사 소통 구도에서는 물론 힘있는 자가 이기게 되어 있다.
가족의 언어는 아주 강력하게 우리의 일상적 삶을 지배해 왔으며, 그 언어를 견제할 다른 언어가 미약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그 언어와 감수성은 공적인 영역에까지 침투하여 가족 단위를 넘어선 관계에 지배적 효과를 낸다. 사실상 우리 사회는 서구처럼 ‘도구적 합리화‘가 지나쳐서 생활 세계가 식민화된 사회가 아니다. 우리의 근대사는 ‘합리성‘이 빠진 ‘도구화‘의 근대사였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단주의만이 활개친 역사였다. 그런 수단주의적 시대에 살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활기차게‘ 살아온 것은 바로이 배타적인 가족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더 이상의 ‘도구화‘도, 더 이상의 ‘더러운 정‘도 참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P117

원리의 실천과 일제 시대 민족주의자들이 더듬던 언어를 다시 꺼내.
봐야 할지 모르겠다. 근대적 노동관은 어떤 것이며, 신분제는 왜 타파되어야 하는가? 근대적 사회로의 이행을 어렵게 하는 주술적 사고란 무엇이며 농경적 공동체가 깨진 상태에서, 도시화된 사회에서개인은 어떻게 일하고 먹고 또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가? 시민적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근대 사회에서의 가족은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는가?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서, 또한 우리는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세계 규모의 자본주의 시장은 점점 더 확대되고 수천 개의 위성/유선 텔레비전 채널이 시간과 공간, 언어와 역사, 그리고 현존하는 매체의 경계를 허물며 온갖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 기존의 경제와 문화와 정치 사이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우리 것‘과 ‘그들의 것‘을구분해 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서 혼성 모방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완전한 자주 독립의 상태라는 것을 상정하는 것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써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아니라면 적절한 의존의 상태라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적절한 ‘열림과 닫힘‘의묘를 살린 상태란 또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 P125

400년 전 세계 전 지역에 물건을 운반할 항구를 만들고 철도를 깔았듯이 지금 그들은 금융망과 정보망을 앞장서서 깔고 있다.
위성 방송을 주도하고 있으며 금융 관리도 여전히 그들 손에 들어있다. 문화적 원리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콜럼부스의 후예답게 그들은 낯선 곳을 그냥 두지 못한다. 개척자와 탐험가의 후예답게, 발명가들의 후예답게, 탄광을 세우고 철도를 깐 목수들의 후예답게 그들은 원활한 자본의 유통과 정보 교류망을 깔기 위한 새 지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유색 인종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콜럼부스를 만들어 낸 그들 문화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세계의 주도적 원리는 아직도 서구가 주도해 온 근대적 원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달라질 수 있으며 달라져야 한다는 사람들이 동서양 모두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달라졌다. - P126

파시즘이 대두하던 당시 아랍계이주 노동자와 게르만계 노동자는 왜 그렇게 철천지 원수처럼 서로를 노려보며 죽여야 했을까? 국내 생산직 노동자와 방글라데쉬에서 온 이민 노동자 사이에는 아직도 공통의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지않은 것은 왤까?
우리는 그 동안 자신을 이미 규정된 기존의 범주 안에서만 보았고, 자신이 가진 것에 악착스럽게 매달려 왔다. 조금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또한 못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확인해 왔다. 남자란 것에 매달려 여자란 존재를 무시해 왔고 대학을 간 것에 매달려 대학을 못간 사람을 무시해 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와해 왔다. 우리는 늘상 이상적 ‘주체‘에 비해 ‘결핍‘ 된 존재로서의 자신을 보아왔고, 그 상대적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더욱 나쁜 상황의 사람들을 눌러왔다.
‘중심‘에 의해 규정된 자기 정체성의 허구를 알게 된 소수민식민지 주민, 백인주의 사회의 흑인,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 국가중심주의 사회의 이주 노동자, 연장자 지배 사회의 청년 등 - 들은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겠다고 나설 것이고, 이런 와중에서 ‘중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될 것이다.
- P128

‘중심‘에 의해 규정된 자기 정체성의 허구를 알게 된 소수민ㅡ식민지 주민, 백인주의 사회의 흑인,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 국가중심주의 사회의 이주 노동자, 연장자 지배 사회의 청년 등 ㅡ 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겠다고 나설 것이고, 이런 와중에서 ‘중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기존의 범주에 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규정해 갈 준비를 해야 한다. 다시 한국민으로 돌아오더라도 한국의 범주를 일단 떠나서 자신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자. 한국은 내게 무엇이며, 중산층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가족은 또 내게 무엇인가? 우리는 왜 그 범주에 집착해 왔는가? 지금 말하고 있는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그때 여러 개의 ‘나‘, 여러 개의 ‘우리‘가 있지 않은가? 각자 선 자리를 돌아보자. 그리고 기존의 틀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일을 그치고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세상에 맞는 정체성을 찾아내 가보자. 나는 남한에 사는 ‘국민‘이며, ‘민족주의자‘이며, ‘중산층‘이며, ‘엘리트‘로 살아 왔다. 또한 나는 ‘여성‘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언어를 잃어 온 ‘식민지 주민‘으로서 살아 왔 - P128

다. 또한 나는 나 자신을 ‘지구상의 위기를 염려하는 세계의 양심있는 주민‘으로 규정짓고 싶어하고, 내가 살고 있는 ‘신촌을 가꾸는지역 주민‘으로서의 존재를 강조하고 싶어한다.
대안적 근대성을 추구하는 마당에서 우리는 ‘결핍‘으로서의 정체성 속에 갇히기보다는 새로운 문화/관계 / 공간을 만들어 가는
‘개성‘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자신이 선 자리, 주변이자 경계점인 그곳을 창조적 지점으로 삼아 간다. 더 이상 자신을 주어진 체제 속의 이분법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다양한 사회 모순이 자신의 일상적 삶 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면서 이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알아 간다. ‘주체‘는 매우 전략적이고 유동적인 것이다.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곧 정치적인 행위이며 사회 운동이다. - P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