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참, 좋. 다.
잘 만들었다.
잘 만든 책을 만나서... 책장을 넘기는 내내
행복해졌다.
오래, 자주 볼 책을 만났다.

사울 레이터 재단은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진실이란, 사울이 슬라이드 하나하나의 존재가치를 믿었다는 것이다. 그는 종이 위에 형태와 선이인화되어야만 가치가 생긴다고 보지 않았다. 사울은언제나 모든 슬라이드를 신중히 살폈으므로, 우리도그렇게 했다. 사울이 원했을 방향을 고민하며 편집작업에 몰두했다. ‘레이터 스타일‘의 상징이 된 사진들을떠올리며 사울의 고유한 미감이 드러나는 사진들을주로 선별했지만, 특이하고 급진적이며 위트 넘치는그의 실험 정신을 따라 의외의 사진들도 추렸다.
우리는 몇몇 특별 손님을 스튜디오로 초대해사울의 사진을 영사해 보여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그의 사진을 체험하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떴다.
환등기를 통해 보는 사진은 인화된 사진을 감상하는것과는 사뭇 다른 색다르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이책에 실린 76장의 사진은 사울의 시적인 감각을 여실히 증명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그저 그 사진들을 발견했을 뿐이다 - P16

레이터는 뉴욕 로몽 에디션스의 대표 필리프
‘로봇에게 인화를 의뢰했다. 로몽은 2014년 레이터추모 행사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몸이 살짝 굽은 사람하나가 어깨에 카메라를 둘러 메고 얼굴에는 장난기어린 웃음을 띤 채 조용히 스튜디오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시바크롬 필름을 인화하겠다고 했지요. 그는 별것 아닌 일처럼 말했지만, 거장의 필름을 인화지에 옮기게 되었기에 나는 커다란 희열을 느꼈습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라앉은 색채와 그윽함을지닌 사진들이었어요. 강렬한 독창성, 추상과 구상의 상호작용, 여운과 반향, 뉴욕 거리의 일상적 분위기와 날씨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파편적이고 기발한 구성 속에서 색들이 서로 대화하고, 면과 면이 교차하고, 그러면서도 슬라이드 하나하나가 애쓰지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죠. 이 모든 것은 분명히화가의 시선으로 포착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관찰력이 유달리 뛰어난 산책자가 느긋하게 돌아다니던 와중에 즉흥적으로 발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 P71

얼리 컬러의 성공은 레이터의 삶을 단숨에 바꿔놓았다. 수십 년간 불안정했던 수입도 안정을 찾았다.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에서는 레이터의 작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1996년부터 2013년까지 이 갤러리에서 레이터를 담당했던 사울레이터 재단 대표 마깃 어브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울과 함께 일했던 시절에 그는 대체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일년에 팔리는 작품 수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니, 정말로 미미한 수준이었죠. 전시회가 열리면 신문에 기사가 실렸고 호평이들려왔지만, 장기적으로 이렇다 할 보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책이 나오고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그의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컬러 사진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작가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한순간에 인정받는 모습을 보는 건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 P74

그의 사진에는 ‘불일치‘한 매력이 도사리고 있다. 클래식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옛날 자동차, 미드센추리패션 뿌연 색감은 지나간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시간을 초월한 어떤 순간, 먼 미래의 한순간을 상상하게 한다. 2002년 유대인 박물관 강연에서 레이터는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 지금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머나먼 곳에서 온 것처럼 낯설어 보일 겁니다. 따라서, 참 재미있게도, 시간은 사진작가의 편입니다." - P74

