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다.
뭔 말인지도 모를, 양자역학이니 뭐니 하는 문장들이 이토록 강하게 끌어당기다니.

모치즈키가 논문을 발표한 지 1년 뒤인 2013년 12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수학자 여러 명이 증명을 연구하기 위해옥스퍼드에 모였다. 세미나가 시작되고 며칠 동안은 열의가넘쳤다. 일본인 수학자 모치즈키의 모호한 논리가 이해력에굴복하기 시작했으며 사흘째 밤 커다란 진전이 있으리라는소문이 인터넷 토론방과 전문 웹사이트에 퍼졌다. - P78
나흘째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일정한 시점이 지나자 아무도 증명의 논증을 더는 따라갈수 없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수학적 정신의 소유자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으며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치즈키가 세미나 참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 P79
모치즈키 신이치가 자신의 추론을 증명하려고 만들어낸새로운 수학 분야가 너무 기이하고 추상적이고 시대를 앞선탓에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스 캠퍼스에서 온 이론수학자는미래에서 온 논문을 연구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내가 알기로 이 논문을 접한 사람들은 다들 매우 논리적이지만, 논문을 읽은 뒤에는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모치즈키의 체계를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만큼 따라갈수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은 이 체계가 첫눈에 보이지 않는숫자들 사이의 기본적 관계들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모치즈키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연구자들이 내 연구를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자신들의 뇌에 주입되어 오랜 세월 동안 당연하게 여겨진 사고 패턴들을 비활성화해야 한다. " - P79
절의 내부처럼 단아한 그의 연구실 창문에서는 다이몬지산이 보인다. 1년에 한 번 오본 축제 때 승려들은 그 산에서양팔을 뻗은 사람 모양의 거대한 한자大ㅡ를 태운다. 이글자는 ‘거대하다 크다. 기념비적이다‘라는 뜻으로, 어마어마한 호언장담을 표현할 때 쓰인다. 모치즈키는 자신의 새수학 분야를 바로 이런 식으로 명명했는데, ‘우주적 타이히뮐러이론‘이라는 이름에는 겸양이나 농담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 P81
‘a+b=c‘ 추론은 수학의 뿌리에 가닿는다. 그것은 정수의덧셈 성질과 곱셈 성질 사이에 심오한 뜻밖의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만일 증명된다면 이 추론은 수많은 해묵은 난제를 마치 마법처럼 해결할 수 있는 막강한 연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모치즈키의 야심은 그보다 훨씬 컸다. 그는 추론을 검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학자들로 하여금 정수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도록 하는 새로운 유형의 기하학을창안했다.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수학자 중한 명이었다. 과학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창조력을분출하여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획기적으로 바꿨다. 모치즈키가 1996년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그로텐디크의 추론 하나를 증명한 뒤였으며, 이 일본인 수학자가 아직 학생일 때 그를 만난 사람은 누구나 그가 그로텐디크를 스승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았다. - P83
문이다. 수, 각 곡선, 방정식은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으며 그어떤 구체적인 수학적 대상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대상들 사이의 관계였다. 그의 제자 뤼크 일뤼지는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사물의 조화에 남달리 민감했다. 새 ‘로운 기법을 도입하고 주요 정리를 증명했을 뿐 아니라 수학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변화시켰다." 공간은 그가 평생 천착한 주제였다. 그는 천재성을 여지없이 발휘하여 점의 개념을 확장했다. 미천한 점은 그의 눈길이 닿자 무차원의 위치에서 벗어나 복잡한 내부 구조를 품은 채 부풀어올랐다. 남들이 깊이, 크기, 너비가 없는 단순한위치를 본 바로 그곳에서 그로텐디크는 우주 전체를 보았다. 그토록 대담한 제안을 내놓은 사람은 유클리드 이후로 아무도 없었다. - P86
유능한 권투 선수였고 베토벤의 후기 4중주곡과 바흐에열광했으며 자연을 사랑했고 "태양과 생명으로 가득한, 자그맣고 나이 많은 올리브나무"를 존경했지만, 수학을 비롯한이 세상 무엇보다 더 몰두한 것은 글쓰기였다. 그의 글은 광기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그가 어찌나 열정적으로 썼던지원고 여기저기에 연필심이 종이를 뚫은 자국이 남았다. 계산을 할 때면 공책에 방정식을 쓴 다음 거듭거듭 겹쳐 썼는데, 급기야 각각의 기호가 하도 굵어져서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되었다. 그는 흑연을 종이에 긁는 신체적 쾌감에 사로잡혔다. - P90
한 세대의 교수와 학생 전부가 그로텐디크의 꿈에투신했다. 그가 우렁차게 강연하면 그들은 필기를 하고 그의논증을 확장하고 초고를 써서 그에게 교정받았다. 공동 연구자 중에서 가장 헌신적이었던 장 디외도네는 해가 뜨기도전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전날의 필기를 검토했다. 그러면 그로텐디크가 여덟시 정각에 교실에 들이닥쳐 새로운 개념들을 전개했는데, 연구소 계단을 오를 때 이미 머릿속에서 자기 자신과 논쟁을 벌이던 것들이었다. 그로텐디크의 세미나는 열두 권의 책으로 묶였다. 2만 쪽이 넘는 이 대작은 기하학, 정수론, 위상수학, 복소해석학을 통합했다. - P91
그로텐디크는 하나의 방정식에 들어맞는 수학적 우주를통째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의 토포스는 무한해보이는 공간으로,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한다. 그로텐디크는이것을 "이 세계 모든 왕의 모든 말과, 모든 가능 세계의 모든 왕의 모든 말이 한꺼번에 물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넓고깊은 강바닥에 비유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려면 완전히새롭고 50년 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가져온 변화만큼 급진적인 우주 관념이 필요했다. - P92
그는 필요하다면 몇 시간이든 제 의지대로 자고 일어나 연구에 온 정력을 쏟을 수 있었다. 아침에 개념을 전개하기 시작하여 이튿날 새벽까지 낡은 남포등의 불빛 아래서 눈을찡그린 채 책상 앞에서 꼼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친구이브 라드겔레리는 이렇게 회상한다. "천재와 함께 연구하는일은 매혹적이었다. 이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로텐디크는 다른 어떤 말로도 묘사할 수 없다. 그는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웠는데, 그것은 이 남자가 어떤 인간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 P93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크루즈 캠퍼스의 한 교수는 그를일컬어 이렇게 말했다. "그가 강연하는 것을 듣고서 처음 든인상은 우리의 지적 진화를 앞당기기 위해 머나먼 태양계의외계 문명에서 지구로 파견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로텐디크가 불러일으킨 수학적 풍경은 아무리 급진적이었을지언정 인위적이라는 인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수학자의 훈련된눈으로 보면 이 풍경은 마치 자연환경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텐디크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보다는 풍경이 스스로자라고 발전하기를 바랐다. 그 결과는 마치 각각의 개념이제 나름의 생명 충동을 따라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듯한유기적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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