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만큼 많이 알려져 있으면서 울프만큼 읽히지 않은 작가도 드물 것이다. 모르긴 해도 다른나라에서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이것은 울프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평생 소설의 새로운 기법을 천착했던 그녀는 작은 표현 하나의 실험을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녀는 우선 모더니스트이다. 조이스와 더불어 의식의흐름 수법을 소설에 도입하고 완성시킨 작가였다. 또 그녀는 누가 뭐래도 철저한 페미니스트이다. 울프의 페미니즘은 비록 예술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격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은 울프 문학의 진수도 아니며, 더더욱 전부는 아니다. 그녀의 문학은 - P4

한마디로 말해 인간주의 문학이다. 모더니즘, 페미니즘, 사회주의 따위는 그녀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른 간이역들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지는 사랑과 이타주의利他主義를 근간으로 하는 인간주의라는 정거장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그녀를 지나치게 모더니즘의 기수로, 또는 페미니즘의 대모로 부각시키면서, 크고도 울창한 숲과같은 그녀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경향이 없지않았다.
이 전집의 발간이 울프의 세계를 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읽는 분들의 정서를 순화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된다면 더없는 보람으로 여길 것이다.

박희진 - P5

많은 독자들에게 울프는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소설을발간하기 이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로도 울프는 소설이 아닌 평문이나 에세이를 꾸준히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에세이스트이기도 합니다. 작가와 그 문학관, 역사와 사회상까지 망라한 서평과 함께 작가를 조명한 전기적 에세이,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한 비평적 에세이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에세이들은 정곡을 찌르는 문장의 묘미와 명징한 사고의 흐름으로 또 다른 울프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광범한 독서에서 연유한 통찰력과 혜안이 번득이는 에세이들이야말로 그녀만의 탁월한글쓰기 훈련장이었습니다. 이렇듯 균형 잡힌 시각과 명철한 사고를 바탕으로 소설적 기법을 실험했기에 그녀의 소 - P6

설이 갖는 난해성은 난해함 자체가 아니라 그 밑에 투명하게 비치는 밑그림을 드러내지 않나 싶습니다. 울프의 에세이는 지금까지 여섯 권이 발간되었습니다. 울프의 생전 출판된 『평범한 독자』 I, II와 울프의 사후, 남편인 레너드가에세이들을 모두 다시 편집해 네 권으로 묶은 게 그것입니다. 이번 번역의 원전은 레너드 울프가 편집한 네 권의 에세이 모음집 중 1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 P7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 부류로 나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를 책으로 읽기를 선호하는사람들, 무대에서 공연되는 것을 보기를 선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책에서 무대로 끊임없이 달려가 노획물을 챙기는사람들, 만약 사과하나가 땅에 툭 떨어지는 소리나 나뭇가지들을 스치는 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않는 정원에서 『십이야 Twelfth Night)를 읽을 수 있다면, 분명히 『십이야』를 책으로 읽는 것에 관해 얘기할 게 많다. - P11

우선, 시간이 있다. 제비꽃이 핀 둑에서 숨 쉬는 향긋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작이 사랑의 본성을 파고들 때 그 미묘한 말의 암시를 설명할 시간이 있다. 또한 여백에 기록할 시간이 있다. ‘그녀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애정들을……) 간, 뇌, 심장이‘ [1막 1장]・・・・・・ 어느 날 밤 당신이데리고 들어온 멍청한 기사에 대해서‘ [1막 3장]와 같은 기이한 어구들에 경탄하고 이런 어구들로부터 ‘그런데 저는 일리리아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나요? 제 오라비는 일리시움에 계시는데 [1막 2장]와 같은 사랑스러운 어구가 생겨났는지 자문할 시간이 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통제하에서 움직이는 완전한 정신으로 쓰는 게 아니라, 우연히 마주친 단어의 흔적을 붙잡아 무모하게 따라가기 위해 단어들과 놀고 장난치며 날아다니는 더듬이로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 단어의 메아리로부터 다른 단어가생겨나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로, 아마도, 우리가 이 희곡을 읽을 때 이 희곡은 음악의 가장자리에서 영원히 떨고 있 - P12

는 것 같다. 그것들은 항상 『십이야』의 노래들을 불러내고있다. ‘오 친구여 오게나, 우리가 지난밤에 불렀던 노래 말일세.‘ [2막 4장]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단어들과 깊은 사랑에빠지지는 않아서 언제나 단어들을 향해 비웃을 수 있었다.
‘단어들을 가지고 장난하는 사람들은 바로 단어들을 난잡하게 만들기 마련이지. [3막 1장]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리고나면 토비 경과 앤드루 경과 마리아가 불쑥 나타난다. 그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은 의미 있는 말들이다. 이 말들은 한 인물의 전체적인 성격을 짧은 구절에 집약한 채 성급하게 튀어나온다.  - P13

