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은 초파리를 좋아했다. 초파리의 날개와 눈을 특히 좋아했다. 투명하고 얇은 날개는 성당에서 보았던 스테인드글라스를닮았다. 정교하게 짜인 무늬 사이사이로 무지갯빛이 감돌았다. 새빨간 눈은 석류의 단면을 닮았다. 붉고 영롱한 수천 개의 알갱이들이 빼곡하게 모여 하나의 동그라미를 이루었다. 마취된 초파리는 생명이 유지된 채 멈추어 있었다. 초파리의 눈을 보고 있자면 눈을 이루는 무수한 동그라미들이 일제히 원영의 눈동자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초파리와 교감을 하는 것 같았다. - P9
놓고 바라보보다 아름다웠다. 살아 있었으니까. 원영은 붓을 들었다. 초파리가 다치지 않도록 붓 끝으로 살살건드렸다. 눈이 하얗거나 하트 모양으로 찌그러진 초파리들을 재물대 왼쪽으로 치웠다.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 것들이었다. 눈이동그랗고 붉은 빛깔이 또렷한 것, 털과 무늬의 간격이 균질하며영양 상태가 좋은 초파리를 한 마리씩 골라냈다. 새로운 시험관에 담았다. 수백 마리의 초파리 중에서 가장 건강한 열다섯 마리를 골라 번식시키는 것이 원영의 업무였다. 원영의 선택을 받은초파리들은 시험관에서 일주일을 더 살 것이다. 나머지는 냉동실에 보관되다가 폐기처분될 것이다. - P10
집에 있어도 되지 않느냐 했다. 딸에게 개인 교습을 시켜줄 수는없었지만, 학원에 보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되었던 시절에도 원영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학원비 및 품버느니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편이 낫지 않나는 식이었다. 원영은 자기 일을 갖고 싶었다. 집을 갖고 싶다거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여느 사람처럼 그랬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삼십삼 년 동안 그랬다. 텔레마케팅 사무실은 창문이 없긴 했지만 무제한으로믹스 커피를 제공하는 탕비실이 있었고 천장에는 시스템 에어컨이 있었다. 칸막이가 설치된 책상이 직원 모두에게 제공되었다. 가져본 적 없는 자신만의 책상이었다. 첫 출근 전날 원영은 문구점을 찾아갔다. - P11
초파리는 사람과 닮은 점이 많았다. DNA가 절반 이상 같았다.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칠십 퍼센트 이상 일치했다. 인간이앓는 질병을 초파리도 비슷하게 앓는 경우가 많았다. 한 질병을않고 있는 초파리들의 염기 서열을 분석하면 그 질병에 관여하는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약물에 대해서도 사람과 비슷한 영향을 받고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였다. 초파리의 눈이나 장기, 배아 등에 약물을 주입하여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 P15
실험동에서 초파리를 훔쳐왔던 그날부터 원영의 머리카락은뭉텅뭉텅 빠졌다. 일주일 만에 정수리부터 두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눈썹과 속눈썹도 사라졌다. 원영은 통풍이 잘되는 두건과모자를 구입했고, 가발을 맞췄다. 눈썹은 그려넣으면 넣을수록티가 났다. 실험동 동료들은 원영에게 자꾸 괜찮으냐 물었다. 버스나 길에서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것 같다고 원영은 말했다. 잠깐 쉬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언제든실험동으로 돌아오라는 대답을 들었다. - P22
갱년기 때문에 음식을 못 삼킬 수는 없었다. 원영의 몸은 십일년 동안 꾸준히 약해진 것 같았고, 이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정도였다. 산재다. 지유는 의심이 들었다. 초파리 실험실에서부터 원영이 잘못된 것이다. "이게 생숙탕이야. 이렇게 섞어 마시면 몸 안에 좋은 기류가 생긴대. 설사도 낫고, 소화도 잘된대. 꼭 뜨거운 물에 찬물을 부어야해. 반대로 하면 안 돼." 지유와 원영은 식탁에 마주앉아 생숙탕을 마셨다. 원영은 욕실로 갔다. 천일염을 잇몸에 문지르고 머금고 있다가 뱉어냈다. 그다음에는 야로 오일을 입안에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다음에는테니스공으로 발바닥을 마사지했다.
그 이야기야말로 인터넷 기사에서 많이 본 것 같다고 지유는답했다. 원영은 다른 이야기도 들려줬다. 텔레마케팅 사무실에서헤드셋 너머로 종일 욕설을 듣는 여자 이야기. 평생 자기 책상을가져보지 못해서 아프기 시작한 여자 이야기. 식기세척기를 구입하면 어떻겠냐고 물으면서도 책상이 필요하지 않으냐고는 한 번도 묻지 않는 가족 이야기. 밀가루가 체질에 맞지 않아 늘 위무력증에 시달렸지만 남편이 국수를 좋아해서 삼십 년 동안 국수를먹은 여자 이야기. 체할 때마다 그러게 왜 국수를 먹느냐고 다그치던 딸 이야기. 그러면서도 일요일 저녁이면 와, 국수다, 라며 손뼉을 치던 딸 이야기・・・・・・ 원영은 조금씩 이야기를 바꾸어가며 말했다. 거의 소설이 되어갔다. 원영은 너무 사소해서 오히려 무시했던 일화들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 P29
"솔아야, 너무 열심히 쓰지 마." 원영은 말했다. 그 말이 나는 못내 서운했다. 내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열심히 하려는 사람에게 왜 자꾸 그런말을 하느냐고, 나는 불만을 섞어 볼멘소리를 했다. "너무 열심히 하면 무서워져" 공부든, 글쓰기는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원영은 말했다. 내가 모르는, 원영은 잘 아는 이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열심히 쓰지 마. 이 소설을 쓸 때 가장 많이 떠올린 말이다. 원영이 내게 누누이말해왔던 것처럼 원영도 잘 먹기를 잘 자기를 행복하기를. 오직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 P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