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시렸다. 게다가 저린 다리를 조금이나마 움직일라치면발 아래 돌 틈새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새어나오곤 했다. 그러나사실 신음은 그의 내부에서 일고 있었다. 그는 큰길이 끝나는 지점, 즉 경사지 뒤쪽에 매복을 하고 있었다. 그토록 장시간을 부동자세로 있어보긴 난생처음이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아니, 그보다는 바짝 경계심이 들었기 때문에, 그는 소총을 뺨에 대고 전방을 겨누었다. 곧 날이 저물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슴푸레한 빛때문에 소총의 가늠쇠조차 더이상 분간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 P7
그날 늦게 소(小)휴전이 끝나기 몇 시간 전에, 크리예키크 가가 대(大)휴전에 동의했다. 마을의 원로 중 한 명이 베리샤 가의집으로 와서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는 그조르그가 이를 기회삼아 그릇되게 행동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원로 대표가 떠나자, 그조르그는 매우 낙담하여 집 안 구석에처박혀 있었다. 앞으로 삼십 일간은 아무런 위험 없이 지낼 수 있다. 그러나 그후로는 죽음이 사방에서 그를 노릴 것이다. 이제 그는 박쥐처럼 태양과 밝은 달과 횃불을 피해 어둠 속에서만 돌아다닐 수 있을 터였다. 삼십 일간이라・・・・・… 그는 혼잣말을 했다. 하여간 그는 강도처럼 어둠을 틈타 벽에 몸을 바싹 붙이고 다녀야 할 것이다. 저 아래, 한길의 경사지에서 쏘았던 한 발의 총알이 돌연 그의 삶을 두동강 내버린 것이다. 한편에는 이때까지 살아온 이십육 년간의삶이 있고, 반대편에는 그날, 3월 17일부터 시작된 삼십 일이 놓여 있었다. 그 다음에는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예측할 수조차 없는 박쥐 같은 삶이 찾아오리라. - P26
곧 사월이 오리라. 아니, 오직 사월의 첫 보름만이 찾아오리라. 그조르그는 가슴의 왼쪽 한편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월은 이미 그에게 시퍼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랬다. 그에게 사월은 늘 그런 느낌을 안겨주었다. 사월은 뭔가 마무리되지 않는 달이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사월의 사랑은..... 그의 마무리되지 못할 사월은…… 어쨌든 더 잘됐지 뭐. 그는 무엇이 더 낫다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형을 위해 복수를 한 것이 잘됐다는 것인지, 일 년 중 이 시기에 피를 회수한 것이 그렇다는 것인지. - P27
그에게 삼십 일간의 휴전이 주어진 것은 불과 삼십분 전이었는데, 그는 벌써 그의 삶이 두동강 났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었다. 심지어 그는 그의 삶이 원래부터 그렇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있었다는 생각마저 갖게 되었다. 지루할 만큼 더디게 흘러간 스물여섯 번의 삼월과 스물여섯 번의 사월, 또 그만큼의 겨울과 여름으로 이루어진 스물여섯 해라는 한 토막과, 절반의 삼월과 절반의 사월을 지닌, 서리 반짝이는 두 개의 부러진 가지 같은, 눈사태만큼이나 격정적이고 맹렬한 넉 주간의 짧디짧은 나머지 한토막.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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