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를 위한 비명(碑銘)


세상의 두 문(門)이
열린 채 있다.
네가 어스름 속에서
열어 두고 가 버린 문.
그 문이 덜컥덜컥 딛히는 소리를 들으며
우린 어렴풋한 것을 나른다.
초록빛을 네 영원 속으로 나른다.

1953년 10월



프랑수아를 위한 비명: 프랑수아는 첼란의 첫아들 이름이다. 첼란이 날짜를 기입한 시는 이 시가 유일하다.

열쇠를 번갈아가며


열쇠를 번갈아가며
너는 집을 연다. 그 안에서는
침묵으로 은폐된 것의 눈(雪)이 휘날리고 있다.
네게서, 눈(眼)에서 입에서 혹은 귀에서
솟는 피에 따라
네 열쇠가 바뀐다.

네 열쇠가 바뀌면 말이 바뀐다.
눈송이와 더불어 휘날려도 좋은 말.
너를 앞으로 몰아치는 바람에 따라
그 말 주위에 눈이 뭉친다.

돌 언덕


내 곁에 너는 살고 있다. 나같이
움푹 꺼진 어둠의 뺨속
돌 하나로,

오, 이 돌 언덕, 사랑아,
우리가 쉼 없이 구르는 곳,
돌인 우리가,
얕은 물줄기에서 물줄기로,
한 번 구를 때마다 더 둥글게
더 비슷하게. 더 낯설게.

오 이 취한 눈,
여기서 우리처럼 길 잃고 두리번거리며
우리를 이따금씩
놀라며 하나로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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