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날개를 자랑하는 갈매기 켕가는 선박의 깃발들을 관찰하는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 깃발들 하나 하나가 서로 다른나라의 언어들로 쓰여졌으며, 같은 물건이라도 나라와 언어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란 꽤나 복잡한 동물이야! 우리 갈매기들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말 한마디면 다 통하는데 말야." 켕가는 같이 날고 있는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글쎄 말야. 그렇게 복잡한 데도 사람들이 서로서로 이해하고 말이 통할 수 있다는 건 더 희한한 일이지." 동료 갈매기도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해안선 저 멀리로 진녹색 풍경이 보였다. 드넓은 초원이었다. 바람을 타고 느릿느릿 돌고 있는 풍차 날개가 보였고, 방파제 아래에서는 양 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이윽고 선두 갈매기는 무리에게 하강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갈매기들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앞다퉈 하강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청어 떼 위로 날카로운 부리를 앞세우며 돌진했다. 한류성기류를 탔기 때문에 하강 속도가 더 빨랐다. 거의 120마리에 달하는갈매기들은 마치 떨어지는 화살처럼 물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갈매기들이 잠수할 때마다 튀어 오르는 물보라가 장관을 이루었다. 갈매기들이 수면으로 다시 올라올 때는 모두가 입에 청어 한 마리씩을물고 있었다. - P12
몸집이 큰 검은 고양이는 모처럼 편안하게 숨을 내쉬었다. 앞으로4주 동안은 내 세상이다! 그러나 이웃집에 사는 소년의 친구가 매일을 것이다. 소르바스에게 통조림 먹이도 주고 작은 자갈이 깔린 고양이 집을 깨끗이 청소해주러 말이다. 어쨌든 이제는 의자와 침대에서 왔다 갔다 하며 이리 뒹굴 저리뒹굴 게으름피우고 농땡이도 칠 수 있게 되었다. 발코니에 나가 지붕에도 기어오르고 그곳에서 늙은 밤나무 가지로 뛰어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안마당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 안마당은 동네의고양이 친구들과 종종 만나서 놀던 곳이었다. 결코 지루하지 않을거야. 결코! 몸집이 큰 검은 고양이 소르바스는 신나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앞으로 수 시간 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르바스는 마냥 즐거워할 수 있었다. - P25
켕가는 힘없이 물 위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자신의 일생중 가장 길고도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죽음의공포에 떨면서 자문해 보았다. 혹시 죽음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모습의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고기 밥이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하고, 질식의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굶어 죽는것이 아닐까? 그는 죽음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통 전체를 뒤흔들어댔다. 그 순간 깜짝 놀랐다. 기름에 젖은 날개가 몸에서 떨어진 것이다. 은빛 깃털은 검은 농축 물질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날개는 최소한 펼수 있었다. "내가 여기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그래, 여기서 빠져나가서 높이, 아주 높이 나는 거야. 그러면 석유가 햇빛에마를지 누가 알아?" 켕가는 한 가닥 희망을 찾은 듯 혼자 중얼거렸다. - P30
"미안해. 어쩔 수가 없었어." 갈매기도 소르바스의 말을 인정했다. "보아하니 몰골이 꽤나 엉망진창이군, 온몸에 묻은 게 뭐니? 악수가 심한데!" 소르바스가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검은 파도에 휩쓸렸어. 바다의 재앙 덩어리 말야. 나는 곧 죽게될 거야." 갈매기가 처량하게 읊조렸다. "죽는다고? 그런 소리 마. 너는 단지 피곤하고 약간 지저분할 뿐이야. 그게 전부야. 그런데 이왕이면 동물원으로 날아가는 게 어떻겠니? 동물원은 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아. 거긴 너를 도와줄 수의사들도 많아." 소르바스가 말했다. "그럴 수가 없어. 이게 내 생애 마지막 비행이었어." 갈매기는 거의 들리지도 않을 만큼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하면서눈을 지그시 감았다. - P36
고양이 네 마리는 오래 된 밤나무 밑에서 구슬픈 기도를 올렸다. 곧이어 가까이 있던 다른 고양이들과 강 건너 저편에 있던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이에 합쳐졌다. 뿐만 아니라 개들의 울부짖음과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들, 그리고 등지에 있는 참새들이 구슬프게 우짖는소리와 개구리들의 서글픈 울음소리, 심지어는 침펜지 마띠아스의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까지도 고양이들의 울음소리와 합쳐졌다. 함부르크에 있는 모든 집 안의 등불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 그 날밤 항구의 주민들은 밤새 궁금해했다. 함부르크의 동물들을 갑자기사로잡아버린 저 이상한 슬픔의 정체가 무엇인지.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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