앤드루 경이 ‘나도 한때는 숭배를 받았단 말이지‘ [2막 3장]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를 손아귀에쥐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가라면 그와 같은 친밀한어조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데 세 권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이올라와 말볼리오와 올리비아와 공작이, 우리의 정신이라는 무대의 빛과 그림자 사이를 오가며 움직일 때 그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추측하는 모든 것들로 정신은 가장자리까지 차고 넘쳐흐르게 되어서 우리는 왜 그들을 실제의 남자와 여자라는 육체 속에 가두어야 하는지 묻게 된다. 왜 이러한 정원을 극장으로 바꿔야 하는가? 대답은 셰익스피어가 무대에 올리기 위해 글을 썼으며 아마도 여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 P13

그다음엔 아마도 배우들이 너무나 개성이 뛰어나거나 너무나 맞지 않게 배역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연극을 분리된 조각들로 나누었다. 한번은 우리가아카디아의 숲 속에 있었고, 한번은 블랙프라이어에 있는어느 숙소에 있었다. 책을 읽는 정신은 장면에서 장면을거미줄 짜듯 이동하면서, 떨어지는 사과와 교회의 종소리와 그 희곡을 하나로 묶어주는 부엉이의 환상적인 비행으로 하나의 배경을 만들어낸다. 여기 공연장에서는 그러한연속성이 희생되었다. 우리는 보다 덜 화려한 공연의 만족스러운 절정이 될 수도 있을,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결합하는 듯한 느낌 없이 많은 화려한 파편들만을 가지고 극장을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연극은 그 목적에 잘 - P18

부합했다. 그 연극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읽은 말볼리오와 쿼터메인 씨가 연기한 말볼리오, 우리가 읽은 올리비아와 로포코바 부인이 연기한 올리비아, 그리고 그 희곡 전체에 대한 우리의 읽기와 거드리 씨의 읽기를 비교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셰익스피어에게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십이야』를 다시 읽어야만 한다. 거드리 씨는 그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앞으로 공연될 『체리 과수원Cherry Orchard』,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 그리고 헨리 8세 Henry the Eighth』에 대한 갈망을 자극했다. - P19

지난 삼백 년간 영국에서 얼마나 많은 수백만 개의 단어가 쓰여지고 인쇄되었으며, 어떻게 해서 그 대부분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는지를 생각하면 던의 언어가도대체 어떤 속성을 갖고 있기에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그렇게 분명하게 들리는지 한번 생각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1931년은 아첨을 해도 용서를 받을 기념비적 해이지만 던의 시가 대중적으로 읽힌다거나 타이피스트가 퇴근하면서 지하철에서 던을 읽고 있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았다고 우리가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의시는 읽히고 우리 귀에 들린다. 그의 시집 개정판들과 그에 대한 글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시대와 우리 시대를 갈라놓는 거친 - P20

바다를 건너는 오랜 비행 후에도 그의 목소리가 왜 우리 귀에 울려 퍼지는지 그 의미를 분석해보는 것은 아마도 가치있는 일이리라.
그의 시가 의미로 꽉 차 있지만 우리를 매혹시키는 첫 번째 속성은 의미가 아니고 훨씬 더 순수하고 직접적인 그 무엇이다. 그것은 그가 갑자기 말문을 터트리는 폭발력이다.
모든 서두와 논의는 다 소진되어버리고 그는 가장 짧은 길로 시 안에 바로 뛰어든다. 시구 하나면 모든 준비를 무색케 한다.


나는 어떤 늙은 연인의 유령과 이야기하고 싶소. - P21

또는


한 시간 동안이라도 사랑했다고 말하는자,
그 누구든 그는 완전히 미친자요. 


즉시 우리는 사로잡혀 멈춘다. 가만히 서시오. 그가 명령한다.



가만히 서시오. 그럼 나는 당신에게
사랑의 철학을 강의하리라, 내 사랑이여.



그리고 우리는 가만히 서야만 한다. 첫 단어부터 충격파가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전에는 무기력하고 마비되었던 직관이 떨리면서 살아난다. 시각과 청각의 신경들이 일깨워진다. 우리 눈앞에 ‘빛나는 금발머리로 만든 팔찌‘ 가타오른다." 그러나 더 놀라운 점은 우리가 아름답게 기억 - P22

에 남는 구절들을 단지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마음의 자세에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된다는 점이다. 던의 열정이 일격을 가하면 일상적인 인생의 흐름에서 흩어져 있던 요소들이 하나로 완전해진다. 한순간 전에는 여러 다양한 속성으로 들끓던 유쾌하고 단조로운 이 세상이 바로 소멸되어버린다. 이제 우리는 던의세계 안에 있다. 다른 모든 풍경은 날카롭게 단절된다.
독자를 갑자기 놀라게 하고 굴복시키는 이런 위력에 있어서 던은 대부분의 시인을 능가한다. 이것이 그의 특징적자질이다. 그런 식으로 그의 정수를 한두 단어로 요약하면서 그는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작용할 때는두 개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대조로 나누어지는것 또한 바로 그 정수이다. 곧 우리는 이 정수가 무엇으로구성되었는지, 어떤 요소들이 함께 만나 그렇게 깊고 복잡한 인상을 새겨놓는지 자신에게 묻기 시작한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