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도로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들 



  채 여물지 못한 달빛이 모슬포 골목마다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은 칠월 칠석

  길의 끝에서 혹은 시작되는 곳에서
  덩굴손이 깍지 끼어 부여잡은 푯말 하나
  백조일손묘역 3.3km
  양민학살터 3.8km
  동서남북 불어온 바람이 달빛에 부서지다 다시 돌아와
  그 언저리를 서성거린다

  빛이 보이는 부분을 오늘이라, 하면
  희미한 윤곽만으로 모양새를 갖춘 삭은, 어제였나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육십갑자의 끄트머리
  어둠 속 내버려진 영혼들이 웅크려 있다
   남루한 형색의 눈이 퀭한 사내들
  우회도로도 없는 흙먼짓길을
  겉옷 하나 달랑 걸쳐 입은 몸으로 
  맨발 끌며 또 끌었으리 

  오작교도 없었던 반백년의 시간 동안
  내버려진 채 웅크린 그들의 그림자는 어디,   
  오늘 같은 날 달이 만든 내 그림자를 보며
  달의 뒤편을 생각하는 것은 서늘한 일이다

정군칠 시집[물집]중에서


4.3의 아침, 오랜만에 [물집]을 읽는다.
모슬포의 거친 바람이 바다를 거쳐 섯알오름을 휘돌 듯 가슴에도 지나간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격벽들이 세상과 제주 사이에 있다. 세상의 모든 ‘갈라치기‘에 있다. 분노의 표적이 필요한 이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우리안에 갇히고 오래 굶은 사자떼와 함성으로 즐기는 무리를 보고 있는 세상, [갈라치기]가 존재하는 한 4.3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 허방이다.
연두, 연두. 이 아름다운 봄날, 진달래꽃빛도 설운 핏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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