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계급, 인종 혹은 식민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얽혀 있는 방식은선의로 풀어갈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문제만은 아니다. 페미니스트의 국제적 연대를 위한 현실적 토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라면 성,
인종, 계급의 구분선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좀 더 강한 ‘자매애‘나 국제적 연대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 P59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측면의 구분에 대해, 새로운 페미니스트동에서는 다양한 경향으로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는 시도가 계속 되어 왔다. 그래서 어떤 경향은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또 어떤 이들은 ‘사회주의 페미니즘‘ 혹은 ‘맑스주의자 페미니즘‘, 또 다른 이들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 불렸다. 대변자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서는 부르주아 페미니즘‘으로 불리기도 했다. 내가 볼 때 이렇게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페미니즘이 정말 무엇이고, 누구를 대변하며, 그 기본원칙, 사회에 대한 분석과 전략 등이 무엇인지를 좀 더 잘 이해하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이런 꼬리표에 관심을 두는 이들은 이 운동을 주로 밖에서 바라보면서 통속적인 기존의 범주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 P59

이는 특히 구조적 기능주의와 역할이론에서 잘 볼 수 있다. 역할이론이 자본주의 아래서 가부장적 핵가족을 온존시키기 위한 이론적틀이라고 하는 비판 없이, 많은 페미니스트가 역할이론을 강조하고있다. 성역할의 정형화를 강조하면서 성차별적이지 않은 사회화를 통해 이런 성역할의 전형을 변화시켜 ‘여성문제‘를 풀어가려는 것은 구조적기능주의자의 분석을 강화해주는 것이다. 이는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더 깊은 뿌리를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든다. 남녀 문제를 성역할의 정형화와 사회화의 문제로 규정함으로서 이는 곧 이데올로기적차원으로 넘어가게 되고, 문화적 문제가 된다. 이 문제의 구조적 뿌리는 여전히 안 보이는 것으로 남게 되고, 자본축적과의 관계 역시 여전히 가려져 있게 된다. - P62

기존의 사회이론 혹은 페러다임에 ‘여성문제‘를 ‘추가하려는 이런모든 시도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반란의 진정한 역사적 추진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이 페미니스트 반란은 자본주의가 가장 최근의 - P62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징후로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체제로서의 가부장제혹은 가부장적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모든 이론은 ‘문명화된 사회의 패러다임 내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이런 사회 모델을 기필코 극복해야 하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페미니즘이 이런 이론들에 그저 덧붙거나, 이론들 속의 어느 망각된 지점을 찾아 맞춰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이런 이론의
‘맹점들‘을 채우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우리의 문제, 우리의 분석은 이런 사회 모델 전체를 문제로 삼게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는 적당한 대안 이론들을 아직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P63

그러나 우리의 비평은 그런 빈틈을 먼저 다루기 시작했고, 점점 더깊이 파헤쳐 나가서, 우리가 ‘우리의 문제, 말하자면,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남녀 관계가 ‘자연‘이나 식민지‘와 같은 ‘숨겨진 대륙‘ 같은 것과체계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까지 와 있다. 점차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나고 있다. 여성이 어쩌다가 ‘잊혀지고‘, ‘무시되고, ‘차별받는 것이 아니며, 남성만큼 기회를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아니고, 몇몇 소수집단들 중 하나일 뿐인 것이 아니며, 다른 보편적이론이나 정책이 ‘아직‘ 수용하지 못한 ‘특수한‘ 것이 아니다. 무엇이 보편인가에 대한 혹은 무엇이 ‘특수‘인가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에서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각 사회에서 생명을 생산해내는 실제적 근원인여성이 어떻게 ‘특수성‘의 범주로 규정될 수 있는가? 따라서 이들 모든이론 속에 내재한 보편적 타당성에 대한 주장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많은 페미니스트가 아직 이 점을 분명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 P63

대부분의 여성은 희생자를 돕거나 법적 개혁을 가져오는 일에 주력하게 되지만,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른바 문명화된 사회라고 하는 허물을 벗기고 감추어진 잔인하고 폭력적인 근간을 드러나게 해준다. 페미니스트 혁명의 깊이와 폭을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면, 많은 여성이 주저하면서 자신이 경험해 온 것을 모른 체한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가부장제를 타파해야 하는 엄청난 일 앞에서 완전히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제기된 역사적 문제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이 문제들은 역사의 의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합당한 답변을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인간적 본성‘을 해치는 것이아니라 한층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재건하는 데 일조하도록 해야 한다. - P64

