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사와 내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는매장 중앙부 잡지 테이블 쪽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창문이 절반 넘게 보였다. 그래서 바깥세상을 볼 수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무직 노동자, 택시, 조깅하는 사람, 관광객, 거지 아저씨와 개, RPO 빌딩 아랫부분이 보였다. 우리가 좀 적응이 된 다음에는 매니저가 매장 앞쪽 쇼윈도 바로 뒤까지 가도록 허락해 줘서 RPO 빌딩이 얼마나 높은지보았다. 딱 적당한 시각에 그 자리에 가면 해가 우리 빌딩이있는 쪽에서 RPO 빌딩이 있는 쪽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 P11
렉스는 손님들이 나가기 전까지 계속 웃음을 짓고 있었고 손님이 떠난 뒤에도 슬픈 기색은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렉스가 했던 농담이 떠올랐고, 문득 해의 자양분을우리가 얼마나 많이 받을 수 있느냐 하는 생각에 렉스가 전부터 골몰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는 에이에프가 렉스만이 아니었으리라는 걸 안다. 사실 그건 공식적으로는 문제조차 아니었다. 우리 모두 실내 어디에 있든 문제가 되지 않는 사양을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몇 시간있다 보면 피곤한 느낌이 들거나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불안해지기도 했다. 자신에게 고유한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게 알려지면 영영 집을 찾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다. - P17
내가 쇼윈도에 가고 싶어 한 데는 햇빛이나 선택받을 가능성과 무관한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아야겠다. 대부분의 에이에프나 로사와 다르게 나는 늘바깥세상을 아주 세세하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셔터가 올라가고, 바깥쪽 인도와 나 사이에 유리 한 장밖에 없어서지금까지는 가장자리나 귀퉁이밖에 못 봤던 수없이 많은 것들을 가까이에서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자, 나는 순간 너무 들떠서 해와 해의 인자함조차 잊을 정도였다. RPO 빌딩이 벽돌로 뒤덮여 있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흰색이 아니라 연노란색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고(22층이었다.) 창문 아래마다 창턱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 P19
그런데 그때 틈이 더 벌어져서 아이가 실은 에이에프와 같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소년 메이에프였는데 세 걸음 뒤에서 아이를 따라가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소년 에이에프가 우연히 뒤처진 게 아님을 알았다. 아이가 늘 이런 식으로걸으라고, 자기가 앞에 갈 테니 몇 걸흠 뒤에 따라오라고 했고 소년 에이에프는 지시를 받아들인 거였다. 시나가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 소년 에이에프가 사랑받지 못한다. 는 걸 알 텐데도, 나는 소년 에이에프의 걸음걸이에서 고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집을 찾았는데 나의 아이가 나를 원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궁금했다. 이 둘을 보기전에는 에이에프가 자기를 멸시하고 싫어하는 아이와 같이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그때 앞쪽 택시가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늦추고 뒤쪽 택시가 바짝 붙어 서는 바람에 더는 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지 않을까 싶어 계속 지켜보았는데, 횡단보도 위 인파 속에는 없었고 건너편 인도는 택시들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 P33
"클라라는 B2예요.. 4세대에 속하죠. 지금까지 나온 최고1의 버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B3가 아니라서." "B3 모델의 혁신은 성말 대단합니다. 하지만 어떤 특정 성향의 아이에게는 최고급형 B2가 가장 적합한 짝이라고 느끼는 고객도 많습니다." "그렇군요.." "엄마, 나는 클라라가 좋아요. 다른 애 말고요." "기다려 봐, 조시. 어머니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아티피셜프렌드(Artificial Friend, AF)는 하나하나 다 다르다죠?" "그렇습니다. 특히 이 수준에 다다르면 개성이 확연합니다." - P69
조시의 이 말에 교류 모임 동안 여러 상황에서 조시의 손 모양이 떠올랐다. 환영하는 손, 제안하는 손, 긴장한 손, 그리고 조시의 얼굴, 누군가가 왜 B를 고르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조시가 웃으며 말하던 목소리도 떠올랐다. 이제 그럴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그러자 매니저가 한말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창가로 와서 약속을 하고는 다시오지 않거나 심지어는 다시 왔는데 다른 에이에프를 데려간다던 말, 나는 느리게 이동하는 택시 사이 틈으로 본 소년에이에프를 생각했다. RPO 빌딩 쪽 인도에서 아이보다 세걸음 뒤에서 풀이 죽은 모습으로 따라가던 모습, 조시와 나도 그런 식으로 걷게 될지 궁금했다. "아마 이제 너도 알겠지." 해의 무늬가 드리워 있는데도 릭? HF "이 무리로부터 조시를 구해야 한다는 거."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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