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슐러 K. 르귄 
Ursula K. Le Guin, 1929~2018


1929년 10월 21일, 인류학자 앨프리드 크로버와 심리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작가 시어도라 크로버 사이에서 태어났다. 북미 최후의야생 인디언으로 알려진 이시를 돌보며 기록을 남기는 등 아메리카 인디언 연구에 몰두했던 부모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은 르 귄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래드클리프컬리지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을 전공한 르 귄은 이후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된 그는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1953년 프랑스로 건너가던 중 역사학자 찰스 르 귄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몇 달 후 파리에서 결혼한다. 1959년, 남편의 포틀랜드대학 교수 임용을 계기로 르 귄은 미국으로 돌아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 정착한다.
시간 여행을 다룬 단편 「파리의 4월(1962)을 잡지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르 귄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이며 ‘어스시 시리즈‘와 ‘헤인 우주 시리즈‘로 대표되는 환상적이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낸다. 인류학과 심리학, 도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외계로서 우주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환경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독자와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총 21권의 장편소설, 11권의 단편집 4권의 에세이집, 12권의 어린이책 6권의 시집과 4권의 번역서를 출간했고,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팁트리상 등을 받았다. 또한 세계환상문학상을 비롯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태평양북서부서점협회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미국 SF 판타지 작가협회의 그랜드마스터로 선정되었다. 의회도서관에 의해 ‘살아 있는전설‘로 지정되었으며, 전미도서재단에서 미국 문학에 대한 두드러진 공헌을 인정하며 수여한 공로상을 받았다.
2018년, 88세의 나이로 포틀랜드의 자택에서 영면했다.




데이비드 네이먼 David Naimon


작가이자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라디오와 팟캐스트 <책표지 사이Between the Covers>의 진행자다. 틴하우스를 포함한 여러 출판사에서 펴낸 그의 글은 2016년 최고의 짧은 소설The Best Small Fictions2016」에 수록되어 재간되었다.

어슐러 K. 르귄(1929~2018)을 기리며


교열 담당자는 빨간 펜을 썼고, 어슐러는 연필을 사용했다. 겨우 일주일 전에 어슐러가 넘겨줬던 이 원고에서는 연필과 펜의 의견이 일치할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다. 우리가 광고문을 어떻게 내보낼지를 두고이메일을 주고받은 지도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이제는 내가 어슐러와 교열 담당자의 의견이 맞지 않은 부분에 끼어들 차례였다. 그렇게 한창 작업 중이었을 때 어슐러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주일이 더 지나고도 나는 여전히 내가 맡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게이먼, 마거릿 애트우드, 조월튼처럼 위대한 작가들이 바친 헌사를 읽었다.
나는 어슐러의 글씨를 다시 보았다. 열정적인 좋아요! 사무적인 제생각은 다릅니다를. 그러다 보니 어슐러가 이 책에 얼마나 온전히 참여하고 있는지, 얼마나 눈앞의 일에 철저히 임하는지가 보였다. 어슐러의 강 - P7

력하고 자기주장 강하며 매혹적인 자아를 끌어내기에 너무 사소한 작업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온 세상을 담아내는 일이나 다름없다해도 말이다. 작가들을 위해 구글과 아마존에 도전한 어슐러, SF와 판타지계 속 남자들의 클럽에 맞섰던 어슐러, 지구, 우리의 행성인 바로 그
‘지구‘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한 어슐러.
어슐러는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본질이 같다고 보고, 똑같이 몰두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나도 똑같이 해보려고, 어슐러가 했듯이 언어에심혈을 기울이려고 했다. 여전히 이 책을 어슐러와 함께 출간하고, 함께 이 여정을 축복하겠다는 꿈이 사라져서 슬프다. 어슐러의 어떤 프로젝트라도 고마운 마음으로 참여했을 테지만, 특히 이 책, 어슐러의 길고놀라운 삶에서 마지막으로 나오게 된 이 책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다.
어슐러를 작가로서 돋보이게 한 지점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가더 나은 미래를 살 수 있다는 상상이었다. 이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상상하고, 그 세상을 반영하는 언어를 창조하고, 어슐러가 그토록 아끼던 ‘지구‘를 기림으로써 그를 기리는 것은 우리 몫이다.