마킷과 나는 2020년 1월 9일 도쿄 분카무라미술관에서 열린 <영원히 사울 레이터> 전시회 개막전에 참석해 전시를 감상했다. 관람객들이 슬라이드를 보는 모습 또한 지켜보았다. 마깃이 책 도입부에서 고백했듯이, 사울의 사후에 그의 사진을 발굴해 세상에 선보인다는 것에 대해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사진들이 모든 의심을 잠재울 만큼 강력하며, 앞서 발표된 초기 작품과 궤를 같이한다고 믿었다. 아울러 레이터 아카이브의 관리인으로서 그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 특권이자 임무라고 생각했다. 사울은 무언가를 미리 계획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에 유산에 대해서는 넌지시 언급하기도 했는데, 2008년 슈타이들에서 출간한 책 사울 레이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내 아카이브 탐사를 후원하고, 최고의 사진들을 마저 편집해줄 사람이 필요할 겁니다."
- P122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회고전 <영원히 사울레이터는 계획보다 훨씬 이른 2020년 2월에 막을내렸다. 마킷과 나는 고향인 미국 북동부에서 전 세계와마찬가지로 길고도 당혹스러운 휴지기를 견뎌야 했다.
마침내 우울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손을건넨 것은 슬라이드 프로젝트였다. 지금 여러분이 들고있는 이 책을 위해 열심히 작업에 매진하면서, 우리는충만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사울의 작품을 아끼는 열렬한 팬으로서 그의 사진을 실컷, 느긋하게 감상했다.
일상의 평범함을 포착한 그의 사진을 통해 아름다움은다른 곳이 아닌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얻기도 했다.
자신이 살던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며 최고의 작품을남긴 사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에요. 아무 데도 안 가고도 내가 해낸 일을 봐요!" 달라진 세상에서 마깃과 나는 더는 새로운 영감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이제 - P122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거닐던 사울을 추억하며 기쁨에 잠긴다. 그의 사진 속에서 영원한 세상의 한조각으로 남은 익명의 영혼들과 그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이들이 미처 몰랐을 사울의 모습을 상상하며.
다른 사람은 좀처럼 보지 못하는 초월적이고 어쩌면 덧없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준 사울에게 커다란 감사를 느낀다. 이 책을 통해 수십 년간 깊이 묻혀 있던 76장의 보물 같은 사진을 세상과 나누게 되어 무척이나 기쁘다.
- P122

사울레이터

1923년 피츠버그의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랍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받았지만 1946년 화가가 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뉴욕에 정착했다. 이후 30년가까이 패션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며 <하퍼스 바자》, 《엘르》, 《에스콰이어》 등에사진을 게재했다. 1940년대 말부터 컬러 사진을 찍었으며, 그가 살던 맨해튼 거리와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필름에 담았다. 2006년 첫 사진집 「얼리 컬러 (Steidl)』가출간되며 그의 사진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다채로운 색감을 지닌 그의 사진들은현재 ‘컬러 사진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마깃 어브


사울 레이터 재단의 설립자이자 대표, 1996년부터 사울 레이터가 사망한 2013년까지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에서 그를 담당했고 레이터를 도와 아카이브를정리했다. 슈타이들에서 출간된 「얼리 컬러와 사울레이터: 나의 방에서Saul Leiter: Inmy room』 등 레이터의 사진집을 도맡아 작업하기도 했다. 2013년 발표된 다큐멘터리<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를 공동 제작했다. 2020년 도쿄 분카무라미술관에서 열린 <영원히 사울 레이터> 전시회 기획을 도왔다. 남편 마이클 파릴로와함께 레이터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관리하고 있다. 아카이브는 레이터가 생전에머물렀던 뉴욕 이스트빌리지 스튜디오에 마련되었다.

마이클 파릴로


사울 레이터 재단의 부이사장, 2015년 재단에 합류했으며, 20년 넘게 편집자이자음악 및 라이프스타일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영원히 사울레이터(小学館), 사울레이터의 모든 것(靑舍), 『여행하는 눈 뉴욕Travel Eye: New York』(Louis Vuitton), 사울레이터: 나의 방에서」 등 레이터의 책들을 작업했다. 2016년 발표된 단편영화 <보는것은 등한시된 노력이다. 사울 레이터 재단Seeing Is a Neglected Enterprisez The Saul LeiterFoundation>의 총제작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마깃 어브와 함께 레이터 작품의 디지털 카탈로그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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