그러나 이런 퇴행 전략은 좀 더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들에 대한정치적 선언일 뿐이다. 서구 경제들은 이를 보통 ‘노동의 유연화‘라고불러 왔다. 여성이 이런 전략의 직접적인 표적이 된다. 생산과정과 서비스직의 합리화, 컴퓨터화, 자동화라는 새로운 전략으로 인해 여성은 ‘공식 부문‘에 있는 임금이 높고, 자격을 갖춘 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안정된 직장에서 쫓겨나는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따뜻한 난로가 있는 가정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여성이 쫓겨 들어간 곳은 별 자격 없이도 접근할 수 있는 낮은 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의 세계였다.  - P66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인간의 성과 섹슈얼리티가 순전히 자연적이고 생물학적 문제였던 적은 결코 없었다. 여성의 혹은 남성의 몸이 순전히 생물학적 문제였던 적도 없었다(2장 참조).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사회적이고 역사적이었다. 인간 생리는 모든 역사를 통해 다른 인류와 그리고 외부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어 왔다. 따라서 성도 젠더만큼이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범주이다. - P81

그러나 성과 젠더를 생물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함으로서, 사람들 사이의 성적 차이를 해부학적 문제로 혹은 ‘물질적 문제‘로 다루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다시 문을 열어주게되었다. 물질로서의 성은 과학자의 대상이 되어, 과학자의 의도에 따라 분해되고 분석되고 조작되며 재구성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정신적 가치가 성에서 분리되어 젠더의 범주에 갇히게 되면, 지금까지 성과 섹슈얼리티의 영역을 둘러싸고 있었던 금기들이 쉽게 벗겨질 수 있다. 이 영역은 생물공학과 재생산 기술, 유전공학과 우생학,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사냥터가 될 수 있다 - P81

자신의 몸과의 관계, 자신의 몸에 대한 무지, 피임과 관련한 문제 등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가장 친밀하고 개인적이며 개별화된 경험들을 사회화하고 그럼으로써 정치화하기 시작했다. ‘몸의 정치‘는 서구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저개발국가에서도 신여성운동을 촉발하는영역이 되고 있다. 이렇게 남녀관계의 사적이고 분리된 영역을 정치적영역으로 규정함으로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을만들어냄으로서, 부르주아 사회의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에 대한 구조적 구분에 도전했다. 이는 동시에 통상적인 ‘정치개념에 대한 비판을의미하기도 했다(Millet, 1970). ‘몸의 정치‘는 페미니스트가 의도적이고전략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아니다. ‘몸의 정치‘는 우리 사회에서 남녀관계가 기본적으로 폭력적이고 억압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정한 이슈에 대해 서구 사회의 여성 대중이 분노하고 저항하면서 성장해 나온 것이다.  - P83

페미니스트운동이 성차별적 폭력의 다양한 징후들을놓고 진행될수록, 여성은 모든 민주주의 헌법이 선언하고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 중 일부, 특히 신체가 해를 입지 않을 불가침의 권리가 여성에게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모든여성은 이런 남성 폭력의 잠재적 피해자라고 하는 암울한 사실과 힘과 교양을 갖춘 근대 민주주의 국가가 여성의 이런 기본권들을 보장할수 없다는 막막한 현실을 접하면서 많은 페미니스트는 여성해방을위한 투쟁에서 국가가 동맹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품게 된다.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근대 민주주의의 문명화된‘ 사회에서 노골적인 폭력이 사라졌다고 하는 모든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사회에서 자주 찬미는 ‘평화‘가 사실은 여성에대한 일상적이고 직간접적인 공격에 기초한 것임을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깨닫기 시작했다. 독일 평화운동에서 페미니스트는 이런 슬로건을만들었다. ‘가부장제의 평화가 여성에게는 전쟁이다‘ - P87