2018년 2월 1일데이비드 네이먼 - P8

서문



인터뷰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인터뷰어는 출판사 홍보팀에서 책에 관해 쓴 보도자료를 읽고 오는 사람들이다. 편리한 발췌 문장까지 갖춰서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 발췌 문장을 크게 읽고 나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 여기에서 하신 말씀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시죠."
그런 인터뷰어들은 책을 한 권 쓴 유명인들과는 잘 맞는다. 그 유명인이 실제로 그 책을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터뷰어도 실제로 읽지 않았으니까. 인상적인 한 구절만을 원할 뿐이다..
"여기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시죠"는 책에 정보나 메시지를 담았고, 그메시지가 전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되풀이해서 말할 열의가 있는 진지한 작가들에게도 통할지 모른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를 최대한 언어에 잘 담아보려고 고심한 작가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작가들도 자신들이 한 말이 큰 소리로 읽히는것이야 기쁘게 듣겠으나, 그 말을 다르게 표현하거나 더 잘 표현해야 한 - P9

다고 하면 기뻐하지 않는다. "나이팅게일에 대해 쓰신 부분이 참 흥미로운데요, 키츠 씨, 좀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운이 좋아서, 이런 준비되지 않은 인터뷰어와는 극과 극처럼 다른 분들을 만나왔다. 빌 모이어스와 몇 번 만나본 뒤 ‘좋은 인터뷰‘에 대한 기준이 영영 고정되기도 했다. 좋은 인터뷰란 계속하고 싶어지는 인터뷰다. 하고 있는 말에 대해 전부터 생각해보았고, 말하고 있는 지금도 상대방이 하는 말에 비추어 생각해보고 있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다. 그러다 보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서로 의견이맞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근본적인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차이를 적대감 없이 말하고 답하다 보면 대화를 더욱 치열하고정직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 - P10

이제 나는 질문 한두 개만 받아보아도 불만만 남을지, 노력에 보상받을지를 안다. 불행한 결말이 뻔히 보일 때, 그 인터뷰를 계속하기란 양쪽 모두에게 힘겨운 일이다. 내가 ‘대체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라고?‘ 하고 생각하는 동안 인터뷰어는 ‘맙소사, 또 10초 동안 침묵하다가 음, 이라고 하는군‘ 하고 속으로 한탄한다.
좋은 인터뷰란 멋진 배드민턴 랠리와 비슷하다. 두 사람이 셔틀콕을 계속 허공에 띄워놓을 수 있으며, 그러면 셔틀콕이 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BOO의 매력적이면서도 펑키한 녹음실에서 서로를 처음 마주했을때 데이비드와 나는 조금 굳어 있었고, 낯을 가렸지만, 곧 대화에 빠져들었고 나는 우리의 셔틀콕이 날고 있음을 알았다.
소설가로서 나는 작품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끄러움 없이 말하지만, 시인으로서 이야기할 때는 수줍음이 많고 아마추어스럽 - P10

다.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른 시인들을 향해 말하게 되는데, ‘다른 시인들‘은 쉽게 만족하지 않고, 격렬한 자기 의견을 품고 있으며, 적대감이 강할 때가 많다. 배타적일 수도 있다. 글쓰기 워크숍에서낭독의 밤이 있을 때면 나는 산문 작가들과 같이 앉아서 시인들의 낭독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반면 산문 작가들이 낭독할 차례가 오자, 시인들은 모두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게다가 영역 문제에 딸려오는 일종의 ‘시인 언어 Poetspeak‘도 있는데, 그건 나의 언어가 아니다. 이런 모든이유에서 나는 데이비드와 시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이 불안했다. 그러나 그 불안감은 바로 사라졌다. 대화에 푹 빠져드는 것만큼 빨리 불안을치유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 P11

