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클루트의 이 훌륭한 책들은 자주 읽히지도 않고 또끝까지 읽히지도 않는 것 같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매력이라면 이것이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느슨하게 묶어놓은거대한 상품더미로, 오래된 자루들이나, 낡은 항해 기구, 엄청난 크기의 양털 가마니, 그리고 루비와 에메랄드의 작은 주머니들이 흩어져 있는 잡동사니 방이자, 하나의 큰잡화상 같다는 사실이다. 이쪽에서 이 꾸러미를 끊임없이풀어보고, 저기 있는 더미에서 몇 개를 뽑아보고, 무언지거대한 세계 지도의 먼지를 털어내 닦고 그러고는 반쯤 어 - P51
둑한 곳에 주저앉아 비단과 가죽과 용연향의 낯선 냄새를맡노라면 밖에서는 엘리자베스 조의 지도에 실리지 않은바다의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뒤죽박죽의 씨앗들, 비단, 일각수의 뿔, 코끼리의 이빨. 양털, 흔해빠진 돌들, 터번식의 모자, 금괴 등의 값을 측정하기 힘든 물건들과 전혀 값이 나가지 않는 잡동사니들은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기에 이어졌던 알려지지 않은 땅으로의 수많은 여행과 교역, 그리고 발견의 결실이었다. 그 원정들은 서쪽 지방에서 온 ‘재주 있는 젊은이들‘을 선원으로 태우고 여왕이 직접 일부 재정 지원을 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프루드의 말에 의하면 그 배들은 현대의 요트보다 크지도 않았다고 한다. 왕궁에서 가까운 그리니치의 강가에 배들이 운집했다. ‘추밀원이 궁정의 창문으로 내다보고 …… 배들은 거기서 군수물자를 하여했으며들의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 닿아 되울리는 것 같았다.‘ - P52
‘나는 때로 내 안에 지옥을 느낀다. 내 가슴에는루시퍼가 안마당을 차지하고 있다. 일군의 악마들이 내 안에서 되살아난다.‘ 이런 고독함 속에는 안내자도 없고 동반자도 없다.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암흑속에 있고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조차 단지 나를 구름 속에 있는 것으로 바라볼 뿐이다.‘ 겉으로는 가장 건전한 인간이고 놀위치의 가장 뛰어난 의사로 존경받는 그이지만일을 할 때면 아주 기이한 생각과 상상이 그와 함께 유희를한다. 그는 죽음을 동경했다. 그는 모든 것을 회의했다. 만일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잠들어 있는 것이고 삶이라는이 발상은 단지 꿈이라면 어떨까? - P64
영문학에는 아주 겁나는 지대들이 있다. 그런 밀림과숲, 그리고 황야 가운데에서도 엘리자베스 조 희곡이 으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를 여기서 살펴보지는 않겠지만) 셰익스피어 Shakespeare가 단연 두드러진다. 그가 살았던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조명을 받아온 셰익스피어, 그의 동시대인들의 눈높이에서 보았을 때 제일 높이 우뚝 서 있는 셰익스피어 말이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보다 조금 뒤떨어지는엘리자베스 시대 작가들, 예컨대 그린Greene이나 데커Dekker, 필Peele, 채프먼 Chapman, 보먼트 Beaumont, 그리고 플레처Fletcher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의 경우도 그 황야로 모험을하는 일은,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질문을 퍼붓고 의구심으로 번민하게 하며 기쁨과 고통으로 즐거웠다 괴로웠다를 - P68
왔다갔다하게 하는 일종의 고난이요 혼란스런 경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과거 시대의 걸작들만을 읽는 경향이 있기에 그런 것인데) 문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행사하는가를, 그것이 얼마나 수동적으로 읽히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우리를 이끌고 우리 마음을 읽어내는가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은 우리의 선입견을비웃고 우리가 당연시해온 원칙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사실상 작품을 읽고 있는 우리를 둘로 갈라 우리로 하여금 심지어 즐기고 있는 와중에도 입장을 포기하거나 고수하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 P69
그녀가 파국을 맞는다는사실 말고는 그녀가 어떻게 거기에 이르게 되는 건지는 알수가 없다. 아무도 그녀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녀는 언제나 열정의 최고조에 달해 있지, 그 열정의 초입에있는 법이 없다. 그녀를 안나 카레니나와 비교해보자. 그러시아 여인은 피와 살, 신경과 기질, 심장과 머리, 몸과정신을 가진 살아 있는 인간이다. 그러나 이 영국 처녀는카드에 그려져 있는 얼굴처럼 평면적이고 조악하다. 깊이도, 폭도 없고, 복잡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희곡의 의미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내버려두었던것이다. 축적된 감정을 무시한 것이다. 이는 그 감정이, 우리가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희곡을 산문과 비교해왔지만, 희곡은 - P77
사실 결국엔 시다. 희곡은 시이고, 소설은 산문이라 할 수 있겠다. 세세한사항들은 지워버리고, 그 둘을 나란히 놓고서 우리가 할수 있는 한 각각이 하나의 전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각각의 각과 모서리들을 느껴보기로 하자. 그러면 즉시 가장중요한 차이점들이 드러난다. 오랫동안 느긋하게 축적되어온 소설과, 이와 달리 약간 응축되어 있는 희곡. 소설에서는 감정이 모두 쪼개져 흩어졌다가 천천히 점차 함께 엮여 한 덩어리로 모인다면, 희곡에서 감정은 응축되고 일반화되며 고양된다. 희곡은 그 얼마나 강력한 순간들을, 그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구절들을 우리를 향해 쏘아대는가!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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