몸의 정치 차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여성은 말하자면 초기 여성운동이 희망했던 것과는 반대되는교훈을 배웠다. 공공영역에 여성이 참여하고, 참정권을 얻고,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폭력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는 가부장적 남녀관계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차별적 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운동이 진행되면서 개별 남성의 명백한 ‘사적‘ 침해와 가족, 경제, 교육, 법, 국가, 대중매체, 정치 등 ‘문명사회‘의 중심 제도와 기둥들‘ 사이의 조직적인 관련에 대한 여성의 인식도 높아졌다.  - P87

‘일인칭 정치‘라는 개념, 대의정치의 거부, ‘사적‘ 영역과 공공 영역을 분리하는 것에 대한 거부, 사적 영역의 정치화 등은 나중에서독에서 시민발의운동, 대안운동, 생태운동, ‘기초-민주주의‘를 주된정치 원칙의 하나로 삼았던 녹색당과 같은 여러 신사회운동이 계승했다. 반관료주의, 서열을 따지지 않는 활동, 중앙 집중의 배제와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활동의 강조 등 페미니스트운동의 여러 조직 원리들은오늘날 유럽과 미국의 여타 사회운동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다.
신페미니스트운동은 통일된 프로그램과 완성도 높은 이론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이 항상 관계하고 있는 사적 영역과 자신의 몸과 관련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남성 지배에맞서는 반란을 시작하면서 이는 고유의 역동성과 힘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여성운동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대다수 사람들이 처음 예견했던 것보다 훨씬 사회 구조 깊숙이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정치운동으로서 페미니스트운동은 오늘날 다른 어느 사회운동보다도 더 광범한 반향을 낳는다. - P95

페미니스트가 이렇게 식민지를 만들어내는 구분을 근본적으로 넘어설 때에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한 것은 지극히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유명한 자본 임금노동관계와 동일하지 않으며, 자본주의는 계속 팽창하는 성장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식민지 범주들, 특히 여성, 다른 민중, 그리고 자연과같은 식민지 범주를 필요로 한다고 하는 점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전 세계 페미니스트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창출한,
식민지를 만들어내는 모든 구분, 특히 노동의 성별 구분과 국제적 구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구분의 실상을 밝히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민지적 구분에 대한 강조는 다른 관점에서도 꼭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페미니스트는 비판적 과학자와 생태주의자와 함께 서구 과학과 기술의 이분법적이고 파괴적인 패러다임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 P104

뉴에이지 페미니스트와 생태페미니스트를 비롯한 여러 페미니스트가 자신들에게 ‘동양의 정신‘과 ‘치료‘ 를 향유할 수 있는 사치를 제공하면서도 착취가 이루어지는 진짜 식민지에 대해 눈과 마음을 여는 것이 꼭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총체적패러다임이 새로운 정신주의나 의식운동에 불과하게 된다면, 이 패러다임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착취의 세계적 체제에 대항하여 이를 분명히 규정하고 투쟁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본주의의 파괴적 생산의 다음 단계를 정당화시켜주는 선도적 운동으로 정리되고 말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자동차나 냉장고와 같은 수준 낮은 물질 상품들을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종교, 치료, 우정, 영성 등과또 폭력과 전쟁 상품 등에 집중할 것이며, 물론 그 과정에서 ‘뉴에이지‘ 기술들을 충분히 활용하게 될 것이다. - P105

나는 가부장제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부장제‘라는 개념은 신페미니스트운동이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는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관계들을 총체적으로, 그리고 체제적 성격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용어를 찾는 과정에서재발견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부장제‘라는 용어는 여성의 착취와 억압의 역사적·사회적 측면을 나타내준다. 그러나 생물학적 해석의 여지는 ‘남성 지배‘라는 개념과 비교할 때, 덜 열려 있다. 역사적으로 가부장 체제들은 특정한 시대, 특정한 지역의 특정한 사람들에의해 발전되었다. 가부장 체제들은 보편적으로, 시대와 상관없이 항상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 P109