나의 논픽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무섭다. 나는인터뷰어가 내가 읽은 적도 없는 쇼펜하우어나 비트겐슈타인, 아니면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내 글에 미친 영향을 논하려고 할까 봐 무섭다. 아니면 퀴어이론이나 끈이론string theory에 대한 견해를 물으면 어쩌나. 아니면 청중들에게 도가 사상이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하면? 아니면 제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데) ‘인류의 미래‘에 대해 물어보면 어쩌나, 내가 스스로 얼마나 무지한지 안다고 해도, 그 모습을 전시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내 배움과 지성의 한계를 존중하고, 나에게 ‘델피의 예언자‘처럼 굴라고 하지 않는 인터뷰어가 고맙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일 이야기라는 사실을 아는 인터뷰어를 만나게 된다.
데이비드도 일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게 해준 KBOO에 감사드리고 싶다. 50년간오리건에서 예술과 사상의 자유와 관용을 지지하는 가장 강하고 끈질긴 - P11

목소리로 있어준 데 대해서도 고맙다. 미국이 아우성과 거짓말과 분별없는 폭력으로 갈가리 찢기느라 바쁜 중에도, 이런 목소리들 덕분에 아직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내용을 들을 수 있다. 귀를 기울인다면 말이다.

2017년 10월 6일
어슐러 K. 르귄 - P12

소설에 대하여


어슐러 K. 르 귄은 말한다. "아이들은 유니콘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훌륭하기만 하다면 유니콘에 관한 책이 진실한 책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알지요."
성장기에 [어스시의 이야기들]을 읽던 내 경험이 바로 그랬다. 어스시에서는 마법이 흔했다. 마법사들이 지상을 걷고 용들이 하늘을 날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이 나를 ‘현실‘에서 멀리 데려갈수록 나는 진짜에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어슐러 K. 르 귄은 가슴속 깊이 작가, 그것도 소설만이 아니라 상상력의 작가다.  - P15

그리고 그에게 상상이란 남는 시간에만 하는 무의미한 활동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이게 만드는 권능이다.
"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용에게 잡아먹힐 때가 많지요. 속에서부터요"라고 경고할 정도다.
어려서부터 르 귄의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타고 날아본 나로서는 ‘진짜‘
어슐러 K. 르 귄을 만나면 어떨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내 상상 속의작가를 몇 개만 떠올리더라도 어스시의 이야기들』에 나오는 마법의땅, 『어둠의 왼손』에 나오는 양성애 행성 게센, 『빼앗긴 자들』에 나오는아나레스의 탈권위 노동조합 사회 같은 세계를 만들어낸 마법사를 현 - P15

실 세계, 즉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사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여성, 나와똑같이 일상의 거리를 걷는 사람, 내가 곧 소설 쓰기의 기본 기술에 대해 인터뷰할 사람과 비교하면 어떨지를 말이다.
우리는 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포틀랜드 동부 깊숙한 곳에 있는 거대한자원봉사 체제의 커뮤니티 라디오 방송국인 KBOO의 스튜디오에서 만났고, 그곳에서 어슐러를 처음 본 나는 단단하고 냉철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바보들을 봐주지 못하는 사람. 오랫동안 잘 살면서 풍부한 경험을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이 모여서 살아 숨 쉬는 지혜같은 것으로 변화한 사람. 그리고 이런 지혜를 갖췄기에 가식이나 허세를 참아주지 않을 듯한 사람. 대화를 해나가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기에, 그런 첫인상은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 P16

