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호박 조각 하나가 국물과 함께 입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호박은 제대로 익지도 않았고 간도 덜 배어 있었다. 호박 조각뿐이아니었다. 된장찌개 국물은 뜨거워서 쉽게 입을 대기도 어려운데 국물 속의 건더기는 어느 것 하나 간이 제대로 배어 있지 않았다.
나는 건성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간이 덜 배어 맛이 없는 된장찌개, 일없이 뜨겁기만 한 된장찌개를 후후 불어서 억지로 식혀 가며 오로지 저녁 야근을 위해 빈배를 조금씩 채워 나갔다.
어쩌면 요즘 내 사는 꼴이 이 뜨거운 된장찌개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겉으론 바쁜 척 열을 내며 살지만 기실은 뜨거운 국물속의 간이 배지 않은 건더기 같은 생활, 또는 일상. - P14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신문 속의 그림 ‘아기업은 소녀‘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이미 세상을 뜬 지오래인 어떤 화가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기사와 함께 실린 그림이었다.
내 지나온 삶의 내력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볼 때, 나는 그림과는 애당초 사돈네팔촌만큼보다도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그 그림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더더구나 그림을 그리기는커녕 그림에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왜그 그림에 자꾸 마음이 끌리는지 모르겠다.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그 이유를 알려고 애를썼다. 하지만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그 그림에 대한 생각을 애써 지웠다. 오늘 저녁까지 마쳐 놓아야 할 일들이 내 책상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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