독립성이 여성 속에서 인간적 본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나 독립성은 위에서 서술한 의미로만 사용되지는 않는다. 독립성은 여성이 혼성의 혹은 남성위주의 조직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와서, 자신만의 분석과 프로그램과 방법을 통해 고유의 독자적인 조직을 세우려고 주장하면서 발전시킨 투쟁 개념이기도 하다. 독립 조직은 알다시피, 모든 ‘대중운동‘에 대해 조직, 이데올로기, 프로그램에서 항상 우위를 주장해왔던 전통적인 좌파 조직에 맞서면서 특히 강조되었다. 이런의미에서 페미니스트의 독립성에 대한 주장은 여성문제와 여성운동을 어떤 다른 외관상 좀 더 보편적인 주제나 운동 아래 수렴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여성의 독립적인 조직은 독립된 힘의기초일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운동의 질적으로 다른 특질과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 P115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운동 내에서도, 다양한 하위 운동들, 예를 들면 레즈비언운동 등이 등장했다. 또한 제3세계 페미니스트운동이 발전하면서 이런 원칙이 강조되기도 했다. 여성운동에는 중앙도 없고, 서열도 없고, 공식적이고 통합된이데올로기도 없고, 공식 지도부도 없다. 따라서 다양한 자발적 활동과집단의 독립성은 운동 내에서 진정으로 인도주의적인 관점을 견지하면서, 역동성과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원칙이다. - P116

육체는 운명anatomy is destiny이라는 프로이트의 말에서 나타난 것처럼, 생물학적 결정론은 음으로 양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뿌리 깊은 방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을 위해 싸우는 여성은 생물학적 결정론을 거부함에도 불구하고남녀사이의 불평등하고 서열적이며 착취적인 관계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요인들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는 분석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분석의 도구인 기본 개념과 정의가 생물학적 결정론의 영향을 받았기때문이거나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 P120

자연, 노동, 성별노동분업, 혹은 가족, 생산성 등은 우리 분석에서 중심적인 기초 개념들이다. 그런데 만약 이들 속에 내재한 이데올로기적경향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이들 개념을 사용한다면, 문제가 분명해지기보다 더욱 모호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자연이라는 개념에서 이를 잘 볼 수 있다.
자연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불평등이나 착취적 관계들을 타고난 - P120

것, 혹은 사회적 변화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할 때 너무 자주사용되어 왔다. 여성은 이 용어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설명하는데 이용될 때 특히 의심해야 한다. 삶의 생산과 재생산에서 여성의 몫은 흔히 여성의 생물학적 혹은 ‘자연적 기능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여성의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은 여성의 생리활동의 연장선으로 간주된다. 여성의 가사와 육아는 출산했다는 사실과 연결된 것으로, ‘자연‘이여성에게 자궁을 주었다는 사실과 연관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산을포함한 생명을 생산하는 것과 관련한 모든 노동이 인류가 자연과 의식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즉 진정한 인간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자연의 활동으로, 즉 식물과 동물을 의식 없이 생산해내고 이 과정에 대해 통제하지 않는 자연의 활동으로 보인다. 여성이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여성 자체의 자연성까지 포함하여, 자연의활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광범한 영향을 미치고있다. - P121

생물학적으로 오염된 자연에 대한 개념으로 인해 신비화된 것은지배와 착취, (남성)인류의 (여성)자연에 대한 지배관계이다. 이런 지배관계는 위에서 언급한 여성에게 적용된 다른 개념들에도 내재해 있다.
노동 개념을 보자. 여성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생물학적 규정 때문에,
여성의 출산과 육아, 그리고 다른 가사노동들은 노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노동 개념은 자본주의적 조건 아래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성의 생산적 노동,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여성도 그런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는 노동을 하지만,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개념은 보통은 남성 혹은 가부장적 경향과 함께 사용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여성은 전형적으로는 가정주부로, 즉 노동자 - P121

가 아닌 사람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 노동의 수단은, 다시 말해서 노동개념에서 암시적으로 생산을의미하는 신체는 손과 머리이다. 여성의 자궁이나 가슴은 그 범주에끼지 못한다. 따라서 여성과 남성은 자연과의 상호작용에서 다르게 규정된다. 인간의 신체 자체도 진정으로 ‘인간적인‘ 부분(머리와 손)과 자연적‘ 혹은 순전히 ‘동물적‘ 부분(생식기, 자궁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런 구분이 어느 정도는 보편적인 남성의 성차별주의 때문이라고할 수는 없다. 이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결과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수단으로 직접 사용될 수 있고, 혹은 기계와 곧 연결될 수 있는 인체의 부분에만 관심이 있다. - P122