이 현세의 실제 어슐러와 내가 상상한 다른 세상의 어슐러 사이에 모순이 있었냐고?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아 보였다. 실제와 상상 속을 분리할 수 없게 뿌리를 깊이 내리고 상상력의 가지를 하늘 높이 뻗어 올린작가였다. 그럼에도 작품 밖 세상에서의 어슐러에 대해 알면 알수록보이지 않는 작품 내부의 상상이 현실을 움직이는 것이지, 그 반대가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미국 SF 판타지 작가협회가 선정한 ‘SF 그랜드마스터‘이자 미국 의회도서관의 ‘살아 있는 전설로서 이 세상에서 지닌 명성에도 불구하고, 어슐러는 계속해서 오클랜드의 아나키스트 PM 프레스에서부터 시애틀의 페미니스트 SF 출판사 애크덕트 프레스 같은 소규모 독립 출판사에서 책을 낼 뿐 아니라, 소통에 대한 정신을 공유하고 또 주변부에 있어 상대적으로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을 키워야 한다는 데 관심을 둔KBOO 같은 방송국에 출연한다. 나로서는,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언정 - P16

어스시, 게센, 아나레스 같은 상상 속의 세계야말로 서로 맺는 관계에있어서나 땅과 맺는 관계에 있어서나 이 같은 상상 속의 대안적 삶이야말로 어슐러가 현실 세계에서 보여주는 이런 행동의 추동력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곧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요소들조차도, 이를테면 문법이나 구문이나 문장구조 같은 것들조차도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의해 생동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히 말하자면 그 뒤에, 그 너머에 존재하는 마법 같은 뭔가가 있었다. 우리 문장의 걸음걸이, 길이,
소리, 우리가 사용하는 시제, 시점, 대명사, 그 모든 것에 나름의 역사와 이야기와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암시가 있고, 그 모든 것이 좋든 나쁘든 상상 속의 미래 세상을 향해 쌓아 올리는 건축 소재이자 구체적인몸짓이 될 수 있다. - P17

네이먼

그림이든 춤이든 음악이든, 대부분의 예술에서 모방은 배우는 과정의 일부 같아요. 기술을 연마하고,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죠. 가장 경험이 많고 창의적인 화가라 해도 보통은 선대 화가들처럼 그리는 시기를 갖거든요. 작가님은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으로 모방을 추천하는 데 주저함이 없지만, 작가들은 전통적으로 모방 때문에 조금 힘들지 않았나요. - P17

르 귄

전통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최근에는 확실히 그렇지요. 예술의 경우에는 모방하는 사람이 모방을 배움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표절이에요. 배우기 위해 모방하기는 하되, 출간하지는 말아야죠. 아니면 모방하면서 "이건 헤밍웨이 흉내입니다"라고 말하거나요. 하지만 인터넷이나 대학 내 경쟁은 모방과 표절 사이의 구분을 흐리는 경향이 있고, 이렇게 흐릿해진 상황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들이아예 모방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게 되는 거예요. 어리석은 일이죠. 우리는 좋은 작품을 읽고 그렇게 써보려고 하면서 배워야 해요. 피아노 연주자가 다른 피아노 연주를 하나도 듣지않는다면, 연주할지 어떻게 알겠어요? 전 우리가 모방을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P18

네이먼


작가님은 소리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고, 언어의 소리가 모든 것의 시작점이며, 언어의 핵심은 물리적인 실체라고 하셨는데요.


르 귄


저는 제가 쓰는 글의 소리를 들어요. 아주 어렸을 때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언제나 머릿속으로 소리를 들었죠. 알고 보니글쓰기에 대해 쓰는 많은 사람이 듣거나 귀 기울이지 않고,
좀 더 이론적이고 지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몸안에서 글이 울리면, 스스로가 쓰는 글을 들으면 올바른 리듬을 들을 수 있고, 그러면 문장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데 도움 - P18

이 됩니다. 젊은 작가들은 언제나 "자기 목소리를 찾는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귀를 기울이지 않고는 스스로의 목소리를찾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쓴 글에서 울리는 소리는 그 글의작용에 핵심적이에요. 우리의 글쓰기 가르침은 그걸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아마도 시만 빼고요. 덕분에 우린 덜컥거리는산문을 만들어내면서도, 뭐가 잘못됐는지를 몰라요.



