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자들」 중에서


벽이 있었다. 별로 중요해 보이는 벽은 아니었다. 다듬지 않은 돌에 대충 모르타르만 발라서 쌓아, 어른은 넘겨다볼 수 있는 높이였고 어린아이라도 기어오를 수 있었다. 도로와 교차하는 곳에 난 문은사실 문이라기보다 그냥 기하학적인 배열이자 하나의 선이었다. 경계선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개념은 실재했고 중요했다. 일곱 세대 동안 그 세계에서 그 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모든 벽이 다 그렇듯 그 벽도 양면이 있었다. 무엇이 안이고 무엇이 밖인가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었다.

어둠의 왼손』 중에서


그때 나는 새삼스럽게 알았다. 내가 언제나 두려워했고 그래서 에스트라벤을 보면서도 못 본 척해왔던 사실을, 그가 남자일 뿐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했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그 두려움의 원천을 설명할 필요도 없어졌다. 마침내 나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나는 에스트라벤의 실체를 거부하고 부정했다. 자신은 게센에서 나를 믿는 유일한 사람이면서, 또한 내가 불신하는 유일한 게센인이라던 에스트라벤의 말이 옳았다. 그는 나를 완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준 유일한게센인이었다. 나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또 개인적으로 의리를 다해준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에게도 똑같은 인정을 바라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동안 나는 도무지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인정하기가두려웠다. 여자이면서 남자이고, 남자이면서 여자인 사람에게 나의 믿음과 우정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거기에 더해 큰 이야기 진짜 깊이가 있는 이야기를 하는 데특히 관련이 있죠. 하지만 복잡한 문제예요. 현재시제에도 멋지게 들어맞는 용법이 있다는 건 분명하죠. 하지만 최근에는현재시제가 맹목적으로, 이야기를 푸는 유일한 방식처럼 쓰였어요. 다른 글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 많이썼고요. 글쎄, 그건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는 좋은 방법이지만, 또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한계를 내재하고 있죠. 전 그걸 ‘손전등 초점‘이라고 불러요. 바로앞은 보이는데 주위는 다 어두운 거죠. 높은 긴장감, 긴박한상황, 본론만 전달하는 글쓰기에는 아주 좋아요. 하지만 엘레나 페란테의 책들이나, 1920년부터 2020년까지의 시간을 다루는 제인 스마일리의 ‘지난 백 년The Last Hundred Years‘ 3부작같은 크고 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ㅡ현재시제를 썼다면 그런 책은 제 기능을 못 했을 거예요. 현재시제가 말 그대로 ‘지금‘이고 과거시제는 말 그대로 먼 과거라는 추정은 너무나 순진해요. - P33

헨리 제임스가 제한적 3인칭시점을 아주 잘 구사하면서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줬죠. 제임스는 소에게서 우유를 잘 짜냈고, 그건 훌륭한 소예요. 아직도 우유를 많이 내놓고요. 하지만 정작 동시대 작품만 읽고, 언제나 제한적 3인칭시점만 읽는 독자는 이야기 속에서 시점이 아주 중요한 데다가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요. 그래서 제가 사람들에게 울프의 『등대로』 같은 책을 읽고 울프가 어떻게 사람들의마음속을 움직이는지 보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좋죠. 와, 톨스토이가 독자는 바뀐 줄도모르게 이 시점에서 저 시점으로 옮겨가는 솜씨란-정말 우아하거든요. 독자는 어디에 있는지, 누구 눈을 통해서 보는지알면서도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거예요. 그야말로 달인의 솜씨죠.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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