노동 개념에 숨겨져 있는 불균형과 생물학적 편향으로 지적할 수있는 또 다른 예는 광범하게 퍼져있는 성별노동분업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남성과 여성이 다양한 일들을 단순하게 배분하는 것처럼보이지만, 남성의 일은 진실로 인간적인 것(즉, 생각하고, 합리적이며, 계획되고, 생산적인 것 등등)으로 여겨지는 반면에, 여성의 일은 다시금 기본적으로 ‘타고난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은폐하고 있다. 성별노동분업은 그 규정에 따르면,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활동‘ 사이의 구분으로 바꿔 쓸 수 있다. 게다가 이 개념은 남성노동자(즉, ‘인간)과 여성노동자(즉, ‘자연) 사이의 관계가 지배관계, 심지어 착취관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숨기고 있다. 여기서 착취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어느 정도 영구적인 분리와 서열화가 일어났으며, 소비자가 스스로는 생산하지 않으면서, 생산자의 생산품과 용역을 착복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평등한 공동체였다면 생산자가, 세대를 달리해서라도, 결국은 소비자가 되었을 것이다. - P122

마찬가지로 애매한 생물학적 논의가 지배적 힘을 발하는 곳은 가족 개념과 관련한 부분이다. 이 개념이 유럽중심적이고 비역사적 방식으로 일반화되어 사용되면서 핵가족이 남녀관계들을 전체적으로 제도화하는 기본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구조로 제시되었다. 또한 이 개념은 이 제도의 구조가 서열이 있고 불평등한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고있기도 하다. ‘가족 내의 동반자의식 혹은 민주주의‘라는 말은 이 제도의 본색을 가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
‘생물적‘ 혹은 ‘자연적‘ 가족과 같은 개념은 특히 이런 비역사적인가족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이성 간의 성관계와 핏줄을 통한 자녀의 출산을 의무적으로 결합한 것에 기초한 개념이다.
몇 가지 중요한 개념에 내재해있는 생물학적 경향에 대해 이렇게간단히만 살펴보아도 이런 편향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체계적으로드러내는 것이 꼭 필요함을 잘 알 수 있다. 이런 편향들이 불균형하고착취적인 사회적 관계들, 특히 남녀 사이의 관계들을 은폐하고 신비화시키고 있다. - P123

진화론적 사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엥겔스는 이 아주 초기의 시기를 원시시대라고 해서 인간의 실제 역사와 분리시켰다. 엥겔스는 인간의 실제 역사는 문명과 함께 시작된다고 보았다. 역사는 충분히 성숙한 계급과 가부장적 관계와 함께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엥겔스는 인류가 어떻게 원시시대에서 사회의 역사 단계로 뛰어 오르게 되었는지에 답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는 변증법적인 사적 유물론의 방법론을 ‘아직 완전히 역사시대로 들어오지 않은 원시 사회에 대한 연구에 적용하지 않는다. 그는 진화의 법칙이 사유재산과 가족과 국가의 등장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 P130

여성성과 남성성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과정의 산물이다. 역사적 단계 마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다르게 규정되어 왔다. 이런 규정은 각 시대의 주된 생산양식에 기초해 있다. 이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유기적인 차이가,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물을 전유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역사 속에서 여성과 남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질적으로 다른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모계사회에서 여성성은 모든 생산성의 사회적패러다임으로, 생명 생산의 주된 활동 원리로 해석되었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어머니‘는 오늘날의 의미와는좀 다르다. 자본주의적 조건에서 모든 여성은 사회적으로 가정주부로 (모든 남성은 생계부양자로 규정되고, 모성은 이 가정주부 신드롬의 부분이 된다.  - P136

이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만 볼 수 있으며, 사회적 상호작용 혹은 협동을 의미한다. 인간의 몸은 첫 번째 생산수단일 뿐 아니라 첫 번째 생산력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의 몸이 새로운 것을 창출해낼 수 있다는 경험을 하고, 이에 따라 외부와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대상관계는 동물과 다르게 생산적이다. 몸을 생산력으로 전유하면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차이는 광범한 결과들을 낳았다.
여성의 자연에 대한 대상관계, 외부 자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신들 자체까지 포함한 자연에 대해 갖는 대상관계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여성이 자신의 몸 전체를, 즉 손이나 머리만 아니라몸 전체를 통해 생산성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몸을 통해여성은 아이를 생산하고, 이 아이의 첫 번째 음식도 생산한다. - P137