네이먼


2000년에 있었던 포틀랜드 문학예술 강연에서 이런 멋진 말씀을 하셨죠. "기억과 경험 아래, 상상과 창작 아래, 단어들아래에 기억과 상상과 단어 모두가 움직이는 리듬이 있습니다. 작가의 일은 그 리듬이 느껴질 만큼 깊숙이 들어가서, 그리듬이 기억과 상상을 움직여 단어를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 P19

르귄


그건 버지니아 울프에게 배운 거예요. 울프는 친구인 비타 ‘약20년간 울프의 연인이자 친구였던 20세기 작가 비타 색빌웨스트를 가리킨다. 올랜도』의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 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정말 멋지게 설명하죠. 스타일은 리듬이라고, ‘마음속의 파도‘라고요. 그 파도,
그 리듬이 말보다 먼저 존재하고, 단어들을 거기에 맞게 짜맞춘다고요.



네이먼


리듬 사용에 대한 아마도 최고의 예시로 버지니아 울프를 언급하기도 하셨죠.



르 귄


울프는 산문에서 길고 섬세한 리듬을 사용하는 놀라운 실사 - P19

례에요. 하지만 다른 작가도 얼마든지 있죠. 전 톨킨이『반지의 제왕』에서 쓴 리듬에 대해 에세이를 쓰기도 했어요. 짧은리듬이 반복되면서 긴 리듬을 형성하는데, 톨킨의 글에 나오는 순환적인 반복이야말로 그 글이 정말 많은 사람을 완전히사로잡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우린 이 리듬에 넋을 잃고 행복해지죠.



네이먼


작가님이 문법과 문법 전문용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 규칙들이 옳은지 따져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는 게 흥미롭습니다. 문법은 우리 직업의 도구인데, 너무나 많은 작가가 문법과의 관계를 피한다니 이상한 현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하셨어요. - P20

르귄


제 세대에서나 그 후로 한동안은―저는 1929년에 태어났습니다만 문법을 맨 처음부터 배웠어요. 조용히 주입받았죠.
우린 품사의 이름을 알았고, 영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얻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학교에서 그런 걸 가르치지 않아요. 요새 학교에서는 읽기도 예전보다 훨씬 적게 하고, 문법은 아주 조금만 가르치죠. 작가에게 이건 목공 도구 이름을 배우지도 않고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는 채 목공실에 내던져지는 상황과 비슷해요. 필립스 스크루드라이버로 뭘하죠? 필립스 스크루드라이버가 무엇이죠? 우린 사람들에게 쓸 준비를 갖춰주지 않고, 그냥 "당신도 쓸 수 있어요!" 아니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냥 앉아서 써봐요!"라고하고 있어요. 하지만 뭔가를 만들려면, 만들 도구를 갖춰야해요. - P20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중에서


그러자 정말로 평화가 찾아왔다. 바다에서 해변으로 평화의 메시지가 불어왔다. 세상의 잠을 더는 깨뜨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깊이 잠들어 쉬도록 달래며, 꿈꾸는 이들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성스럽고도 현명하게 확인토록 하고ㅡ또 뭐라고 속삭이는걸까, 릴리 브리스코는 깨끗하고 조용한 방에서 베개에 머리를 누인 채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세상의 목소리는 너무 조용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없었지만,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해진들 달랐을까.

J. R. R. 톨킨의 [반지 원정대] 중에서

깊은 물속에 세워진 거대한 받침돌 위에 돌로 만든거대한 두 왕이 서 있었다. 둘 다 이마가 갈라진 채, 흐릿해진 눈을 찌푸리며 가만히 북쪽을 바라보았다. 둘 다 왼쪽 손은 경고하듯 손바닥을 바깥쪽으로들어 올렸다. 둘 다 오른쪽 손에는 도끼를 들었다.
둘 다 머리에는 부서져가는 투구와 왕관을 썼다. 오래전에 사라진 왕국의 말 없는 수호자들, 그들은 여전히 강력한 힘과 위엄을 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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