그들은 자신의 몸을 통해 여성과 같은 방식의 생산성을 경험할 수없다. 남성 몸의 생산성은 외부적 수단, 즉 도구의 중재 없이는 드러나지 못한다. 반면에 여성의 생산성은 도구 없이도 드러난다. 남성이 새로운 생명의 생산에 기여하는 것, 이는 항상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기여는 도구를 통해 외부 자연에 작용한 오랜 역사적 과정과 이 과정에 대한 숙고 끝에만 나타나게 된다. 남성이 자신의 자연적 몸에 대해 가진 인식과 자신을 바라보는 인상은 외부 자연과 상호작용하는다양한 역사적 형태와 이런 작업 과정에 사용되는 도구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남성의 인간으로서의 자기 인식, 즉 생산자로서의 인식은기술의 발명과 통제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도구가 없다면, 남자man는 사람MAN이 아니다. - P144

남성의 성기와 남성이 다양한 시대 다양한 생산양식 속에서 발명해 온 도구 사이의 유사성을 연구하는 것은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것이다. 우리 시대 남성이 남근을 스크루드라이버(남성은 여성을 스크루‘라고 한다), ‘망치‘, ‘서류철‘, ‘총‘ 등으로 부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역항 로테르담에서는 남성의 성기를 ‘무역‘이라고 부른다. 이런 용어는 남성이 자연, 여성, 그리고 자신의 몸과 맺는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남성의 마음속에는 노동도구와 노동 과정, 그리고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 인식이 밀접히 연관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 P145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의 기술이 말 그대로 진정한 의미에서 계속 생산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여성은 새로운 것을 생산했다. 한편, 사냥 기술은 생산적이지 않았다. 사냥에 적절한 도구는 다른 생산적 활동에 사용될 수 없었다. 돌도끼는 달랐지만, 활과 화살과창은 기본적으로 파괴를 위한 수단이었다. 이들은 동물을 죽이는 데만 사용되지 않고, 사람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중요성이 있었다.
바로 이런 사냥 도구의 성격이 이후 불평등하고 착취적인 사회적 관계들뿐 아니라 남성의 생산성이 더욱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기를 제공하는 사냥꾼이 공동체의 영양 수준을 높였기 때문에그런 발전이 나온 것은 아니다. - P153

이런 비생산적이고 약탈적인 전유양식은 인간 사이의 모든 착취관계의 역사에서 패러다임이 되었다. 주된 메커니즘은 자율적인 인간 생산자를 타인을 위한 생산의 조건으로 변형시키는 것, 혹은 그들을 타인을 위한 ‘자연 자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런 가부장적 패러다임의 역사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부장제는 지구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독특하게 가부장적이었던 사회들에서 발전했다. 유대인, 아리아인(인도인과 유럽인), 아랍인, 중국인,
그리고 이들 각각의 거대 종교들 속에서 발전했다. 이들 문명들, 특히유대-유럽계 문명의 성장과 보편화는 정복과 전쟁에 기초한 것이다.
유럽이 아프리카의 침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가 약탈적인 유럽인의 침략을 받은 것이다. 이는 또한 원시공산주의, 바르바리 Barbary상부 지역, 봉건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이르는 모든곳의 역사를 단선적이고 보편적인 과정으로 보는 개념은 가부장제에대한 우리의 분석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 P162

그러나 ‘자연화‘ 과정은 식민지 전체와 노동계급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부르주아 여성 또한 자연으로, 자본가 계급의 후계자를 낳고 키우는 이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여성을 ‘야만적‘ 자연의 일부로 보았던 반면에, 부르주아 여성은 ‘길들여진 자연으로 보았다. 부르주아 여성의 섹슈얼리티, 그들의 생산적 자율성만이아니라 생식력은 부르주아 남성에 의해 억압받고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부르주아 여성은 생계를 남성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부르주아 여성이 길들여지고 남편의 소득에 의존하는 가정주부로 변모하는 것은자본주의 아래 성별분업의 모델이 되었다. 이는 여성, 모든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통제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남성의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은 여성의 가정주부화과정과 병행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력이 재생산되는 영역인 가정과 가족은 ‘자연, 사적이고 길들여진 자연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공장은 공적이고 사회적(‘인간적‘)인 생산의 공간이 되었다. - P167

마녀사냥은 여성의 성과 재생산 행위를 통제하는 직접적인 훈련효과를 노린 것이기도 했고, 여성의 생산성보다 남성 생산성의 우월성을 수립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기도 했다. 이 둘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마녀사냥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적 자연의 사악함(악sin은 자연nature과 동의어이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성적으로 통제되지 않고, 만족할 줄 모르며, 언제나 정숙한 남성을 유혹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흥미로운 점은 여성이 아직은 성적으로 수동적인 혹은 심지어 성욕이 없는 존재로, 즉 19~20세기에 간주되었던 것처럼 여겨지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의 섹슈얼한 행위는 정숙한남성, 즉 재산의 상속자인 후손을 식별할 수 있도록 여성을 통제하고싶어 하는 남성에게는 위협적인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자신의 딸과아내의 정숙을 지키는 것은 남성의 의무였다. 여성은 ‘자연‘이고 ‘악‘이기 때문에 여성은 영원히 남성의 보호 아래 있어야 했다. 여성은 영원한 소수자가 되었다. - P169

오직 남성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인이 되고 시민이 될 수 있었다.
자기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기 위해, 남성은 구타나 다른 폭력적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Bauer, 1971). 여성의 사악한본성에 대한 모든 직접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은 여성에게서 다른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기능에 대한 자율성을 앗아가려는 목적과 경제 정치 문화적 영역에서 남성의 헤게모니를 수립하려는 목적에 부합했다.
성적 자율성은 경제적 자율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여성 치료사와 산파를 마녀로 내몰고 비난하면서 남성 의사가 전문직화되었던 사례는 여성 생산 활동에 대한 공격의 의미를 가장 일목요연하게보여준다. - P170

이 ‘문명화 과정‘이 마무리되는 시기에, 여성은 한 남성을 위한 가정주부이거나 자본가를 위한 임금노동자로, 혹은 둘 다로 훈련되었다. 이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에게 사용된 실제적 폭력을 자신에게로 돌리면서 내면화했다. 그들은 이를 자진해서 한 것으로, 사랑으로 규정했다. 자기억압에서 필수적인 이데올로기적 신비화였다(Bock/Duden, 1977). 이런 자기억압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제도적 이데올로기적소품을 교회, 국가, 가족이 제공했다. 여성은 노동과정의 조직(노동현장에서 가정을 분리하는 것), 법, 경제적으로 이른바 ‘부양자‘ 남성에게의존하는 것을 통해 이 제도에 구속되었다. - P170

이런 착취적이고, 쥐어짜내는, 전혀 상호적이지 않은 자연에 대한대상관계는 가장 먼저 남성과 여성, 남성과 자연 사이에서 수립되었고, 자본주의를 포함한 다른 모든 가부장적 생산양식의 모델로 남았다. 자본주의는 이를 가장 정교하고 가장 보편화된 형태로 발전시켰다." 이 모델의 특성은 생산과정과 생산품을 통제하는 이들 자신이 생산자가 아니라, 전유자라는 점이다. 그들의 이른바 생산성은 타자 - 결국은 여성 - 생산자의 존재와 종속을 전제로 한다. 월러스틴이말한 것처럼, ‘.... 잔혹하게도, 노동력을 낳는 이들이 식량을 기르는이들을 부양하고, 이들은 다른 원료를 생산하는 이들을 부양하고, 또이들은 공업 생산에 관련된 이들을 부양한다‘(Wallerstein, 1974:86.
여기서 월러스틴이 빼놓은 것은 이들 모두가, 이 과정 전체를 결국은무기를 통해 통제하고 있는 비생산자들을 부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패러다임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은 비생산자가 다른 이들이 생산한 것을 전유하고 소비(혹은 투자)한다는 사실이다. 사냥꾼- 남성은기본적으로 생산자가 아니라, 기생자이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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